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김한민 감독의 <명량> 기세가 파죽지세다. '15일만에 누적관객수 12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만들어내면서 한국 영화사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그만큼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명량은 졸작"이라는 진중권의 SNS글에서 시작된 논란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진중권의 발언에 공감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게 아니다. 왜 진중권이 '졸작'이라고까지 표현한 이 영화가 압도적인 성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이 영화의 완성도 자체만으로 쏟아져 나오는 신기록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명량>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등 호화로운 캐스팅 라인업과 이순신의 명량대첩이라는 콘텐츠 때문에 이미 개봉 전부터 이 영화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특히나 최민식과 류승룡이라는 자타공인 국민배우가 둘이나 포진해있는 것은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마땅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기록들을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같이 <명량>의 출연진보다 더 호화로운 라인업이 포진해있는 경우도 있었고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과 같이 국민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영화도 이미 있었다. 물론 개인차이가 있겠지만 영화의 콘텐츠나 라인업만으로는 <명량>의 흥행속도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명량>이 기존 천만 영화들과 대비되는 점이 바로 하나가 있다. 바로 올해 2014년에 개봉됬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의아할만큼 2014년에는 유독 사고가 많았다. 말레이시아 항공 실종 사건에서부터 최근에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협까지 다른 해보다 유난히 더 사고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 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그중에서도 가장 국민들한테 충격을 안겼던 사고가 바로 세월호 사고다. 이미 몇몇 유명 연예인들까지 가세한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은 한 달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좀처럼 진전이 되는 모습이 보이질 않고 몇달이 지났음에도 사고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보이지도 않는다.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이 구조되지 못하는 모습,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는 듯한 모습,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한 달 가까이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기 자신을 그 상황에 대입하며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차츰차츰 잃어나갔을 것이다.

아무리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 만연한 안전불감증, 사건에 대한 무기력증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게 <명량>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명량>에서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전 모습은 2014년의 대한민국과 닮아 있었다. 권율이 일본 수군에게 대패하고 나서 한양까지 왜군이 진격하는거는 시간문제로 보였던 1597년과 세월호 사건으로 안전불감증을 느끼는 2014년은 백성 혹은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외부적 침략이나 재난에 끝까지 나라를 지켜야될 국가에 회의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명량대첩을 보면서 관객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단순히 한국인으로써의 자존심을 지켜줬기 때문도 있겠지만 명량대첩이 백성들에게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명량>이 이순신과 같은 리더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갈증을 풀어줬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명량>이란 영화는 국가를 이루는 대중들의 힘을 보여준 영화다. 이순신의 판옥선이 사방으로 둘려쌓여서 왜군들의 육탄전을 군사들이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우지 않았다면, 회오리에 빠졌을 때 백성들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명량대첩의 승패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명량>은 어느 정도 영웅담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순신이 장루에서 직접 내려와 왜군들을 물리쳤을 때보다는 자폭선이 다가왔을 때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장면이 더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백성들의 희생정신이 임진왜란이라는 재난을 극복했을 때의 희열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페이소스(pathos) 아닌가 싶다.

마지막에 이순신은 자신의 아들에게 백성이 날 구한게 바로 '천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두 백성의 힘이 아닌 많은 백성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뤄진 천행이다. <명량>이란 영화를 보고서 극장가를 빠져나오면서 관객들은 백성의 힘을 직접 목격하며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국난을 극복한 백성들의 힘이야말로 '명량'이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이유이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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