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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산재보험료를 할인해 드립니다.'

글씨체가 눈에 띕니다. '할인'해 준다면 웬만하면 그 조건을 채우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조건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산재보험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된 해이기도 한데, 정부는 어떤 의미로 이 제도를 운용할까요?

8월 11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고용노동부의 산재보험료 할인 광고. 글씨체가 기분을 좋게 한다.
▲ 산재보험료를 할인해 드립니다 8월 11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고용노동부의 산재보험료 할인 광고. 글씨체가 기분을 좋게 한다.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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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의 이름은 '산재예방요율제도'입니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현장의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재해예방활동을 확산하기 위함이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제도가 시행되는 대상을 제조업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한 이유에 대해, "전체 재해자수 중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자수가 약 80%를 차지하고 있고, 50인 이상 사업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 통계를 보면, 전체 재해율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해마다 조금씩 증가함을 알 수 있습니다. 대책이 필요한 상황임은 공감합니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이 제도의 시행방안으로 '4시간의 재해예방교육'을 이수하고, 사업장의 산재예방계획을 수립·제출하여 재해예방활동으로 인정한 것에 대해 산재보험료율을 10%~20% 인하해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사업주 교육 받을 시 10%, 위험성 평가 시 20%의 산재보험료 할인이 적용됩니다. 두개 다 충족할 경우, 높은 20%로 적용됩니다). 4시간의 교육과 계획서 제출만으로 할인을 해준다니, 매우 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큰 허점이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시 요율 인하를 취소하는 요건입니다. 요건이 '중대재해 등'이기 때문에, 2명 이상의 중상 또는 1명 이상의 사망 등 중대재해가 이에 속합니다. 그 밖의 '등'이 적용되므로, 아무런 설명이 없는 이상 사업장에서 산재신청 자체를 안하게 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확률이 큽니다.

2008~2011년까지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이 전체 재해율 중에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 50인 미만 사업장 재해율 2008~2011년까지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이 전체 재해율 중에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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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의 죽음, 원청이 책임져야 합니다

이 제도가 입법예고되기 전 2011년 말, 노동건강연대에서는 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노동자 산재사망, 비정규·하청 노동자가 더 많이 죽는다'는 주제로, 원청, 발주업체의 책임강화 방안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그 해 이마트에서 질식한 네 명의 하청 노동자를 비롯, 인천공항철도 선로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다섯 명의 사망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50인 미만의 위험한 사업장 대부분은 원청-하청 구조로 묶여 있고, 그 구조에서 산재사망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큰 이윤을 얻고, 형식과 비용을 총괄하는 원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2011년 12월, 노동건강연대 주최 토론회 모습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http://laborhealth.or.kr/26581)
▲ 원청-발주업체 책임강화 방안 정책 토론회 2011년 12월, 노동건강연대 주최 토론회 모습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http://laborhealth.or.kr/2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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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철도 사망사고가 나기 열흘 전, 철도공사는 인력이 모자라니 추가로 도급을 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채용된 분들이 원청 노동자와, 혹은 기존의 다른 하청 노동자들과 제대로 된 업무 소통을 못했음은 분명합니다. 5명이 한꺼번에 열차에 치였다는 그 사실 하나만 봐도요. 이런 부분은 당연히 그 사업을 총괄하는 원청이 져야 할 책임입니다. 이런 일들은 하청 노동자를 쓰는 대기업이라면 비일비재합니다.

그 토론회 이후 발생하는 대형 산재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원청 대기업 혹은 공기업 아래의 소규모 하청회사 소속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사고 기억하시나요? 4명의 사망자는 하청노동자였습니다. 노량진 수몰사고 기억하시나요? 울산에서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물에 수장되었을 때도, 그들은 모두 하청노동자였습니다. 건설의 하청구조는 한국의 건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럼 제조업은 어떨까요? 가장 위험하다고 소문난 사업장은 조선소입니다. 대부분 2-3차 하청으로 구성되어 전체 하청 노동자의 수가 원청 소속 노동자의 수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사망 사고가 나면 필연적으로 하청노동자가 죽습니다. 위험한 업무가 가장 먼저 도급, 하청화 되고, 버려집니다. 2012년, 목포에서 큰 사고가 났을 때, 6차 하청업체에서 일한다는 한 노동자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저 위에서 떨어지면요? 수건으로 빨리 피 닦고 일해요. 우리는 그 회사랑도 다르고, 원청이 올 때만 살짝 숨어 있죠. 아, 노동부에서 와도 숨어 있고."

현대제철 공사현장에서 노동자가 계속해서 사망하자, 이들 현장에 소속된 플랜트 노동조합이 현대제철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뉴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결국 원청의 공사기간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다.
▲ MBC뉴스에서 방영된 현대제철 하청노동자 인터뷰 현대제철 공사현장에서 노동자가 계속해서 사망하자, 이들 현장에 소속된 플랜트 노동조합이 현대제철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뉴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결국 원청의 공사기간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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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재작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업장은 현대제철이라고 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회사에서만 1년 반 동안 10명이 넘게 사망했는데, 그들 모두 하청노동자였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한 노동자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무조건 빨리 해라, 빨리 끝내야 한다, 공기 바쁘다, 공기 단축해야 한다..."

할인해 준다고 진짜 안전해질까?

위의 예를 든 사례들은 기본적으로 원청의 지휘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업장들이 50인 미만으로 분류됩니다. 이 사장님들은 정말 안전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걸까요? 

원청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전기전문가, 무슨 전문가 하면서 들어가면, 그 사람들의 안전을 하청회사 사장이 진짜 책임질 수 있는 건가요? 지난 7월 30일, 태안화력에서 바다로 추락해 사망한 27세의 전기 작업을 하던 노동자의 가족은 그럽니다.

"위험한 곳이라고 원청 사람들도 안들어가는 데를, 거기 그물망만 있어도 살았을 텐데, 거기 구명조끼라도 비치되어 있으면 살았을 텐데..."

국립현대미술관 화재(원청 GS건설)로 지하에서 4명이 죽고 나서 그에 대한 법원 결과가 나왔습니다. 원청 GS건설 현장소장에게 벌금 1500만 원, 안전과장, 안전관리과장 기소유예. 현장 담당자들이 안전수칙을 준수하는지 점검을 안 했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화재 등 안전교육도 안시켰으며, 위험 예방 안전조치도 안했다고 위중한 잘못을 했다면서, 그렇게 4명이나 죽였는데, 고작 벌금 1500만 원입니다. 한 사람당 400만 원도 채 안됩니다. 다 잘 지켰으면 살릴 수도 있었는데, 이정도면 살인 아닌가요? 대기업이 내기에는 가뿐한 비용이니 안전관리 비용보다 쌉니다. 우리 사회도 대충 시간이 지나면 잊습니다. 여전히 하청에겐 위험한 일을 떠맡게 하겠죠.

대한민국 50인 미만 사업장의 하청노동자들은 그렇게 위험으로 내몰리지만, 아무도 그 위험 구조에 대해선 무거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원하청 구조는 나 몰라라 한 채, 작은 사업장에 사고가 많이 나니 안전교육을 받고 계획서를 제출하면 산재보험료를 깎아 주겠으니 재주 있으면 할인 받으라고 합니다.

유체이탈식 화법이 정부 각계 부처로 퍼지나 봅니다. 이제 크고 작은 사고들은 더더욱 은폐되겠지요. 할인 조건을 채워야 하니까요. 기존에도 노동자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내가 산재신청하면 회사에 손해 입히는 거 아니냐고 꼭 질문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유증 생각하시고, 나중을 위해서 산재보험으로 하라고 해도, 결국 해고될까봐 산재신청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회사에게 더 좋은 핑계가 생겼습니다. 산재보험료 할인율 20% 달성을 위해, 아파도 참으라고 으름장을 놓겠지요. 어느새 할인받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은 모두 산재 신청하는 노동자에게 떠넘기게 되겠지요. 그렇게 크고 작은 사고들이 가려지고, 사람이 죽어야 그 폐혜가 밝혀지는 일이 더 심해지게 생겼습니다. 작은 위험이 계속 드러나야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음을,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는데 말이죠.

정부는 산재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명목으로 사업주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고 계획서를 쓰게 하면 정말 '사망'이 줄어든다고 믿는 걸까요? 안전교육은 필요합니다. 신규로 사업자 등록을 낼 때 반드시 듣게 하는 방법도 있고, 1년에 한 번이나 분기별로 한 번 등 정기적으로 듣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익과 결부되는 순간, 반드시 부작용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은 윤리조직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조직이니까요. 이미 산재 은폐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 다친 사람들의 통계도 어그러져 있습니다. 산재보험료는 그것대로 내고,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며 회사에서도 이중 지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산재사고는 적은데 사망은 왜 많냐며 국제적으로 망신을 사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산재를 신청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야, 큰 사고를 예방하고 불필요한 지출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산재 은폐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제도라니요.

법을 어겨도, 사람이 죽어도 원청이나 하청에도 구속이나 심각한 처벌은커녕, 가벼운 벌금, 그마저도 적은 마당에, 산재보험료까지 할인을 해줍니다. 요즘은 큰 산재사고, 화학사고 등이 발생하면 기업의 대표이사들이 나와서 사과도 합니다. 회사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인정하는 거지요.

그런데, 제도는 뒤에서 봐주고 또 봐줍니다. 기업하기 참 좋은 나라입니다. 산재보험 50년 특별 행사로 이런 멋진 행사를 기획한 고용노동부, 그동안 존재감도 없으셨는데 역시 '고용부' 답습니다. 사장님들, 고용노동부로 연락하세요! 교육 4시간만 듣고, 계획서 내면 돈 깎아준다고요!

그리고, 2014년도 여전히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이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입니다.



태그:#산재사망, #하청사망, #산재보험,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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