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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문제가 전 국민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즘, <오마이뉴스>와 한국의료협동조합은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우리동네 주치의' 의료협동조합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을 함께 짚어 봅니다. [편집자말]
초고령화시대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는 가족형태도 많이 변화해서 4인가구보다 1인가구가 훨씬 많아졌다. 기대여명은 80세가 넘는데 건강수명은 66세이다. 애석하게도 외롭게, 골골하게, 오래 산다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 의료협동조합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의료협동조합이 전국 여기저기 많아서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경영이 건실하여 지속가능하고 조합원들의 욕구가 늘어나는 대로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 조합원들은 출자, 이용, 운영에 충실하다. 민주적 운영이 활성화되어 소속감이 높고 자발적 참여가 서슴지 않고 이루어진다. 지역사회 건강증진에도 기여하여 지역사회안전망이 강화되고 의료복지사각지대가 없다.

조합원들은 산행모임도 같이 하고, 춤도 같이 추고, 영화도 같이 보고, 아기도 같이 키우고, 밥반찬도 같이 만드는 생활공동체가 된다. 건강할 때 건강을 함께 지킬 뿐더러 내가 건강할 때 아픈 이를 돌보고, 내가 아플 때 돌봄을 받는다.'

의료협동조합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이렇게 사는 동네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협동조합은 무려 400개가 넘는다. 그 중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아래 연합회) 소속 의료협동조합은 20개에 불과하다. 의료생협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해 편법으로 설립된 '유사' 의료협동조합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양질의 의료협동조합이 오히려 소수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적 확산보다는 건전한 의료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연합회 소속 의료협동조합은 2013년 모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로 결의하여 진행 중이다. 섣불리 '1구 1의료협동조합'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양질의 의료협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지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본다.

의료협동조합 생태계 조성, 어디부터 시작할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공동육아소모임 '아이에게도 성이 있다' 2014. 7. 26.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공동육아소모임 '아이에게도 성이 있다' 2014. 7. 26.
ⓒ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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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0개의 의료협동조합은 다양한 뿌리를 가지고 출발했다. 안성은 농민회와 연세대 의대 기독학생회가, 대전민들레는 지역화폐운동을 하던 팀이, 인천은 대안적인 보건의료모델을 꿈꾸던 기독청년의료인회가, 서울 노원구의 함께걸음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서울 은평구의 살림은 여성주의자들이 시작하였다. 건강하고 즐겁게 마을에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출발점은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의료협동조합은 스스로 건강마을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다. 따라서 새롭게 의료협동조합을 시작하는 곳 중 이미 자치적인 지역활동을 해본 곳이 조금 더 힘 있게 출발할 수 있다. 소비자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운동단체들, 또 적어도 세상을 훨씬 더 협동적이고 우애있게 만들고자 하는 꿈을 꾸는 몇 명이 있다면 시작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association'이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주민이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의료협동조합이 의료기관을 만들려면 근거리 조합원이 2000명은 넘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의료생협이 주는 교훈이다. 재정 악화가 발목을 잡으면 비전을 실현하기 어렵다. 막연한 기대로는 할 수 없다.

협동조합의 이사회는 회의만 하는 구조여서는 안 된다. 결정된 내용을 책임지고 실현시키는 이사진이어야 조합에 힘이 있다. 자칫 조합원과 이사진이 아닌 직원 중심의 조합이 되면 체질이 허약해진다.

그래서 의료협동조합 설립상담은 실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상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나갈지 민주적인 회의진행법도 익혀야 한다. 설립목적에 따라 경영지표를 해석하고 보완해나가는 역량도 길러야 한다. 인사노무관리도 필요하다. 사업소 자리는 어디로 어디가 좋은지, 인테리어에서 유의할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상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이라는 말이 계속 화두가 되고 있다. 의료협동조합의 생태계 조성도 한 번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진영의 성장을 통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영이 튼실한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야 생태계도 발전하고 기금도 모을 수 있다.

우리로서는 당장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할 수 있는 방안은 정부 소유의 유휴지·유휴공간을 협동조합에게 무상 대여 혹은 저가에 공급 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공간은 상상만 하던 사업을 실현하는 좋은 바탕이 된다. 특히 대도시의 임대료가 상당한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일정 기간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장기저리대출도 좋다.

협동조합도시로 유명한 캐나다 퀘벡의 샹띠에 네트워크는 15년 거치가 가능한 자본을 빌려준다. 이것을 인내자본이라 하는데 그렇게 기다려주는 자금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 가능하도록 신협이 다른 협동조합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비조합원 이용 50%로 제한... 농협은 안 그런데 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어르신들을 위한 근력강화 프로그램 '흰머리 휘날리며'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어르신들을 위한 근력강화 프로그램 '흰머리 휘날리며'
ⓒ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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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료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다. 의원, 치과, 재가장기요양기관, 요양원, 그룹홈 등 고령화에 따른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고, 그것은 1인 1표제처럼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양심적 사업체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제도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의료협동조합의 경우 사회적협동조합이며, 의료기관을 운영하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관할 하에 있다. 의료기관은 비조합원 이용을 50%로 제한하고, 사업영역도 의료기관이 있는 시군구로 제한하고 있다.

일반의료기관은 아무런 제한이 없는데 의료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조직에 그런 제한을 두는 것은 명백히 역차별이다. 심지어 농협도 이용자 제한이 없는 것과 비교한다면 협동조합 간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비조합원 이용 제한은 조합원 가입률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하지만 조합원이 스스로 정하면 되는 것이지 법에서 정할 문제는 아니다. 의료협동조합이 불건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전제로 인가를 까다롭게 적용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문제다.

유사 의료협동조합은, 의료기관의 파행적 운영이 문제인 만큼 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 조직활동이 기본인 협동조합의 운영 내용을 심사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협동조합을 위축시키기 십상이다.

설립인가는 해당 공무원이 담당한다.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의 경험이 적기 때문에 대개 공무원은 협동조합이 뭔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협동조합기본법은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고 사회적경제기본법, 사회적가치기본법 등이 준비되고 있는 실정이니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공무원도 의료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창궐하는 유사 의료협동조합에 대한 통제도 가능하다.

협동조합 활성화에서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실무자 혹은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가 짧으니 당연하겠지만 협동조합다운 운영을 담당할 실무자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활동가 양성 및 보수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문제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참여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아직 협동조합이 영세하여 직원을 보내기 어려울 수도 있고, 협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고 만들어서 교육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경우도 있다. 현실에 꼭 맞는 프로그램과 강사진이 부족할 수도 있다.

자생적 네트워크의 목소리부터 귀 기울여야

한국의료협동조합 20주년 심포지움
 한국의료협동조합 20주년 심포지움
ⓒ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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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설립상담, 법제도정책 개선 활동, 공무원 및 실무자 교육, 운영 컨설팅 등이 필요한데 이것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간 정부 지원이 없더라도 활동해왔던 자생적 연합회와 협의체들을 지원하여야 한다. 연합회와 지역 협동조합 협의체도 소득공제가 가능하여야 한다.

이들은 회원조합의 회비 구조로 운영되기에는 사업 영역이 매우 크고, 실질적으로 생태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소위 '중간지원조직'을 새로 만들기 전에, 이런 자생적 네트워크의 필요와 욕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가 협동조합 활성화 정책으로 가는 것이다.

좋은 의료협동조합이 많아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협동조합은 적어도 이윤추구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잇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업체이므로 크게 보면 자본주의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싹을 틔우려는 약자이다. 법제도가 이들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형평성에 맞는 일이다.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이웃과 더불어 안심하고 나이 들어 가고자 하는 의료협동조합의 꿈은 지역주민이나 공무원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모두가 꾸는 꿈이다. 정부는 의료의 공공성을 확장시켜나가야 함과 동시에 이런 좋은 의료협동조합이 구마다 하나씩, 동마다 하나씩 생길 수 있도록 자생적인 역량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 과정마저도 민의 자생성을 바탕으로 협치를 정착시켜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이사입니다.



태그:#의료협동조합, #의료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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