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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장기 단식농성중인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 농성장. 8월 13일 현재 단식 31일째다.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장기 단식농성중인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 농성장. 8월 13일 현재 단식 31일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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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들어서면 이순신 동상 바로 앞에 천막 하나가 보인다. 청와대, 광화문 누각, 세종대왕상, 이순신 동상, 세월호 유가족 단식 천막. 거의 일직선으로 웅장하게 늘어선 권력의 문 앞에 있는 천막은 작지만 단호함이 묻어난다.

꼿꼿한 자세로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안산 단원고 2학년 10반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때문일까. 며칠째 태풍의 영향으로 하늘을 덮은 구름이 햇빛을 가린 광장, 단식자가 덜 힘들지 않겠냐며 안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를 만났다. 말을 오래 할 수 없어 몇 번 짧은 인사만 나누다가 단식 24일째 되던 날인 8월 6일 인터뷰를 했다.

"유민이 때문에 버틴다"는 그에게 단식을 오래 하면서 몸에 이상이 느껴질 때 걱정되는 게 뭐냐고 물으니, "더 싸워야 하는데 쓰러져서 싸움에서 질까봐" 두렵다고 했다. 며칠 전 농성장에 왔을 때도 그는 설사로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민이가 왜 죽었는지, 사실규명이 더 중요하다.

그에게 유민이는 정말 착하고 소중한 딸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빠가 용돈을 챙겨줄까봐, 아빠에게 부담될까봐 알리지 않은 딸이다. 유민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아빠, 이거 먹어. 하나 더 먹어. 이게 좋을 거 같아" 하며 아빠를 챙기던 목소리뿐. 왜 잘해준 기억은 별로 없는지…. 유나와 유민이 딸이 둘이 있지만 멀리 아산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자주 보기 힘들어 전화 통화만 가끔 했다.

그래서 그는 편하게 자고 따뜻한 밥을 먹는 걸 할 수 없다고 한다. 진도에 있을 때, 형들이 내려와 밥을 먹으라고 식당에 데려갔지만 밥 한 술만 입에 넣어도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여 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진상규명 때까지 눈물은 참겠다던, 악에 받쳐 눈물이 말랐다던 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목소리가 떨린다.

"지금 밥 먹고 편하게 자는, 이게 다 죄스러워요. 남들이 (단식을) 그만두라고… 몸이 망가진다고 (말리지만), 이게 뭐 대수라고…. 애가 공포에 떨었을 텐데, 난 살아 있는데." 

"유민아, 깡다구로 꼭 버텨야 한다"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1일째,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1일째,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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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이 있던 4월 16일, 아산에서 오전 7시 반에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온 9시쯤 유민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유민이가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는데 배가 침몰하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답답했다. 단원고며, 진도며 상황실에 전화를 했다. 통화중이었다.

그쯤 셋째형에게 전화가 왔다. 전원구조 됐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했다. 애 엄마가 옷 챙겨서 진도로 내려갈 거라고. 11시쯤 잠깐 눈을 붙인 후 12시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보니 정말 전원구조라고 써 있다. 그래서 진도로 내려가는 버스에 탄 애 엄마와 통화했다. 그런데 애 엄마는 아침에 29세라고 나온 여자가 다른 방송에서는 24세라고 나오고 왠지 느낌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서 구조가 안 된 거 같냐고 물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쯤에도 그는 불안하면서도 애가 살아 있겠거니 했다. 그러다 방송에 164명 구조라는 글자를 보고 눈앞이 깜깜했다. 부랴부랴 진도에 내려왔다.

가는 길에 먼저 도착한 애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유민이가 생존자 명단에 없어. 실종자명단에 있어" 하며 울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진도에 도착한 그도 얼마나 울었는지…. 팽목항에서 구조한 배를 기다렸다.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안개가 끼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배가 한 대씩 올 때마다 달려가 확인하던 나날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바다에 대고 유민이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다. 진도 체육관에서 해수부장관 등 높으신 분들에게 항의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다음 날 완전히 바다에 잠겨버린 세월호, 그 안에 애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저기 뛰어들어서 내가 구해줘야 하는데…. 애들이 안에서 엄마 아빠 부르며 울고 있을 텐데…."

그래도 그는 속으로 유민이에게 말했다.

"유민아, 아빠 깡다구 있는 거 알지? 너도 깡다구로 꼭 버텨야 한다. 곧 해경이랑 UDT랑 구하러 갈 거니까 조금만 참고 버텨라."

그렇게 이틀, 사흘이 흘렀지만 해경에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유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봤을 때 일부러 죽기를 기다렸다가 꺼내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8일 만인 4월 28일, 유민이는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다. DNA 검사로 유민이임을 확인했다. 바다에서 나온 유민이는 온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얼굴 살이 쏙 빠져 핼쑥해졌다. 안에서 고생을 많이 했나 싶었다.

배 안은 물로 가득 차지는 않았었나 보다. 배 안에서 며칠간 살아 있었던 건 아닌가, 부검을 해보고 싶었지만 차마 유민이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어 참았다. 바다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부드러운 유민이의 몸,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가족여행 가려고 펜션까지 빌려놨는데...

8월 9일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27일째를 맞은 김영오씨(오른쪽)가 광화문 유가족 농성장을 찾은 백기완 선생의 손을 잡고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씨의 단식은 13일 현재 31일째 들어섰다.
 8월 9일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27일째를 맞은 김영오씨(오른쪽)가 광화문 유가족 농성장을 찾은 백기완 선생의 손을 잡고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씨의 단식은 13일 현재 31일째 들어섰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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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이는 사춘기임에도 아빠를 잘 따랐다. 생일이나 설날 등 1년에 한두 번 만날 뿐인데도 멋쩍어하지 않고 아빠를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아빠에게 팔베개를 하고 자는 등 붙임성도 애교도 많은 딸이었다. 시골집 마당에 바비큐를 하면 아빠 입을 더 챙기던 딸. 그는 한 달에 한두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다 멀리 있다 보니 유민이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못 사줬다. 그게 더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유민이에게 해준 게 없는데… 이제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수 없는데…."

더구나 유민이네는 몇 년 만에 섬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5월 3일 펜션도 빌려 놓았고, 같이 놀러갈 생각에 가족 모두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그 꿈은 진도 앞바다에서 무너졌다. 유민이 아빠만이 아니라 진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은 그날 그렇게 무너졌다.

그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하던 날 그의 모습은 지금처럼 묵묵했다. 달라진 건 더욱 자라난 수염과 깡마른 몸, 그리고 단식자들의 수. 함께했던 부모들이 단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고 이제 그만 남았다. 사실 공식적 단식은 7월 14일 시작했지만 그의 말처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대부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석 달이니, 단식의 무게와 피로도는 크다.

세월호 피해 가족들은 7월 12일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가 무산되고 유가족이 제시한 안이 계속 묵살되자 국회로 향했다. 국회에서 농성을 하면 법안이 통과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우리가 농성을 해도 안 되네, 너무하네' 싶고 더 강도 있는 행동이 필요하겠다 싶어 가족들은 7월 14일 단식을 결정했다.

가족대책위에서 단식을 할 사람을 모으니 모두들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단식을 하면 국회를 사수할 사람이 없으니 몇 명만 하자고 설득했다. 유민이 아빠는 광화문에서도 단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5명, 10명이라도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면 청와대를 압박하는 것이고, 국민 여론도 일어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쓰러지는 게 가장 걱정돼요... 그래서 질까봐"

가수 김장훈이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서 당시 단식 23일째인 단원고 2학년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오른쪽)씨와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2일째를 맞고 있다.
 가수 김장훈이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서 당시 단식 23일째인 단원고 2학년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오른쪽)씨와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2일째를 맞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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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식은 국회일정인 7월 16일까지로 예상하고 시작했지만, 가족들이 요구한 안은 묵살되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인 7월 24일에는 적어도 제정하지 않겠냐며 사람들은 그때까지 버티자고 했다. 단식이 끝나면 둘째 유나를 챙겨주고 싶었다. 같이 밥 먹으러 가며 언니 유민이 몫까지 사랑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도 안 되었다. 특별법은 성역 없는 조사를 해야 하는데, 청와대와 국정원을 감싸기에 좋은 안으로 나오니 답답할 뿐이었다. 8월 16일 교황이 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우리가 천막 치고 농성하는 게 알려질 텐데,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수치스럽지 않겠냐. 이걸 보여주며 수치를 감내하든지, 특별법을 제정하든지 결정을 정부가 하지 않겠냐."

옆에는 대구에서 올라와 22일째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도철 스님도 있고, 최근 단식을 시작한 가수 김장훈씨도 있다. 그리고 국민단식자들과 연대하는 시민들, 종교인들, 노동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그에게 미안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시민들과 언론인들을 맞이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누구든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가운데에 놓인 천막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함께 그의 곁을 지키던 원재민 변호사는 "국가가 알아서 가족들이 나서기 전에 해줘야 하는데, (가족들이) 단식을 하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는 국가가 원망스럽다"며, "(세월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여기에 오시는 시민들이 있어 (김영오씨가) 힘을 내시는 거 같다"고 했다.

또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의 단식,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의 진상규명을 위한 절규. 그러나 그를 더욱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건 바다에 묻어버린, 가슴에 묻어버린 유민이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주겠다던 약속이다.

"어떻게 (배가) 빨리 넘어가서 가라앉았는지 궁금하잖아요. 저만 아니라 모두들 알고 싶어 하잖아요. 저렇게 넘어졌으면 조치를 해야 하는데 왜 안 했는지, 45도 기울어졌을 때부터 구출할 수 있었어요. 줄로 막을 수도 있었잖아요. 구할 수 있는 72시간이 있었는데. 3일 동안 안 했어요. 계속 (시간이) 흘러갔잖아요. 왜 (정부는) 그 시간을 지켜만 봤는지….

억울하다는 게 그거예요.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억울하잖아요, 어떻게 그게 보상으로 돼요. 어떻게 그 돈을 받아요. (가족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으면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거예요. 국정원 개입설까지 있는데 도대체 뭔지 알고 싶다는 거예요."

가족의 목숨을 더 내놓으라는 여야 특별법 합의

단식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한 시민,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 단식으로 지친 몸이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들과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만남을 기꺼이 하고 있다.
 단식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한 시민,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 단식으로 지친 몸이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들과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만남을 기꺼이 하고 있다.
ⓒ 장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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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8월 16일까지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식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인터뷰 다음 날인 8월 7일, 여야 대표가 세월호 참사가족대책위의 안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안에 합의했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수사권도, 기소권도 없는 안이었다.

국회로 가족들은 쫓아갔고 기자회견을 열어 "가족대책위에 어떤 의견도 묻지 않고 이뤄진 합의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 유경근, 예은이 아빠는 물도 소금도 안 먹는 단수, 단염, 단식을 선언했다. 결국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던 예은이 아빠는 10일 병원에 실려갔다.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정치권과 정부가 원망스럽다.

다음 날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던 유민이 아빠는 국회로 달려가려다, 광화문 광장을 지켜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피켓만 전달했다. 유민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그는 그게 더 걱정된다.

"내가 여기서 싸우다가 죽는 거 겁이 안 나요. 오히려 그러면 유민이한테 갈 수 있잖아."

그의 말에 진심이 묻어나 인터뷰를 하는 나는 정말 큰일이 날까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하면서까지 국회나 청와대가 숨기려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쨍쨍한 8월 날씨가 단식자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 같아 괜스레 미운 날이다. 아니 유민이 아빠와 예은이 아빠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하늘이 따갑게 묻는 거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단입니다.



태그:#김영오, #세월호, #유가족, #단식,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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