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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굴(흙으로 지은 집)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달 31일 재·보궐선거 패배를 뒤로하고 21년간의 정치인생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손 고문은 10여 일 전 부인과 함께 이 토굴로 내려와 칩거 중이다. 사진은 토굴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는 손 고문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굴(흙으로 지은 집)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달 31일 재·보궐선거 패배를 뒤로하고 21년간의 정치인생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손 고문은 10여 일 전 부인과 함께 이 토굴로 내려와 칩거 중이다. 사진은 토굴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는 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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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진=연합뉴스) 조근영 송수경 기자 = "자연 속에서 마음이 물처럼 고요하다."

7·30 수원병 보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20일 한 측근과의 통화에서 "잠도 자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산에도 다니고,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전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손 고문은 전남 강진으로 낙향하기로 결심하고 부인 이윤영 씨와 함께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중턱에 있는 16.5㎡ 남짓의 토굴(흙으로 만든 집)을 임시거처로 삼아 둥지를 튼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이곳에서 머문 뒤 앞으로 지낼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 토굴은 스님들이 한때 사용하다 비워둔 곳으로, 백련사 스님의 소개로 '인연'이 닿았다. 전기만 간신히 들어올 뿐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는 곳이다.

TV나 신문 등 '세상'과 완전히 절연한 채 백련사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하루에 두번씩 직접 장작을 때며 '촌부'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을 찾았던 한 지인은 "손 고문은 외부인을 전혀 만나지 않고 있으며, 길이 험하고 찾기도 어려워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며 "얼굴이 편하고 밝아보여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1993년 정계 입문 후 광명과 수원, 서울 여의도, 마포, 종로, 분당, 독일 그리고 다시 수원 팔달에 이르기까지 21년 정치역정 속에서 수차례 이삿짐을 쌌던 그가 이제는 그 흔적을 모두 내려놓은 채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숨결이 깃든 '남도의 땅'에 터를 잡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8년 총선 때 당 대표로서 서울 종로에 '구원등판'했다 낙선한 뒤 2년간 춘천에 머무른데 이은 '장기 칩거'이다.

손 고문의 '강진행' 결심에는 "강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인의 의견도 감안된 것이라고 한다. 강진은 손 고문 첫째 사위의 고향이기도 하다.

특히 민생 중심의 '실사구시'의 정치를 강조했던 손 고문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다산 선생을 세종대왕과 함께 민심을 근본에 둔 정치인의 롤모델로 꼽곤 했다. 이 때문에 야권 주변에선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던 손 고문이 '셀프유배'를 떠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실제 손 고문은 다산 선생이 걸었던 옛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고문은 장기적으로는 독일 체류 기간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그간의 정치활동을 돌아보는 저술작업을 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손 고문은 이달초 서울을 떠나기 전 캠프 해단식을 겸해 참모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자유인으로서 잘 놀겠다. 잘 놀 자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 고문은 최근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상황변화에 따라 정계복귀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데 대해서도 "말이 안 되는 소리", "손학규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펄쩍 뛴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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