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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최규석 작가
 13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최규석 작가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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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작가에게는 '사회문제를 그리는 만화가'란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둘리를 이주노동자로 그린 데뷔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부터 6월항쟁을 다룬 <100℃>,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우울한 일상을 담은 <울기엔 좀 애매한>,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노동자의 변호사들>까지 그의 작품은 항상 한국사회의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송곳>(2013년 12월 16일 연재 시작)은 그중에서도 '끝판왕'이다. <송곳>은 대형마트 과장 이수인이 부당해고 지시에 맞서면서 노동운동가 구고신을 만나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노동법과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 노동운동의 사회적 의미를 자연스레 '학습'시킨다.

지난 13일, 최규석 작가를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곳>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송곳>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어봤다. 다음은 최규석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일단 2부 완결(8월 11일)을 축하한다. 소재가 노동운동이라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현 시점에서 <송곳>을 자평한다면?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게 처음에는 굉장한 부담이었다. 사람들이 전혀 못 받아들일까봐 걱정을 많이 했고, 그냥 망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될 거 같다. 조회수도 네이버 웹툰 전체에서 중간보다 위에 있다고 하니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다.(웃음)"

- 제목 '송곳'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노조활동가들의 이미지를 표현한 거다. 그들은 평시에는 회사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책임감 강하고, 회사를 위해 희생하며, 동료가 빠진 자리를 자발적으로 메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조직에 맞서는 사람이 된다.

사실 이 사람이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다. 바뀌는 건 조직이지. 정상적일 때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가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바뀌면 혼자 그 비정상적인 상황에 휩쓸리지 못하는, 혼자 빡빡하게 서 있다가 압박을 받으면서 뚫고 나오는 이런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 <송곳>에 달린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댓글에서 자기 이야기 하는 분들이 계신다. 노조 활동을 했던 분들, 혹은 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노조에 가입은 안 돼 있어도 회사에 당했거나 회사와 싸우는 분들. 그런 분들 댓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활동가들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성직자 인터뷰하는 듯"

네이버에 연재 중인 최규석 작가의 <송곳>. 8월 11일 2부를 완결했다.
 네이버에 연재 중인 최규석 작가의 <송곳>. 8월 11일 2부를 완결했다.
ⓒ 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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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는 노조를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도 있다.
"초창기 노조는 대부분 아름답다.(웃음) 한국처럼 노조에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면 (그 회사의 사정은) 이미 노동법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반인권적인 상황인 거다. 실제로 1980년대에 노조 만들 때 내건 조건들이 '두발 자유'였다. 고등학생들이나 할 만한 그런 요구를 사오십 대 아저씨들이 내걸고 투쟁을 했던 거다. 그래서 초반에는 선악 대결에 가깝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는 노조의 부정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내가 아는 노조는 이렇지 않은데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정의로운 경찰을 다룬 영화를 보고 '더러운 경찰도 있는데 왜 그런 건 안 그리냐'고 이야기하는 거랑 똑같은 거다. 노조와 관련된 콘텐츠가 없다 보니까 <송곳> 한 작품이 노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담아주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싶다."

- 주인공 이수인과 구고신의 실제 모델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에 그분들을 만화의 모델로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순순히 허락했나.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암묵적인 허락이 있는 거다. 구고신은 좀 여러 명이 섞여있는데 이수인은 너무 특정적이어서 미리 허락을 얻고 정리했다.(웃음) 실제 만화를 보고 꽤 좋아하셨던 것 같다. 일단 나와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셨다. 보통 언론사 인터뷰를 하면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신의 내적인 갈등 같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는 별로 없다. (내 인터뷰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 좋아하셨던 것 같다."

-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일단 모른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가령 6월항쟁은 기록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책 몇 권 읽으면 대충 흐름이 잡히는데, 노동운동 쪽은 그렇게 정리된 콘텐츠가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100℃> 작업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활동가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분들은 객관적으로 불행한 상태다. 돈도 못 벌고, 배신도 당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선택(노동운동의 길을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잘 납득이 안 됐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나온 거면 그래도 납득이 되는데 노동운동을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동력은 대체 뭘까,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희망적일 수 있는가.(웃음)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확고하게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성직자를 인터뷰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종교적 경험을 이해하기 힘들듯이 그런 분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했나.
"그들을 거기(노동운동에) 남아 있게 만드는 여러 요건이 있을 텐데, 그나마 내가 납득되는 것 몇 개를 중점적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그대로 남기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강화해서 작품의 줄기로 삼는 거다."

-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리면서 작가로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이 소재가 효과적으로 대중예술 안으로 들어오고, 자연스러운 소재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동성애자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하면 사람들은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대중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제시하는 거고, 대중예술이 세상의 요소들을 더 많이 보여줄수록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상의 넓이도 넓어진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왜 배경을 대형마트로 정했나.
"마음에 드는 인터뷰이가 대형마트 출신이고, 자료 구하기도 쉬웠다. 독자들에게 친숙한 공간이라 공감대를 얻기도 쉽고. 하지만 이야기가 복잡해져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남성 중심의 생산직이면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대형마트에는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다.

자기가 일해서 온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사람, 집에 가면 사모님인 사람, 애들 다 키우고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용돈이라도 벌려고 나오는 주부 등. 이들의 요구사항이나 대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동운동을 할 때 부잣집 주부들이 더 열심히 한다. 자기는 잘려도 상관없으니까. 근데 여기에 자기 생계가 달렸으면 노조에 가입하는 게 나한테 유리할까 불리할까 이런 걸 따지면서 나중에 노조를 파괴하는 쪽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게 재미의 요소일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 이게 아니라 '뭐, 난 그만두면 되는데' 이런 사람도 섞여 있으니까 단순하게 으쌰으쌰 하는 스토리로 만들기가 힘들다."

"'집회신고 달리기'는 기륭전자가 모델... '시즌2' 고민 중"

최규석 만화 <송곳> 2부 19화의 한 장면
 최규석 만화 <송곳> 2부 19화의 한 장면
ⓒ 최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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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에 대형마트가 아닌 다른 회사나 그곳 활동가들도 등장하나.
"조연으로 등장할 거다. 이수인은 (자기) 회사 내에서도 투쟁을 하지만, 회사 밖에서도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연대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이게 자기 조직만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 다른 조직까지 책임감이 확장될 거다. 그러면서 여러 사업장과 사람을 만나겠지. 이미 달리기도 한번 했고.

(삼진 주식회사는 회사와 노조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집회신고를 한다. 경찰은 노사 양쪽이 달리기를 해서 이기는 쪽의 집회신고만 받아준다. 이수인은 다른 사업장인 삼진 주식회사의 노조 대표로 달리기 한다. - 기자 주) 일단 '집회신고 달리기' 이야기는 기륭전자가 모델이고, (앞으로) 주로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이 나올 것 같다."

- 희망적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송곳>에서 그런 이야기가 좀 나올까.
"이야기 자체에서 희망이 나오는 것은 아닐지라도 싸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아, 이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구나. 그리고 싸울 수 있는 무기라는 게 여기저기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나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 작품 안 할 때는 주로 뭘 하나. 취미생활 같은 거.
"그냥 논다.(웃음)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친구 만나서 술 마시고, 이제 아기가 있으니까 아기랑 놀고, 가끔 데모나 하러 다니고.(웃음)"

- 웹툰 중에 본인 작품 말고 재미있게 보는 작품이 있나.
"연재 중에는 다른 작품을 안 본다. 그전에는 <미생>과 <동네변호사 조들호> 앞부분을 좀 봤다. 예외도 있지만, 보통 만화가들은 만화를 잘 안 본다. 일단 바쁘고, 나 같은 경우는 연재 중에는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진 상태라 평소라면 그냥 '재밌네'이러고 넘어갈 것도 연재할 때 보면 엄청나게 열등감이 쌓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보려고 한다."

- 만화가 지망생, 특히 사회문제를 다룬 웹툰을 그리려는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부도 많이 하고, 취재도 많이 해야 한다. 사실 지망생들이 사회문제를 다루는 경향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거를 자기가 진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표피적으로 '이건 문제니까 이 문제를 다루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겠지'라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자기 혼자 고민한 것을 작품으로 표현한단 거다. 그런데 자기가 최초로 발견한 문제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역사가 있다. 그걸 모르는 상황에서 발언하면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된다.

자기만족을 넘어 유의미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가,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민 지점이 뭔가, 이런 것들을 파악해야 한다. 혹은 그 문제와 가장 밀착된 어떤 사람을 최대한 깊게 표현하거나 그 사람, 혹은 그 문제의 디테일을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 한다."

- <송곳>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있나.
"<송곳> 시즌2·3를 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고민은 있다. 짤막한 한두 권짜리 작품들도 몇 개 생각하고 있고. 만약 <송곳> 시즌2·3를 하면 주인공 이수인과 구고신 둘이 같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이수인 이야기 하나, 구고신 이야기 하나 이렇게 될 것 같다."

13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최규석 작가.
 13일 오후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최규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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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규석,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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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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