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 쯤이면 공포영화들이 차지하고 있던 극장가. 하지만 올해는 국내 대작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연이어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그리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쇼박스, CJ 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 배급사를 등에 업고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같은 기간 <프란시스 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등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는 물론이고 마블의 기대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조차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세 편의 국내 사극 블록버스터의 기세가 얼마나 센지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리더십이 부재한 시대에 이순신의 리더십을 복원한 영화 <명량>은 역대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전성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메인 포스터

▲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메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앞선 두 편의 블록버스터 <군도> <명량>과는 다른 성향의 작품이다. 사극적 배경 속에서 활극의 스타일을 가진 <군도>와 비교적 고증에 충실한 정통사극 <명량>과는 달리 기본적 설정만 사극일 뿐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 어드벤처 코미디물이다.

어드벤처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재미를 최우선으로 하는 장르다. 단순하지만 유쾌한 서사와 재기발랄한 유머로 런닝타임이 가득 채워진 것도 그 때문이다. 유쾌함 속에서 마음껏 깔깔대는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 속에서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를 위해 영화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명품 조연들을 싹쓸이 하다시피 끌어와 곳곳에 배치해놨다. 스스로 영화의 동력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해도 될 만한 활약을 펼친 유해진을 비롯해 오달수·박철민·신정근·김원해·조희봉·안내상·이대연 등은 존재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손예진·김남길·이경영·김태우가 연기한 네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를 끌어가지만, 그 만큼 중요한 웃음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손예진과 김남길을 비롯한 주연배우들 역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특히 이런 류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을 손예진은 해적 여월의 역할을 맡아 돋보이는 미모와 안정된 연기력으로 서사의 중심을 책임진다.

김남길 역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낳은 독보적인 캐릭터 잭 스패로우를 떠올리게 하는 장사정 역을 매력적으로 연기해냈다. 장사정과 여월은 고래가 삼킨 국새를 찾는다는 서사의 중심에서 극을 생동감있게 이끌어가고 멜로와 코미디적 역할까지도 적절히 해내며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따. 이쯤되면 이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한국형 <캐리비안의 해적>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마치 쌍끌이 그물로 쓸어온 듯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마치 쌍끌이 그물로 쓸어온 듯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같은 어드벤처 코미디 장르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은 듯하다. 단순히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설정과 유쾌한 전개 등의 유사성은 물론이고 잭 스패로우를 포함한 여러 등장인물들을 참조한 듯한 캐릭터와 인상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오마주한 장면들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벽란도에서 물레방아가 굴러떨어지는 장면 등은 완성도나 재미가 충분하다. 영화가 단순히 흉내내기를 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오마쥬를 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 초기, 고래가 삼킨 국새를 찾는다'는 서사는 그저 이야기가 발화하기 위한 장에 불과하다. 백성들을 도외시하고 명분만을 쫒는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주제도 결코 심각하지 않은 선에서 그친다. 영화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고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 듯하다.

물론 <캐리비안의 해적>과 비교해 캐릭터가 충분히 강렬하거나 매력적이지 못했고, 얼마간 사극적 현실에 기반한 서사 역시 마음껏 자유로워지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이제껏 한국영화계에서 볼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어드벤처 코미디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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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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