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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CG)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미료 역할을 해오면서 제작의 필수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종영한 <정도전>처럼 과거 시대상을 재현해야 하는 사극에선 CG를 빼놓기 어렵다. 시대에 맞는 배경과 대규모 전투 장면의 재현을 위해선 CG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명량>에선 해상 장면을 실감 나게 재현한 CG의 공이 주연배우와 시나리오 못지않을 정도로 컸다. <괴물>이나 <해운대> 등 CG를 필두로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CG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확연히 높아졌다. 그렇지만 CG업계의 실상은 잘 알려지지 않아 왔다. 갑을 관계로 점철된 CG업계의 어두운 현실을 들여다봤다.

"방송사에서 CG 제작을 더 해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한다. 회사가 적자를 보더라도 감수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할 수 있으니까. 한류로 드라마가 잘 나가지만, 제작비 수백억 원 중 절반은 주연 배우 개런티나 작가 원고료다. 나머지 돈으로 많은 사람이 나눠 가져야 하는데, 제작사는 또 이익을 남겨야 한다. 결국, CG 계약 단가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워진다."

한 CG업체 관계자는 업계 현실을 토로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발표회가 열릴 때쯤, 제작비에 관한 얘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곤 한다. '사상 최대 제작비'라든지 '대규모 제작비'란 수식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다. 보통 이런 수식이 달리는 작품들은 CG가 필수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최대' 제작비에 걸맞은 영상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CG업체에서 드라마에 들어갈 CG를 제작 중인 모습.
 한 CG업체에서 드라마에 들어갈 CG를 제작 중인 모습.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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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언론에 통용되는 제작비는 오로지 제작에만 사용되는 것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통 제작비가 300억 원이면 그중 절반은 배우 개런티와 시나리오 비용으로 쓰인다. 나머지 제작비는 각종 미술 제작과 엑스트라 충원 등에 사용되고, 그중 CG 제작비가 책정된다. SBS <연개소문>을 연출한 이종한 PD가 과거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드라마가 400억 원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실제 150억~200억 원 정도로 극을 만들어갔다"고 밝힌 배경이다.

갑을관계에 종속된 CG 업계

드라마 제작비는 2008년 경제 위기와 광고 수주 저하를 이유로 감축됐다. 그런데 주연 배우 몸값은 작품 간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흥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제작사의 의도와 맞물림에 따라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목소리 내기 어려운 CG업계는 제작비의 감축분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

국내 유수 드라마·영화 제작에 참여한 CG업체의 관계자 A씨는 "제작사에서 제작 단가를 줄이라고 해서 줄여도 다른 CG업체와 계약하겠다고 한다"며 "10년 전이나 CG 계약 비용은 그대로이거나 줄어들면서 CG업체는 오래 존속되지 못하고 망하고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망한 회사 인력들은 다른 CG업체 가서 일하다가 그 업체가 망하면 일자리를 잃는 식"이라며 "시장이 포화라 적정 단가를 요구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론 제작사에 끌려간다"고 했다.

CG업체는 작품 계약 과정에서 철저한 갑을 관계에 놓이게 된다. 보통 작품의 방영이나 개봉 확정이 난 상태에서 대본이 나오고 전반적인 개요가 짜이면 제작사는 CG업체와 계약한다. 방송의 경우 KBS는 직접 혹은 자회사인 KBS미디어텍을 통해 CG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 SBS는 대부분 외주제작사를 통해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계약은 컷별로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으로 책정한다. 결국, 계약 단과를 초과해 적자를 보더라도 제작사의 제작 요구가 이어지면 CG 장면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A씨는 "통으로 계약하는 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갑을 개념으로 봤을 때 그 안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갑에게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 경 펴낸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CG산업 육성계획(안)' 내용 중 일부다. 적시된 문제점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 경 펴낸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CG산업 육성계획(안)' 내용 중 일부다. 적시된 문제점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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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과정에서 여러 CG업체가 뛰어들어 경쟁할 경우 저가 수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CG 업계의 공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영세한 CG업체 입장에선 저가 경쟁을 해서라도 입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관계자 B씨는 "예나 지금이나 일의 양은 비슷하지만, 계약 단가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며 "CG업체는 벌어놓은 것으로 사는 게 아닌, 앞으로의 일거리를 잡아야만 살 수 있다. 못 잡으면 망한다"고 말했다.

작품 끝나도 제작비 나 몰라라... 발CG 논란에 부담도 더해져

심지어 어떤 제작사는 작품이 흥행에서 참패하거나 시청률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종영하면 CG업체에 지급할 비용을 떼먹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외주제작사와 계약할 때 빈번히 발생한다. 이때 방송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한다.

관계자 A씨는 "일을 먼저 시키고 계약금을 지급하는데, 외주제작사가 선 계약금을 미리 지급했을 경우 나머지 계약금에 대해선 모른 척하거나 시청률이 안 나와 아예 못 주겠다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재판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소송을 걸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약서에 지급에 관한 조건을 넣으려 하면 계약을 안 하려 한다"며 "방송사도 골치 아픈 일 피하고자 외주 제작을 만든 셈"이라고 했다.

애초 계약과는 달리 방영 회차를 줄여 계약 금액을 삭감하기도 한다. 올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모 사극의 경우 60회 방영하기로 CG업체와 계약했으나 50회 종영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CG 계약 단가도 도중 삭감됐다. 사극 CG 제작은 대부분 초반 장면에 이뤄진다. 극 초반에는 주로 배역과 시대상에 대한 설명을 위한 배경, 시청자의 이목을 휘어잡을 장면이 삽입되기 때문이다. 방영 편수가 줄어듦에 따라 그만큼의 단가가 삭감되면 초반에 투입된 비용의 회수가 곤란해질 수 있다.

 2005년 종영한 KBS1TV <불멸의 이순신> CG 제작 과정
 2005년 종영한 KBS1TV <불멸의 이순신> CG 제작 과정
ⓒ KB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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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청자들 눈이 높아지면서 CG에 대한 기대치 상승과 함께, 종종 불거지는 '발CG' 논란도 CG업체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CG업체는 '발CG' 비판의 직격탄을 떠안을 뿐더러, 제작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대치에 상응할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일반 극과 다르게 CG가 다량 들어가는 사극의 경우 고증 부분에서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때문에 CG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투입되는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노력이 뒷받침돼도 촉박한 제작일정 때문에 제작에 들이는 시간을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 비용 증가에 따른 대처 방안은 제작사와 계약할 때 CG가 들어가는 장면을 줄이기로 합의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CG업체의 자구책으로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다.

CG업계의 인력 구조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관계자 B씨는 "급여도 어느 한계에 머물러 있다"며 "업체 상황은 어려운데 어떤 경영자가 월급을 올려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기술자가 대우받는 구조가 아니므로 연구와 함께 후배를 양성할 수 있는 고급인력의 발굴이 어렵다"며 "기술이 처음부터 한계 지점으로 반복되고 있어, 고급기술로 나아갈 여건이 안 된다. 모든 CG업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고 한탄했다.

한 CG 제작 관계자는 인터넷 드라마 게시판에 필명으로 제작 환경에 대해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배우들 개런티만 올라가고 이런 디테일 작업을 해야되는 스태프들은 홀대 받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 작품 끝날 때마다 그저 다른 일자리 찾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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