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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7월, 발톱이 뽑히는 사고를 당한 가을이는 몇 주 치료를 잘 받다가 혈관이 아물지 못하고 다시 터져 병원을 또 찾아야 했다. 보호자인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괜히 의사 선생님께 한숨과 응석을 한 무더기 늘어놓았다.

그래서 시도해 봤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를 대해야 하는 그분들의 속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매일 같이 낑낑대는 여린 생명들, "선생님, 얘가 대체 왜 이래요?" 다그치는 보호자들. 한 번쯤 이분들의 고충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는 기대만큼 호락호락한 분야가 아니었다. 수의사 선생님들은 언론 인터뷰를 많이 어려워했다. 자신들의 일이 왜곡되고 와전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 여유 있게 인터뷰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어렵사리 수의사 선생님 한 분을 섭외해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선생님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수의사가 신뢰하는 환자는...

회복중인 가을이. 건강한 발톱이 4mm정도 자라났다.
 회복중인 가을이. 건강한 발톱이 4mm정도 자라났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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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수의사가 되셨나요?
"아버지께서 시골서 한우를 대상으로 하는 가축병원(시골 동물병원은 산업용 동물을 다루다 보니 동물병원이라는 명칭보다 가축병원을 많이 씀)을 하세요. 어릴 적부터 많은 동물과 접촉을 했죠. 예를 들면, 길이나 냇가에 다쳐 누워있는 두루미, 꾀꼬리,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자주 왔어요.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수의사가 된 것 같습니다."

- 수의사도 직업병이 있나요? 전문 직업인으로서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고충이 있다면요?
"해부학을 배울 때,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으면서 이건 몇 번 척추인가 이야기한 게 기억이 나네요. 일반 타 직업과 비슷할 것 같아요. 시장은 한정돼 있고 동물병원의 수는 많아지니 경쟁이 과열되고,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제일 크겠죠." 

- 선생님이 키우시는 반려동물을 소개해 주세요.
"동물병원을 하다 보니 유기견이나 유기묘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많이 키우게 됩니다. 동물병원 초창기 때 만난 봉구가 그렇죠. 봉구는 코카 스패니얼인데 지금 신부전을 앓고 있어서 매일 약을 먹어야 하지만 아직도 뛰어노는 걸 좋아해요."

-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보통 오전 9시 정도 출근해서 오후 9시까지 근무합니다. 자영업이거니와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직업이라 근무 시간을 넘기는 일이 많죠. 낮에 수술 했거나, 많이 아픈 아이가 입원한 경우는 밤새 지켜보기도 합니다. 주말 전에 그런 아이가 오면, 주말도 병원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죠. 요즘은 마음을 좀 바꿨어요. 많이 아픈 아이가 오면 보호자에게 1인 병원의 입장을 설명하고, 24시 병원에 가시길 권합니다. 오랜 단골 분이나 여기 아니면 다른 데 안가겠다는 분의 아이만 돌보고 있습니다."

- 진료를 보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요?
"생각나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요크셔테리어로 1.5kg 정도의 작은 아이였습니다. 복숭아씨가 장에 걸려 있는 상태였죠. 보호자는 비용 문제 등으로 수술을 거부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셨어요. 그냥 가시나 보다 하고 진료대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 애가 제 옆으로 혼자 걸어와서 제 뒤꿈치를 톡톡 치는 거예요. 보호자는 안 보이고... '수술해 달라는 얘기인가?' 해서 새벽에 응급 수술을 했습니다. 며칠 입원해 잘 회복하고 퇴원했죠. 지금 생각하면 뿌듯하긴 한데. 병원을 연 초창기에 의욕이 넘칠 때였거든요. 만약 수술하고 잘못됐으면 어찌 됐을까를 생각하면 참 겁이 없었어요."

- 의사 선생님도 선호하는 고객(보호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신뢰가 쌓인 고객입니다. 믿고 따라주는 고객이죠. 손님들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시죠. 수의사도 양심껏 진료해야 하고, 검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잘해야겠죠. 신뢰가 생기지 않으면 서로 많이 피곤하게 됩니다."

- 가장 치료가 어려운 환자(개체)는 어떤 경우일까요?

"사나운 아이죠. 아이는 사나운데, 보호자는 '우리 애는 엄청 순해요' 하는 경우가 어렵습니다."

- 선생님만 알고 있는 동물 다루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보호자가 하기에 따라 아이의 성격 형성이 달라지고,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보호자의 잘못된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듣기 싫어하시는 분도 꽤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리곤 하지요."

- 동물병원도 트렌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 새로 생기거나 줄어든 질병이 있을까요?
"이젠 동물병원 장비도 많이 좋아졌고, 보호자들의 의식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저희 병원 같은 경우는 노인성 질환들(심장병, 당뇨, 신부전 등)이 많이 늘었습니다. 반면에 어린 강아지의 전염병(파보바이러스 장염, 홍역)들은 많이 줄었죠."

주인이 하기에 따라 반려동물들의 성격과 습관이 형성된다.
 주인이 하기에 따라 반려동물들의 성격과 습관이 형성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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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마다 가격 천차만별? 이유 있다

- 현실적인 질문드립니다.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라 보호자는 아픈 아이를 안고 쩔쩔 매곤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란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병원들도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비용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중성화 수술을 한다고 하면, 보호자는 A 병원하고 B 병원의 가격을 비교할 겁니다. 이때 A 병원은 수술과 간단한 항생제 처치만 하고 10만 원을 받고, B 병원은 마취 전 혈액검사와 건강 체크를 하고 이틀 정도의 후처치를 해서 20만 원을 받는다면, 두 병원 가격은 거의 비슷한 거예요. 그런데 보호자가 '남자아이 중성화 수술은 A 병원이 10만 원, B 병원은 20만 원'으로만 판단하면 '진료비가 두 배나 차이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정석은 B 병원이고 A 병원은 편법이죠,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 강아지 훈련에 있어서 복종과 서열을 중요시하는 훈련법과 눈높이를 맞춰 칭찬과 반복으로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요즘 견주들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노력이겠죠. 두 가지 다 맞는 방법이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아지의 성격에 맞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보호자분이 어떤 걸 더 잘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겠고요. 전문가들과 상담을 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겠죠."

-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에게 "제발 이러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어린 강아지를 처음 키우시는 보호자들 중에 간혹 있는 경우가, 너무 조심스럽다 보니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인터넷에는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잘못된 상식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꼭 전문가들과 상의해 보시고 정말로 옳다고 판단되는 걸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돈이 안 드는 쪽의 방법을 옳다고 보시기도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물병원 수의사란 직업은 돈 많이 벌고 편한 직업이 절대 아닙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 어디 아픈지를 알아야 하고, 깐깐한 손님의 비위를 맞춰야 하기도 하지요. 치료를 잘 따라 주지 않는 동물, 보호자와의 실랑이 등 피곤한 직업입니다. 그래도 사납게만 굴던 아이가 아프다고 눈물을 그렁거리며 쳐다보고 있을 때, '그래 내가 고쳐줄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죠. 병이 다 낫고나면 다시 사나운 아이로 돌아가지만요. 마음은 뿌듯합니다."


태그:#동물병원, #수의사, #유기견, #가을이, #가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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