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한국 영화관과 영화거리가 북적댄다. 그것도 아주 소란스럽게! 여름철 영화관은 파리 날리거나 혹은 익숙한 납량특집 영화로 채워지곤 했다. 악령이나 귀신 혹은 드라큐라 같은 친근한 주인공들이 객석을 휘어잡았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영화판이 유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공포와 무관한 <군도>가 판을 짜더니, <명량>과 <해적>이 뒤를 잇고 있다. 최근에는 묵직한 <해무>까지 가세하여 관객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500만 고지에 오르기 버거워 보이지만 <군도>는 1862년 조선후기 철종 조에 발생한 민란을 현란하게 다룬 묵직한 영화다.

요즘 세간에 많이 거론되는 <명량>은 1500만 관객을 돌파하여 한국영화의 신기원을 작성하고 있다. 풍전등화, 백척간두, 진퇴유곡에 처한 국가를 구한 영웅이자 자상한 아버지, 백성들의 자애로운 지도자 이순신 이야기가 <명량>이다. <명량>에 이토록 많은 관객이 반응하는 것은 분명 '세월호 참사사건'이 배후세력일 것이다.

2012년 <댄싱 퀸>으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이석훈 감독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군도>가 <명량>에게 초반부터 압도당했다면, <해적>은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주면서 예매율과 좌석 점유율에서 <명량>을 앞지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적잖게 흥미롭다.

<해적>이 웃기기만 하는 영화라고?

일단 <해적>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단, 조건이 있다. 일반적인 영화공식은 잊어야 한다. 조선왕조 개창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을 머릿속에 계속 두는 관객은 쫄딱 망한다. <해적>을 보면서 관객은 영화의 개연성이나 시간배치, 사건진행의 인과성이나 사실성 같은 걸 모두 잊고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딱 거기까지다. 정말 그런가?

이렇게 되면 희극영화 <해적>은 삼류가 된다. 웃음에 뼈가 없으면, 그것도 용가리 통뼈가 하나쯤 없으면 삼류다. 따라서 <해적>에 적잖은 관객이 드는 것은 까닭이 있는 셈이다. (<해적>은 8월 17일 기준 430만 관객을 넘어 500만을 향해 순항 중이다). 웃으면서 더러 그 배후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영화에 있다는 얘기다.

1392년 개국당시 이성계가 보낸 사신이 한상질이다. 그자가 국호는 받았는데, 국새는 가져오다 분실했다는 '가상역사'에 기초한 영화가 <해적>이다. 바닷길로 오다가 고래와 싸우던 중 국새를 고래가 삼켰다는 희한한 설정인 것이다. 멀쩡한 육로 놔두고 왜 해로를 택했는지, 고래는 왜 옥새를 삼켰는지, 그런 건 묻지 마시라!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명나라에 국호와 국새를 요청한다는 대목이 영화의 용가리 통뼈다. 한심한 얘기다! 옛 나라 무너뜨려 국새 반납하고, 새로운 나라 세워 국호와 국새를 하사받는다는 얘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얘기 아닌가?! 요즘으로 치면 미국 대통령한테 대한민국 국호와 국가직인을 하사받는 거니까.

잃어버린 국새를 찾아라!

고래가 삼킨 것으로 설정된 조선국새를 찾으러 동원되는 세 집단의 면면은 흥미롭다. 친 이성계의 개국세력, 바다를 주름잡는 강력 해적단, 장사정의 얼치기 산적무리. <해적>은 이렇게 짜인 집단과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에 의지한다. 여기에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한상길로 대표되는 근정전의 집권자 무리는 덧대기 양념이다.

장사정이 모시고 있던 직속상관 모흥갑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은 포악한 인간이다. 상명하복을 실행하지 않는 장사정에게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기본이고, 출세가도를 위해 민간인 학살과 사실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해적>의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실적인 냄새가 풍긴다. 현대판 정치군인의 냄새!

개국세력과 결탁하는 해적두목 '소마'는 모흥갑에 필적하는 그악스런 악당으로 그려진다. 부하들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함부로 여기는 소마는 해적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덕목을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든 상황에 따라 인간은 배신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죽음 너머에 있는 탐욕의 무기상이자 살인병기다.

소마와 대척점에 자리하는 여월.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한 국가에 대한 반감과 어린 시절 고래와 함께 했던 추억으로 살아간다. <해적>에서 정의와 자연 친화를 대표하는 유일자로 그려지는 여월. 장사정은 거룩함과 우스꽝스러운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거룩한 저항적 인물이되, 산적으로서는 빵점에 가까운 희극적 인물.  

이런 세 집단의 인물들이 모여서 끓여내는 걸쭉한 섞어찌개가 <해적>이다. 그들이 앞 다투어 찾아내려는 국새가 객석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관객은 흥미진진하다. 객석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것이 '고래'와 '백상아리'다. 바다와 고래를 본 적 없는 산적들이 상어와 고래를 놓고 실랑이하는 장면은 한바탕 박장대소의 원천이다.     

이성계와 사대주의

1388년 이른바 '위화도회군'을 단행하면서 이성계는 네 가지 근거를 댄다.

"여름철 군사동원은 농사를 망치고, 농민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 요동정벌로 군사력이 분산되면 왜구가 침입할 수 있다. 장마철이라 화살의 아교가 녹고,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이 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건 잘못이다!"

이른바 '사불가론'이다. 그럴듯한데 마지막 항목이 가시처럼 걸린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향도'를 내세워 임진왜란을 일으킨 역사를 주목하시라. '정명향도'란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길을 안내하라!'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이성계 시절의 명나라는 신흥강국이었고, 임란시절의 명은 망국을 목전에 둔 나라였지만!

이성계의 '사불가론'에 반발하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다로 간 산적'들의 두목 장사정이다. 장사정의 논지는 자못 명쾌하다.

"그렇다면 군대 돌려서 왕조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은 이치에 합당한가?!"

대국인 명나라에 항명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고려 왕조를 때려 부수는 것은 허용되는가, 하고 장사정은 묻는다. 그가 신왕조 조선을 부정하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가는 데에는 이런 곡절이 있는 것이다. 무력을 이용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이성계와 그 휘하에서 활약하는 두목에게 저항하는 장사정의 호기로움은 자못 호쾌하다.

두목과 목숨을 건 일전도 마다하지 않고 수하를 이끌고 입산하는 장사정. 그에게서 사대가 아니라, 자주의 결기를 보는 것도 <해적>의 또 다른 맛이다.

사대주의,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어느 나라 백성이오? 조선의 안정은 명나라가 줬으니, 명나라 백성이오? 나는 그런 나라의 백성이고 싶지 않소. 어찌 왕이라는 자가 명나라가 내려준 국새를 찾자고 백성을 희생시킨단 말이오. 어떤 세상을 이룰지 잘 생각해 보시오. 왕께서 백성들을 위한 진정한 새 세상을 만든다면 나 또한 그대의 백성이 될 것이오."

장사정이 왕에게 일갈하는 대목이다. 희극영화에서 이런 대사는 감독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딱딱하고 빤한 교훈을 삽입한다는 것은 실패를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극과 달리 희극에는 명쾌한 주제의식 내지 문제제기가 부설되어 있다. <해적>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사대주의는 이성계 이후로도 끊임없이 한국역사를 관통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거쳐 미국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해방 이후 친미로 일관한 이승만이나, 미국에 베트남 파병을 자처한 박정희, 광주항쟁에 미국의 동의를 얻어낸 전두환과 노태우. 대를 이어 전시작전통제권 연장에 심혈을 기울인 이명박과 박근혜. 그 긴긴 세월!

<해적>을 600년 전 조선 어딘가에서 일어난 재미난 사건이라고 그저 웃어젖히는 관객은 장사정 만큼 허술하다. <명량>에서 관객이 백성을 향한 '충'을 말하는 이순신에게 끌렸다면, <해적>에서 관객은 자주적인 왕을 바라는 장사정에게 이끌린다. 큰 나라가 준 국새 없이 국정을 제대로 인도하라는 그의 일갈은 그래서 의미 있다.

2014년 여름의 영화관을 달구는 영화의 고갱이를 들여다보면 한국정치의 막다른 골목이 보인다. 왕과 권력집단, 부자들의 행악질이 극에 달하면 민란에 봉착하게 되고 (<군도>), 지배집단의 부패와 무능은 외침을 가져오며 (<명량>), 자주의식이 결여된 왕과 권부 실력자들은 민의 신랄한 문초와 대면하게 (<해적>)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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