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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큰 평온함을 주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만이 아니다. 산도 그렇다.'

주말 아침 부지런을 떨며 청계산을 올랐다. 습기를 듬뿍 머금은 숲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등줄기에는 땀이 흐르지만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젖은 공기가 상쾌함을 안겨 준다.

8월17일 청계산 촬영, 별명을 ‘숲 속의 노랑 성자’라 붙였다.
▲ 청계산의 노랑망태버섯 8월17일 청계산 촬영, 별명을 ‘숲 속의 노랑 성자’라 붙였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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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쯤 올랐을 때다. 뭔가 눈길을 끄는 것이 있어 숲으로 기어들어갔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황홀하다. 저것은… 노란색 그물망을 두른 창조물이 나를 바라본다. 괜히 들킬까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빠른 속도로 검색해본다. 아하! '노랑망태버섯: 여름이나 가을에 걸쳐 나는 망태버섯류로 주로 흰망태버섯은 대나무 밭에 노랑망태버섯은 잡목 숲에 난다'고 설명 되어 있다. 줄기는 식용으로 가능하다고 하나 맛에 대한 평가 자료는 별로 없는 것으로 봐서 특별한 맛은 없는 것 같다.

자태의 화려함 때문에 사진 찍는 이들이 좋아하는 버섯인 듯한데 망태가 잘 펼쳐진 버섯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녀석은 마치 노란 망토를 걸친 성자의 모습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번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겹쳐진다. 망태 펼친 모습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활짝 펼치고 나를 만났으니 교황님이 세계 여러 나라 중 특별히 우리를 찾아주신 것처럼 나에게 주는 행운의 선물인 듯하다. 이 특별한 선물을 '숲 속의 노랑 성자'로 부르기로 했다.

청계산 붉은달걀버섯(8월16일 청계산: 별명을 ‘태양의 심장’이라 붙였다.)
▲ 붉은달걀버섯 청계산 붉은달걀버섯(8월16일 청계산: 별명을 ‘태양의 심장’이라 붙였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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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노랑 성자'를 뒤로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잠깐의 황홀한 만남이 오르는 내내 자꾸 시선을 숲 속으로 잡아 끈다. 10여 분쯤 올랐을까 저만치 참나무 아래 아늑한 곳에 붉은 점 두 개가 반짝인다. 두 번째 횡재를 생각하며 재빨리 달려 가본다.

오호라! 이것은… 이번에는 빨간 방울 토마도 같기도 하고, 고추 같기도 한 두 녀석이 나를 반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녀석 역시 처음 보는 놈이다. 사진을 찍고 스마트한 폰에게 물어본다.

이 녀석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볼 수 있는 달걀버섯 종류 중 붉은달걀버섯이라고 한다. 식용이 가능하고 맛이 좋다고 하여 순간 욕심이 생겼으나 다른 이의 눈 호강을 위하여 참았다. 바로 탐할 만큼 자태가 황홀하다. 멀찍이 바라보니 이 녀석은 동해바다를 힘차게 뚫고 올라오는 태양 같기도 하고, 살아 숨쉬는 심장 같기도 하다, 이 녀석들에게는 '태양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빛나는 붉은 빛이 생명과 혁명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산정상에서 잠시 산의 정령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산행의 의식의 최고는 역시 정상에서 셀카찍기다. 흔적에의 욕구라고 할까. 의식을 마무리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하산 길을 내달린다. 날다람쥐가 따로 없다. 이른 아침 산행의 선물로 이리 큰 선물을 받으니 한 주가 희망이 가득하다.

독버섯 노랑다발버섯(8월16일 청계산, 별명을 ‘노란 웃음 뒤의 암적 존재’라 붙였다.)
▲ 노랑다발버섯 독버섯 노랑다발버섯(8월16일 청계산, 별명을 ‘노란 웃음 뒤의 암적 존재’라 붙였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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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산했을 즈음 갓길 나무등걸 옆에 동전 크기의 노랑 나비 같은 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세 번째 행운의 만남인가? 작은 노랑 병아리 같은 아주 귀여운 모습이다.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물어 본다. 아학~ 맹독성이 있는 노랑다발버섯 이란다.

갑자기 소름이 오싹한다. 반갑게 맞았던 마음이 멀리 달아 나고 괜히 오금이 저린다. 저 앙증맞은 모습 속에 독을 감추고 있다니 섬뜩하다. 대부분 버섯중독 사고의 주범이라고도 쓰여 있다.

저 녀석을 보니 밝은 미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이중인격자 같다. 이 나라 곳곳에 퍼져 있는 친일의 잔재들, 독재의 잔재들, 유병언 뒤에 숨어 있는 세월호 참사의 주범들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겉으로는 나라사랑, 민생경제,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오로지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이 나라 곳곳의 암적 존재들이 저 노란 웃음 속에 들어 있다. 저 녀석의 별명은 '노란 웃음 뒤의 암적 존재'다.

서두른 아침 산행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버섯들을 만났다. 자연 속에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저마다 쓰임과 역할이 있다. '숲 속의 노란 성자' '태양의 심장'처럼 사랑과 위로, 희망과 생명을 주는 존재들도 있지만 '노란 웃음 뒤의 암적 존재'처럼 뒤에 칼을 감추고 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암적 존재들도 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떤 존재를 위해 보내겠는가?


태그:#청계산, #독버섯, #노랑망태버섯, #붉은달걀버섯, #노랑다발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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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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