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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8사단의 고 윤 일병 사망사건 등 잇따른 군 장병들의 자살로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고,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젠 정말 병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부사관으로 장기간 군 복무 후 전역했으며, 관련 병과는 군대 내 각종 사고 및 사병들의 건강관리와 밀접한 의무 병과였습니다.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는 병사들의 현실

저는 연대급 부대의 의무중대 선임 부사관으로 장기 복무하다 전역했습니다. 군내에서 수많은 폭력 및 추행, 자살, 사건사고 등을 자주 접한 바 있고 사고 처리에도 수없이 간여했습니다.

필자는 군내의 수많은 사고를 처리하며, 일선에서 관련 현실을 많이 접했습니다. 전역 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과거와 같은 폭행, 가혹행위, 성추행, 자살 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군내 각종 사건사고 예방에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의 방안에 대해 고민해왔던 바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의견이 군내 사건 사고 방지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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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출범한 병영문화혁신위원회(혁신위)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가 지난 13일 JT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글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사들, 지휘관과 대화에 목 말라 있다" 등 신인균 대표의 말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답변입니다. 혁신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군이란 철저히 상명하복, 군사보안으로 통제받는 집단입니다. 혁신위든, 국회 국방위원이든 누가 몰려가도 지휘관의 언질 한 마디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병영을 혁신할 수도 없습니다.

병사들이 지휘관과 대화를 갈망한다는 말도 현실과 다릅니다. 병사들은 절대 지휘관, 특히 장교들과 가까이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군기가 바짝 들어 관등성명만 외칠 뿐입니다. 본인들의 고충이나 현실에 대해 얘기할 경우 직속 지휘관들과 선임들의 후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판에 박힌 듯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부모가 면회를 간다고 해도 "오지 말라"하고,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던 윤 일병의 이야기만 들여다봐도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병 현실 모르는 위로부터의 정책 '하달'

각자 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해결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현직 군 장성들조차도 계급의 위치와 의무 등의 다양한 요인을 비롯 사병생활을 거쳐 보지 않은 부족한 경험들 때문에 사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사병 간에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에 제대로 된 대처는 고사하고, 구태 이론 외에는 해결법을 제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군일반명령으로 '구타근절'의 명령서가 전군에 하달된 것이 무려 35년 전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명령을 예하부대에 내려 보내도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명령은 곧 유명무실화 되기 마련입니다.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이 "구타 근절하라, 얼차려 근절하라"해도 일선 예하부대에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명령과 더불어 각종 실현 가능한 제도가 동시에 시행돼야 하는데, 우리 군은 내부와 외부가 철저히 분리돼 관련 사건이 철저히 은폐된 채 악순환만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방법 중 내부고발 시 포상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는데, 이 또한 큰 효과가 없으리라 단언합니다.

내부고발을 위한 포상은 당연히 사병 사이에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부사관, 장교같은 지휘관들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폭력행위가 발생했을 때 제 3의 병사가 신고를 통해 포상을 받았다고 합시다. 병사는 포상을 받을지 모르지만 해당 지휘관은 '어떻게 지휘하기에 폭력행위가 발생했냐'고 책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연스레 진급 문제와 겹치게 되고, 내부고발 병사에게 앙금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의 연대책임 선상에 모든 지휘관들이 놓여 있기 때문에 지휘관은 결코 사건사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이는 사건사고가 나면 지휘관들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사고를 덮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병영혁신, 병영문화 개선이든 제대로 바꾸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이론이 있어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또 국방부와 정부의 실현 의지가 없다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온 방안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친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 고 신 상병 친구들 "친구위해 왔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친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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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에게 건강보험 적용... 고통 호소할 창구 넓혀야

먼저 군의 전산화된 의무기록을 민간과 공유해야 합니다. 의무기록을 군과 민간이 공유해 병사가 군병원이나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업무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병사의 상태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병사들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합니다. 병사들은 입대와 동시에 건강보험이 미적용 처리 됩니다. 물론 휴가 등의 사유로 군 밖에 나와 있을 경우엔 민간병원을 이용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군내에서 복무 중일 땐 건강보험 급여정지 대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군병원의 의료 서비스 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군내 사건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상황을 발견하더라도,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고 병사들이 방치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군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복무하는 군의관도 군인이고, 장교입니다. 병사들이 군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더라도, 계급이 강조되는 군의 특성 때문에 제대로 자신의 증상이나 마음 속 이야기를 제대로 털어 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22사단의 한 병사가 군병원에 증상을 호소한 지 5개월 만에 뇌종양 판정을 받고 중태에 빠진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일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과 군의관이 과연 민간병원 정신과 전문의에 비해 얼마나 병사의 고통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만약 군 입대 전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고통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민간병원의 비교적 소통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료 과정 중 구타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상담을 통해 현 상황을 담당의가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집니다. 또 이를 사법기관에 자료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법률적 연계 장치를 만든다면 군내 구타는 일정 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더불어 군병원의 오진이나 미진단으로 뒤늦게 병을 키운 후 사망하는 사례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셋째, 전역까지 1회뿐인 건강검진을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바꿔야 하며 분기에 한 번 신체검사를 전군 실시해야 합니다. 21개월 군 생활 동안 최소 2회 이상의 건강검진을 통해 병사들의 건강증진에도 기여하고 또 각종 중증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엔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 건강한 병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신체검사와 건강검진을 통해서 구타 및 각종 폭행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활용, 지휘관들이 구타 및 폭행 처리에 관심을 갖고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병사들의 고충을 발견한 지휘관을 포상한다면 자연스레 군내 구타 및 폭행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상 발생 시 사법체계와 지휘라인에 바로 신고토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이상 발생과 소견이 필요할 시, 담당 의사나 검진자가 필히 신고하도록 하고, 지휘관에게 바로 통보하도록 함으로써 더 큰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상급부  한 이를 토대로 해당 지휘관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잘 대처했는지 살펴보고, 처벌이나 불이익보단 상훈이나 진급 등으로 포상한다면 군내의 각종 사건 사고는 반드시 줄어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덧붙여 군병원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장기 입원병사의 진료나 치료에 주력하고, 또한 병사들의 군 생활 적응 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미적응 병사의 재활이나 의가사제대 등을 적극적으로 심사하고, 전시와 작전훈련지원 등에 힘써야겠습니다.

이상이 제가 제안하는 군내 사건사고 근절을 위한 병영혁신 방안입니다. 제 뜻과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저의 군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가장 현실적인 접근을 취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한 끝에 제언한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 우리 젊은이들을 건강하게 지켜내고, 무사히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항의서한 전달을 위한 진입이 가로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 "한민구 장관 나와라" 오열하는 유족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항의서한 전달을 위한 진입이 가로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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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 폭력, #구타근절, #병영혁신, #윤일병사건, #군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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