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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발생한 태백선 열차충돌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노사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코레일은 사고의 원인에 대해 매너리즘, 근무기강 해이 등 기관사 개인의 문제로 판단한 반면, 철도노조는 '기관사 1인 승무'를 비롯한 안전시스템 미비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반박했다.

 

코레일은 이번 사고가 전형적인 '인적 오류'에 따른 사고라고 강조했다. 신호장치와 자동열차정지장치(ATS) 등 각종 안전시스템이 있었음에도 기관사가 정지신호를 확인하지 않는 등 안이한 태도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1급 본부장과 간부 2명, 해당 기관사 등 모두 4명을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철도노조 측은 정면충돌 사고가 난 것에 대해 기관사의 책임을 면할 순 없지만, 사고의 근본원인은 '인적 오류'가 아니라 안전시스템 상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경영 효율화만 내세우며 안전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코레일 측이 사건의 확대를 막기 위해 기관사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코레일 "전형적인 인적오류"- 노조 "안전시스템 문제" 

 

관광열차인 O-트레인(중부내륙순환열차)이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한 것은 지난 7월 22일 오후 5시 49분 태백역∼문곡역 사이 단선 구간에서였다. O-트레인 기관사 신아무개(49)씨는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문곡역을 그대로 지나쳤고, 정거장 밖에서 기다리던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하면서 열차 2량이 탈선, 1명이 숨지고 93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신씨가 열차 운행 중 휴대전화 전원을 끄도록 한 규정을 어긴 채 탑승했고, 사고 6분 전인 오후 5시 43분까지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일명 카톡)'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신씨는 당시 오른손으로 운전 레버를 잡은 채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검찰은 지난 12일 신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업무상 과실 기차교통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씨는 휴대전화 조작 등으로 적색 정지신호와 자동열차제동장치(ATS)의 경보음, 관제사의 무전교신을 무시한 채 문곡역에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검찰의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기관사의 안이한 근무태도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인적 오류에 따른 사고"라는 코레일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기관사 1인 승무', 안전시스템 미비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했다. 철도노조는 "이번 사고처럼 단선 구간에서의 1인 승무가 열차 정면충돌 등 사고를 유발할 수 있음을 수차례 경고하고 반대했는데도 공사 경영진이 효율화를 이유로 이를 묵살하고 강행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그런데도 공사 경영진이 그 책임을 현장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었다면 기관사가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등의 과실을 범했더라도 열차 정면충돌과 같은 대형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의 현업 기관사들은 태백선 열차 충돌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안전시스템 마련, 1차적으로는 단선구간에서의 1인 승무 중단 등을 촉구하며 정복을 착용하고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한 철도노조의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지도부, 5개 지방의 본부장 및 지부 간부들은 지난 12일부터 서울역에서 릴레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13일, 노조가 농성 중인 서울역을 찾았다. 노조 측은 기관사의 개인 오류 이외에 기차를 통제할 수 있는 열차시스템과 기차외부의 신호체계 부재가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이라고 판단했다. 김성식 철도노조호남본부장은 "기차가 개인 승용차도 아니고 기관사 한 명에 의해서만 통제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기관사가 오류를 범했을 시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이 기차를 통제할 수 있는 안전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일반 기차는 최소한 3가지 이상의 오류가 한 번에 발생해야 사고가 나도록 되어있다. 즉 기관사, 열차자체시스템, 기차외부의 신호체계가 모두 기차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부선 철도에서 기관사가 신씨와 같은 오류를 범할 경우 기차 자체의 자동열차방호장치(ATP)가 작동해 자동으로 열차의 속도를 줄여, 선행열차와 후행열차 간의 거리를 통제한다. 기관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차 자체의 안전시스템이 기차를 통제하는 것이다.

 

만약 자동열차방호장치(ATP)마저 작동하지 않더라도 기차외부에서 기차의 노선을 강제로 바꾸어 충돌을 방지하거나, 최악의 경우 해당기차만 탈선시켜 정면충돌을 피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러나 태백선의 경우, 기관사 외에 기차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철로에 비해 구조적으로 사고방지에 취약하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경부선은 선로가 2개인 복선구조, 신호가 5가지 종류인 5현시(정지, 주의, 감속, 경계. 진행 5가지 종류) 체계인 반면 태백선은 선로가 하나인 단선구조, 신호가 3가지 종류인 3현시(정지, 주의, 진행 3가지 종류) 체계다. 또한 이번에 사고가 난 O-트레인은 기차 자체 시스템이 자동열차방호장치(ATP)보다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는 자동열차정지장치(ATS)였다.

 

단선구간에서 O-트레인 '기관사 1인 승무'... 왜?

 

단선구간인 태백선의 O-트레인이 '기관사 1인 승무'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성식 본부장은 "이런(기차 자체의 안전 시스템이 불안한) 상황에서 사고열차인 O-트레인에만 '기관사 1인 승무'가 무리하게 도입돼 기차 통제가 전적으로 기관사 한 명에게만 집중됐다"며 "기존의 2인 기관사(기관사, 부기관사) 체제보다 기관사의 부담이 훨씬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근본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철도노조는 태백선 사고 이전 코레일의 단선구간 '기관사 1인 승무' 추진에 대해 대형 참사 위험성을 경고하며 저지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코레일은 이 저지투쟁 참가자 11명을 해고하고 수십 명을 중징계 처리하면서 단선구간 '기관사 1인 승무'를 관철시켰다.

 

최정식 철도노조 운전국장은 "코레일과 철도노조의 2008년 협상 당시 단선구간의 '1인 승무'는 복선과 5현시 ATP 신호체계를 전제조건으로 실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그 당시 코레일 측도 '태백선 구간의 경우 선로 상태가 좋지 않은 산악지형이고, 신호 체계도 3현시의 기존 ATS였기 때문에 당연히 '1인 승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코레일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O-트레인은 1인 승무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관광열차이고, 2008년 단선구간의 '1인 승무' 사항은 노사 간에 합의가 됐으므로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2008년 '1인 승무' 합의 시의 전제조건(복선, 5현시 ATP 신호체계)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합의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관련한 사항을 논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겨레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철도노조, #태백선, #열차 사고, #충돌,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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