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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글 하나 :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선친의 마음을 짐작이나마 했다.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심정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

글 둘 : "수원 나혜석거리에서 호프 한잔 하고 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고 분위기도 짱~입니다. 아이스께끼 파는 훈남 기타리스트가 분위기 업시키고 있네요-나혜석 거리에서."

글 셋 : "제 아들이 군복무중 일으킨 잘못에 대해서 피해를 입은 병사와 가족분들에게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또한, 사회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한 점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군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서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달게 받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저도 같이 벌을 받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문제로 피해를 입은 병사와 가족분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자, 세 명이 쓴 글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비록 분위기가, 문체가 조금씩 다를지언정 며칠 사이 한 사람이 쓴 글이 맞다. 최근 군 복무 중 후임병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남 남아무개 상병 때문에 공식 사과까지 한 남경필 경기도지사.

육군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무참하게 맞아 죽은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의 충격이 가실 줄 모르는 가운데, 중부전선 육군 6사단에서 일어난 또 다른 후임병 폭행사건의 가해자가 남 지사의 장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7일 오전.

위의 세 글은 그가 차례로 15일자 <중앙일보> 칼럼에, 15일 오후 10시경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리고 17일 오후 페이스북에 '사과문'으로 올린 글들이다. 헌데 이 글 하나하나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찬찬히 뜯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발 빠른 사과에도 논란은 증폭... 칼럼과 SNS 줄줄이 도마에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장남이 군대내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과 관련 피해 장병과 그 가족, 국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장남이 군대내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과 관련 피해 장병과 그 가족, 국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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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과문. 발 빠르게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린 남 지사는 그러나 '사회지도층'이란 표현으로 구설에 올랐다. 장남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만한 사건의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특권과 책임을 동시에 수반하는 '사회지도층'이란 단어를 굳이 골라 비난의 수위를 키웠다.  

남 지사 측도 이를 의식한 듯 사과문을 두 차례 더 정정했다. '사회지도층'을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수정했다가 다시 '군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로서'로 수정한 것이다. 스스로를 격상시키는 듯한 '사회지도층'이란 표현이 군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을 포함한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의식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 지사의 진정성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니 증폭됐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몇 시간 뒤, 남경필 지사가 15일자 <중앙일보>에 게재한 '나를 흔든 시 한 줄' 칼럼이 논란이 됐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라는 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인용한 이 칼럼은 군대 간 아들이 맞지는 않는지,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노심초사를 웅변하는 내용이다.

장남이 군 폭행 가해자만 아니었다면 그저 부성애의 일환으로 비쳤을 이 칼럼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남 지사가 장남 사건을 언제 인지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남 지사 측은 장남 사건을 접하기 하루(13일) 전인 12일 칼럼을 신문사 측에 전했고, 가해자 운운한 것은 차남에 대한 걱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연 이 칼럼이 (사건을 인지한 후 이틀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철회하지 못할 만큼 중차대한 것이었을까. 남 지사 측 해명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를 두고 전 <조선일보> 주필인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은 심지어 기명칼럼에 이렇게 썼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아들 교육 잘못 시켰다고 사과했다. 수하를 학대한 것도 나빴지만, 성추행 한 걸 장난한 것이라고 한 건 더 나빴다. 그런 짓이 오락 장난 삼아 하는 건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남경필이 아들들 군대생활에 관해 이런 걱정 저런 걱정 한 칼럼을 쓴 직후, 사건이 공개되고, 또 그 직후 남경필의 기자회견 사과가 있었고 일련의 시리즈가 너무 작위적인 기획작품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이다.

만약 남경필과 군당국이, 이런 시나리오를 둘러싸고 그 어떤 사전 양해라도 있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그럴 경우엔, 남경필이 지사직을 반납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수신제가에 실패한 자는 치국평천하일랑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 구속영장 기각... 시점 조율 없었을까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칼럼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칼럼
ⓒ 중앙일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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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주필이 제기한 '기획작품' 냄새를 더 키운 건 남 지사의 SNS 글이었다. 장남 사건이 언론에 나오기 전이자 칼럼이 게재된 15일 밤, 자신의 SNS에 "호프 한잔 하고 있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 지인이 부른 술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남 지사의 칼럼 역시 그러한 심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사건을 인지하고도 일상적인, 더욱이 술자리와 관련된 글을 게재한 것은 의혹을 부채질 할 만한 경거망동에 가깝다. 평소 남 지사의 SNS 사용 패턴으로 미루어봤을 때, 장남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거라 예단하지 않은 이상 비난이 뻔히 예상되는 글을 게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19일 오전, 군 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군 당국은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수사권을 국방부 조사본부와 검찰단으로 즉시 이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당국이 가해자인 남 상병이 남 지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5일간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 지사 측과 군 당국이 언론 공개와 사과 기자회견의 시점을 조율한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19일 오후 육군 6사단 군 검찰은 남 상병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치인의 아들과 SNS 글, 그리고 사과 기자회견. 남 지사 논란과 일련의 대응을 보며, 정몽준 전 서울시장 후보를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서울시장 선거 전 당시 막내아들이 SNS에 '미개한 국민' 운운하는 글을 올려 대국민 사과에 나섰던 정몽준 후보 말이다. 정 후보는 당시 눈물을 쏟으며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논란을 서둘러 진화하고자 했다.

남경필 지사의 경우도 대응은 빨랐다. 허나 남 지사 아들은 실제 군 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는 점에서 그 경우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접한 국민적인 충격과 아픔이 아물기는커녕 군에 의해 축소되고 감춰졌던 사병 피해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 터진 사건인 만큼, 군 당국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와중에 남 지사는 19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에서 열린 을지훈련을 참관했다고 한다. 기자회견 후 이틀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미사 참석 등 각종 일정은 취소하며 자숙모드에 돌입했던 남 지사가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친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일각에서 이미 남 지사가 한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가운데, 역시나 '그림'을 만들기 위해 애먼 장병들 옆에 서서 악수를 나눈 것은 아닌지 실로 궁금해진다. 남 지사는 과연 피해자 가족들에게 직접 사과는 했을까. 

박 대통령은 19일 을지국무회의에서 "지금은 우리 군 지휘관부터 장병들까지 새로운 생각으로 병영문화를 일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경필 지사가 아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선 군 당국과의 조율이나 협착이 없었는지 의혹만 밝히면 될 일이다.

허나 "박근혜를 지키겠다"고 공언했던 남경필 지사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병영문화 일신에 얼마나 힘을 보탰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태그:#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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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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