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글쓰기에 앞서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어쨌든 천주교 신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성당을 다녔고, '세피리노'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결혼도 성당에서 한, 독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당이 가장 익숙한 사람이다.

날라리 천주교 신자의 교황 방한 감상문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차마 천주교 신자라고 소개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신자'의 믿을 '신(信)자'가 민망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신부님에게 '신자는 신자이되, 배신자'라는 핀잔을 듣고, 대학원 조교를 하기 위해서 기꺼이 불교 법명을 받고, 아직도 '인격신'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가 어찌 '신자'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집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젠가는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지만 난 확신이 없다. 아직 내게 종교는 가슴으로 믿는 신앙의 체제가 아니라 머리로 사유하는 탐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으며,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를 천주교 신자로 정의하고 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했다. 치열하게 고민하던 학생 때야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로 냉담하고 있었지만, 일상으로 인해 고민이 무뎌진 지금에는 일요일에 성당 가기 귀찮아서 냉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촛불을 들 때도 꿈쩍 않던 내가 다시금 진지하게 성당을 나갈까 고민하게 된 것은 새로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을 보고 난 이후였다.

사실 말만 천주교의 수장일 뿐, 그동안 나의 신앙과 교황은 큰 상관이 없었다. 로마 시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교황'을 공부하고, 중세시대 세속의 권력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며 온갖 부도덕한 짓을 저질렀었던 '교황'을 공부했던 만큼 오히려 나는 교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비록 근대에 와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어쨌든 전 세계 천주교 신자가 교황의 말 한마디에 움직인다는 것은 독선의 가능성을 품은 반민주주의적인 관행이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취임 후 페이스북을 통해 간간이 마주할 수 있었던 그는 예전 교황들과 달리 천주교의 수장이 아니라 전 인류의 어르신으로서, 지금 이 시대의 부조리를 질타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위적인 선교를 하는 대신, 제대로 된 언행이 곧 선교임을 직접 보여주었다.

혹자들은 그 모든 것이 교황으로서 할 수 있는 보편적인 명제일 뿐이라고 헐뜯었지만, 이 시대가 그 당연한 원칙도 통하지 않는 난세인 이상 교황의 지적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게다가 그는 교황이 되기 전 아르헨티나에서 항상 낮은 곳으로 임했던, 직접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주었던 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세계 많은 사람이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하고 환호할 수밖에.

그런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온다고 했다. 비록 박 율리아나(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수언론들은 떠들었지만, 어쨌든 작금의 대한민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매서운 죽비가 필요한 아비규환의 사회인 바, 교황이 방한 후 어떤 말을 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는 그이와 같은 '어른'을 모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갈... "한국의 민주주의 강화돼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청하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청하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극진하게 모셨다. 청와대가 직접 이번 행사를 기획했기 때문인지, 교황을 빌어 대통령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날선 말을 할지 몰라 노심초사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교황을 모셨다. 물론 그 최선이 도를 넘어 평생을 군부독재와 싸운 교황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는 누를 범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청와대의 배려는 남달랐다.

그러나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청와대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공식행사에서 가장 어두운 얼굴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후 이어지는 일정들 속에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 등에 대해 보편타당한, 하지만 곱씹어 보면 우리가 새겨들을 수밖에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굳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해 충고하고,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며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에 대해 언급하는 등 교황의 언어는 거침이 없었다.

혹자들은 이 모든 것을 교황으로서 할 수 있는 두루뭉술하고, 보편적이고 원칙적인 말일뿐이라고 폄하했지만, 그의 치열했던 삶을 돌아볼 때 교황의 말들은 분명 명확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교황의 언행이 가장 빛났던 건 역시나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에서였다. 입국할 때부터 출국할 때까지 시시때때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받은 노란 리본을 기꺼이 왼쪽 가슴에 달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단식 34일 유민아빠 손 잡은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압권은 지난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이었던 김영오씨의 손을 교황이 잡아주던 장면이었다. 퍼레이드 하던 차에서 일부러 내려 김영오씨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보며 가슴 깊은 위로와 함께 손을 잡던 교황.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무슨 대단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닌데, 김영오씨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교황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됐다. 그동안 쌓여있던 울분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기까지 했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황의 행보와 같은 진심 어린 위로였구나. 게다가 교황은 출국 직후 비행기에서 가졌던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당시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나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남겨진 우리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1일째,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1일째,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교황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정치의 본질이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 그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정치.

현재 우리 사회에는 위와 같은 정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소위 정치를 한다는 이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를 이용할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이를 당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평소에는 정치인들을 욕하다가도 자신이 아쉬울 때면 사돈의 팔촌까지 연을 이어 정치권력의 힘을 이용하려 하고, 누구 아무개 정치인이 자신과 가까운 사이라며 목에 뻣뻣이 힘을 주는 것이 이 시대의 자화상 아니던가.

이 시대에 정치적 중립성이 과하게 요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결국 정치가 사회적으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정치가, 맹자가 이야기했던 인간의 근본인 '측은지심'의 방편이라면 어찌 중립적일 수 있겠는가. 타인이 아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아프고, 타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괴롭다면 우리는 많은 부분 공감을 이루고 함께 중지를 모을 수 있다. 세월호의 저 많은 꽃다운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 괴롭고 아프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세월호 특별법'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교황은 몸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곧 '위로'임을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그가 김영오씨와 눈만 마주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따뜻한 위로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지친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보살펴줄 정치의 부재를 보여준다. 억울하게 죽은 딸을 위해 곡기를 끊고 있는 아비를 정치적 정쟁으로 만들어버린 사회. 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사회인가.

이와 같은 깨달음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몰라도 혹자들은 교황이 그저 특정 종교의 수장일 뿐, 그의 언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를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행위'라고 넓게 해석한다면 종교야말로 가장 높은 차원의 정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발언자 스스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이제 우리가 교황의 진심어린 위로에 답할 때다.


태그:#교황, #세월호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