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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출신인 내게 냉면은 낯선 음식이었다. 냉면을 처음 맛본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서울내기 큰자형이 데리고 간 어느 식당에서였다. 매운 고춧가루와 가오리를 함께 무쳐 내놓은 함흥식 회냉면이었다. 면 음식을 별로 즐기지 않던 내게, 매콤달콤한 함흥냉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양념 고춧가루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깨끗이 비웠다.

그 뒤로 냉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목록의 맨 첫 자리를 거의 항상 차지했다. 불현듯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백석의 <국수> 중) 그 맛이 떠오를 때가 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함께 자취하던 친구와 함께 밤늦게 냉면 집을 찾아 헤맸던 십유여 년 전 어느 겨울 밤 일이 바로 어제 일 같다.

<냉면열전>은 제목 그대로 냉면의 모든 것을 살핀 책이다. 냉면의 역사적인 기원과 변천사, 우리 민족의 냉면 사랑,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냉면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특징 하나하나를 샅샅이 훑는다. 냉면에 대한 사회·문화사적인 고찰이라고 해도 되겠다.

저자에 따르면 냉면은 한국 음식 가운데 최고의 광신도들을 거느리는 음식이다. '평뽕'이라는 별칭의 마니아 집단이 있는 평양냉면이 특히 그렇다. 평양냉면에 마약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다고 믿는 이들 '광신도'들은 전국의 냉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밍밍한 육수 맛을 비교·분석하고, 반죽에 들어간 메밀 함량을 따진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냉면을 먹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냉면의 출발이 면의 주재료인 메밀의 기원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삼국시대 전래설, 신라 말기 전래설 등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정확한 문헌 기록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냉면'이라는 단어가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중기인 17세기 초다. 대문장가인 계곡 장유의 문집에 있는 한 시에서라고 한다. 그런데 시 제목이 특이하다. '자장냉면'이다. '자장면'을 '차게' 만든 것일까.

장유의 시문에서 '자장냉면'은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비치고 / 옥색 가루는 눈꽃처럼 흩어진다"(35쪽)처럼 묘사된다. 저자는 이 '자줏빛 육수'를 오미자를 우려 낸 육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한다. 오미자 육수는 꿀물 육수와 함께 요즘은 전혀 쓰지 않는 조선시대만의 육수였다고 한다.

저자는 조선 후기 세시 풍속기인 <동국세시기>를 참조할 때, 현재 우리가 먹는 것과 거의 똑같은 냉면은 적어도 19세기부터 있었다고 본다. 1917년에 나온 <조선요리제법>과 같은 책에서는 냉면을 여름냉면과 겨울냉면으로 구별해 기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냉면을 여름 음식 정도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찬 겨울 동치미 국물로 만 겨울냉면은 낯설게 다가올 것 같다.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냉면 파업'에 관한 내용을 보자. 짜장면과 짬뽕과 같은 중국 음식 이전에 배달 음식의 대명사는 냉면이었다고 한다. 냉면 파업은 그 배달 냉면을 두고 벌어진 이야기다.

냉면 배달부는 냉면집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배달 잘하는 일꾼은 서로 고액을 줘가며 스카우트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냉면 배달에는 한 손으로 냉면 그릇과 육수 주전자를 올려놓은 널찍한 목판을 들고 다른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아야 하는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했다. 냉면 배달부들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

1920년대 냉면 배달부들의 파업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1929년 가을에도 평양의 냉면 배달부들은 임금을 높여달라며 파업을 했는데 여기에 참가한 인원은 무려 160여 명이었다. 당시 14만 명이었던 평양의 인구를 생각하면 꽤 많은 숫자다. (92쪽)

1929년의 파업에서 냉면집 주인들은 배달부들을 모두 해고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한창 제철인 겨울에 냉면을 먹을 수 없게 되자 평양 시민들이 크게 반발한다. 평양 경찰서장이 중재에 나서 배달부를 다시 채용하라고 명령하고, 불복할 때는 영업 정지를 시키겠다고 엄포를 높았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당시 '냉면 파업'은 평양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에 나오는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함흥냉면은 평양냉면과 함께 명실공히 냉면계의 양대 패자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묘사를 빌리면 매콤하게 삭힌 홍어나 가자미 무침과 함께 질기디질긴 면발을 입으로 쭉쭉 끌어올려가며 먹는 게 함흥냉면이다. 그 함흥냉면이 함흥에 없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저자의 붓끝을 따라가보자.

원래 함흥 사람들은 고추 양념을 넣고 맵게 비벼 먹는 비빔국수('농마국수'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농마'는 녹말의 북한식 사투리다.)를 즐겼다고 한다. '함흥냉면'으로 불리는 음식은 없었던 것.

그러다가 1950년대 서울 오장동 거리에 고 한혜선 할머니가 오장동 함흥냉면집을 최초로 연다. 한 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데리고 월남했다가 생계를 위해 시작한 것이 고향의 농마국수 장사였던 것이다. 한 할머니의 가게는 이름도 없이 시작되었으나 손맛 좋은 할머니의 음식 솜씨 덕분에 이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직후 서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평양냉면이었다. 할머니는 육수를 부어 먹는 메밀국수를 '평양냉면'이라고 하니 농마국수는 '함흥냉면'이라고 이름 붙이자고 생각했고 동네가 오장동이니 '오장동 함흥냉면'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함흥식 농마국수가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은 첫 순간이었다. (185쪽)

함흥냉면의 질긴 면발은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냈다. 함흥냉면은 "한번 입을 대면 중도 포기란 어려운 것"(188쪽)이어서 "냉면의 3분의 1은 위 속에, 3분의 1은 입안에,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그릇 속에 남는다."(189쪽). 길쭉한 ○○○ 과자를 양쪽에서 물어가며 먹는 연인들처럼, "함흥의 연인들은 한 그릇의 냉면을 함께 먹는다."(189쪽)

저자는 냉면에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국인의 정서와 우리의 근현대사가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냉면이 비단 한국인에게만 '소울 푸드'일까.

미국에서 자란 탓에 평양냉면의 맛을 모르던 가수 존 박은 최근 평양냉면에 푹 빠져 냉면 예찬론자가 되고, 급기야 '냉면 성애자'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고 한다. 냉면의 특별한 매력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더 많은 이가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냉면의 마력에 빠졌으면 좋겠다.

<냉면열전>(백헌석·최혜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 7. 30. / 278쪽 / 14,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냉면열전 - 담백하고 시원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백헌석.최혜림 지음, 인물과사상사(2014)


태그:#<냉면열전>, #백헌석, 최혜림 지음, #인물과사상사, #함흥냉면,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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