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진 오른쪽에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건물이 보인다.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 땅은 주차장이다. 이 일대가 우현서루 터이다.
 사진 오른쪽에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건물이 보인다.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 땅은 주차장이다. 이 일대가 우현서루 터이다.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대륜학교의 전신 우현서루 터(대구은행 북성로지점)에서 달성공원 쪽으로 걷는다. 국채보상운동을 활짝 꽃피운 역사적 장소 광문사 터로 가는 길이다. 본래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의 강요로 지게 된 국채를 갚으면 나라의 자주자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부산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의 불꽃을 활짝 꽃피운 이들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김광제, 서상돈 등이었다. 1907년이었다.

하지만 광문사 터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별로 기념할 가치가 없는 순종 어가길은 윤이 날 정도로 가다듬어지고 있는 데 반해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는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외되어 있다. 간신히 비석 하나가 수창초등학교 담장 뒤에 서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비석에 기대어 사진 한 장을 찍어본다.

국채보상운동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곳  광문사가 있던 자리
 국채보상운동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곳 광문사가 있던 자리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대우빌딩 뒤편 주차장에서 중앙로를 건너 대구은행 북성로지점까지를 북성로라 부른다. 1909년 순종이 이등박문에 이끌려 이 길의 반쯤을 지나갔다. 달성공원에 있는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순종은 대구역에서 출발하여 경상감영, 북성로 중간쯤의 공북문 터를 지났다. 그 이후에는 지금의 북성로가 아닌, 작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갔고, 이윽고 수창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났다. 당시에는 북성로가 이 작은 삼거리까지만 닦여 있었기 때문이다.

광문사 터에서 나와 수창초등학교 후문과 학교 담장을 지나 정문으로 걸어간다. 정문 앞은 다시 순종 어가길이다. 순종이 이 길을 지나갔다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 있다. 조금 전에 광문사 터의 기념비가 새삼 초라하게 느껴진다.

삼성상회 앞면의 모형
 삼성상회 앞면의 모형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이곳을 답사할 때는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약간 왼쪽으로 난 길로 꼭 들어서 볼 일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대구예술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 전매청 건물을 고쳐서 미술 전시장, 책이 있는 만권당 등으로 쓰고 있는데, 언제 찾아도 기획 전시 등 볼거리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 손을 잡고 온 학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교육적 답사지이다. 특히 이곳 일원은 1950년 전쟁 때 피난민 수용 장소였다는 역사적 의의도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관람을 마치고 다시 수창초 정문 쪽으로 나와 달성공원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이 길에서는 금세 삼성상회 터를 만날 수 있다. 대재벌 삼성이 이곳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곳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삼성상회 건물을 그냥 두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이다. 있는 것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 부숴버리고 마는 우리네의 심성을 여기서도 확인하는 것 같다.

대구는 세계적 호수 도시가 될 뻔했는데 아파트 짓는다고 다 메워버렸다. 세계 최대의 고인돌 도시도 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몇 안 남기고 모두 파괴해 버렸다. 국내 유수의 해자 보유 고대 토성인 달성도 물길을 모두 복개하고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렸다.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많은 한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하나둘 없애버리고 원룸을 짓고 있다. 세계적 한약 유통의 거점인 약령시도 이미 반쯤은 커피점과 통닭집이 점령했다. 

2014 대구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적두병'을 파는 가게
 2014 대구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적두병'을 파는 가게
ⓒ 추연창

관련사진보기


도로를 건너면 달성공원 정문이 보인다. 필자는 멀찍이 공원 정문을 바라보다가 버릇처럼 걸음을 멈춘다. 언제나 이곳에 올 때마다 해온 일이다. '2014 대구 관광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적두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적두병은 붉은 콩, 즉 팥으로 만든 떡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빵이다. 대체로 경주황남빵과 엇비슷하지만, 필자에게는 그보다 훨씬 맛이 좋다. 게다가 유적지 앞에 자리 잡고 있으니 더욱 의미심장하다.

적두병 뒤가 바로 일제 강점기 때 대구 경북 청년들이 모여 민족사상을 기르고 계몽운동을 했던 조양회관이 있었던 곳이다. 대구가 낳은 서상일 선생이 거의 혼자 힘으로 건축했던 조양회관, '조선의 빛을 본다'는 독립 의지를 이름으로 삼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름도 광복회관으로 바뀐 채 망우공원으로 옮겨졌다. 1982년 일이다.

조양회관이 제 자리에 복원되기를 기원하며 적두병 하나를 먹는다. 한 개 천 원이다. 더 먹지는 않는다. 독립운동 성지에서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이제 달성공원으로 들어가 보자. (달성공원 내부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가 쓴 '대구 달성공원에서 보는 항일의 역사'와 ' 유적지 답사에도 순서가 있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적 62호 달성,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곳이다.


태그:#국채보상운동, #광문사, #적두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