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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현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억 원씩 된다는 소위 '스타강사'일까.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선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박다현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억 원씩 된다는 소위 '스타강사'일까.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선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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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7·8월은 휴가철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다. 박다현(28)씨의 여름방학은 대입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과 함께하느라 바쁘다. 박다현씨는 서울의 유명 학원가에 있는 논술학원에서 첨삭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박다현씨를 만나 논술학원 첨삭지도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교육계의 하청, '논술 첨삭 알바'

올해부터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박다현씨는 입학 전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논술 첨삭지도 아르바이트는 사회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아르바이트는 주말에만 하면 되고, 시간당 임금이 높은 편이라 좋았단다. 그럼 박다현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억 원씩 된다는 소위 '스타강사'일까.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선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학원의 고용구조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형태예요. 원장과 강사 간의 계약도 다 일대일로 하되, 강사가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내는 학원비를 나눠 갖는 비율을 정해요. 논술강사들 역시 이렇게 계약해요.

논술강사들은 자기 반에 한 타임 당 20명, 많으면 30명까지 학생들을 받아요. 앉혀놓고 강의하는 것 외에 아이들이 써온 천 몇백 글에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별표 치고 첨삭해서 학생 한 사람씩 불러서 대면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네 글의 포인트는 OOO인 것 같은데…, 여기에 있는 문장은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코멘트를 해줘야 하는 거죠. 근데 수업 시간상 논술강사 혼자 수강생을 다 커버할 수 없으니까 선생들을 따로 섭외(고용)하는 거예요. 자기 밑으로 한 서너 명씩. 학생 1명당 15~20분 정도 소요되니까, 한 반 수강인원에 따라 필요한 첨삭지도 선생 숫자가 나오겠죠? 일종의 하청, 하도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제 위치가 바로 여기죠."

사교육계의 하청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논술 첨삭 선생님의 급여는 자기를 섭외해서 데리고 있는 논술강사가 알아서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즉, 원장과 나눈 논술강사 수입 중에서 논술강사 본인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아르바이트생의 급여가 결정된다. 그래서 첨삭 아르바이트의 임금은 천차만별이다.

"저희 선생님은 첨삭 원고 한 장당 1만 원씩 쳐줬어요. 거기에 일한 지 1년이 지나면 장당 1000원을 올려줬어요. 저는 4년 차니까 장당 1만4000원이 됐죠.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글 10장이면 신입과 저는 4만 원 차이가 나는 거니까, 큰 셈이죠.

제가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저는 첨삭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도 '관리'를 하는 직책이었어요. 그러면 논술강사는 첨삭비 외에 수강생 1명당 1만 원씩 더 얹어줬죠. 대신 수업이 있는 모든 날 관리 차 학원에 나가야 해서 주말도 모두 출근하고, 다른 선생님들보다 평일 중 하루나 이틀 더 출근해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해서 200만 원 넘게 벌었죠."

주말이 대목인 논술학원... "주말까지 일하니 죽을 것 같아"

월급 금액만 따지고 보면 아르바이트치고는 급여를 많이 받는 셈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않은 게 있다. 박다현씨는 논술학원 아르바이트만 하는 게 아니었다. 평일에는 사회단체 상근자로 근무했기 때문에,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일 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일만 해왔다.

"주중에 하루도 못 쉬는 생활을 한 2년 가까이하니까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시작인데 저는 오전 8시 반까지 가서 첨삭 준비를 먼저 해놨거든요. 그러려면 집에서 오전 7시 반에 나와야 했던 거죠.

오전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학생 대여섯 명을 만난 뒤 강사가 강의하는 두 시간은 쉬고 다음 첨삭 준비하면서 대기해요. 또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오후 6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이렇게 하루에 세 타임 수업을 보조하고 15~20명 정도 학생들을 만나서 떠들어요. 오후 6시에 시작하는 마지막 수업이 오후 8시에 딱 끝나면 좋은데 논술강사의 강의가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강의가 종료되는 오후 10시 정도까지 학생을 기다렸다가 첨삭지도를 해줘야 해요. 다 끝나고 집에 가면 오후 11시 반 정도 되고요."

물론 학원도 쉬는 시기가 있긴 했다. 1학기 중간고사·기말고사를 치르는 몇 주 동안 논술학원은 잠시 방학이다. 논술학원은 내신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기 동안 논술 첨삭 아르바이트비는 끊긴다. 몸은 좀 편안해졌지만, 생활비가 끊기는 셈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첨삭 관리일도 그만두고,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단다. '죽을 것 같다'는 몸과 정신의 신호를 수용하고, 자신만의 공부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로 했다. 

"남들 쉴 때 쉬고 싶은 욕망이 아주 커요. 논술 학원은 방학 때라도 수업을 주말에 잡아요. 평일에는 주요과목인 국어·영어·수학 학원에 가고 논술은 주말에 하루 오거든요.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약속 잡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학원은 남들 쉴 때 더 바빠요. 예를 들면 요즘 같은 여름방학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개설되죠. 아, 특히 추석! 추석특강반이라도 개설되면 하루 4시간씩 세 타임(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을 연휴 내내 진행해요. 그래서 추석 연휴가 길면 정말 죽음이죠. 요즘에는 토요일 하루라도 쉬어요. 이제 토요일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첨삭 관리일을 할 때는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또 좋고요."

수험생과 함께 1년 내내 일·일·일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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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박다현씨의 주간·연간 알바 일정을 듣고 있노라니 한국 사교육 현장을 깊숙이 알아버린 느낌이다. 방학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고3과 학부모들이 제일 가까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시간표도 그에 못지 않게 종종걸음 치며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가 노동자들의 생활시간표가 수험생의 그것에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출정시기인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중간고사·기말고사 기간 지나서 7월 중순부터 여름방학 특강, 추석특강 그리고 제일 중요한 '파이널'(final) 시기가 있어요. 파이널은 수능 직후 2주간을 부르는 말인데, 이때 각 대학 논술고사가 집중돼 있죠. 

이때는 추석특강보다 더 힘들어요. 혹시 '농활' 가보셨나요? 저는 농활 가본 적은 없는데, 다들 농활 온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주간 매일 김밥 먹고 말하고, 김밥 먹고 말하고…. 이렇게 쉼 없이 일하면 사람이 혼이 나간다고 해야 하나…. 찌들어 버린다고 해야 하나?"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대입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는 시기라 학원들은 학생과 학부모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학원가에 떠도는 전설이 있어요. '파이널' 때 어떤 선생님이 원고지를 한 장 분실했는데, 학부모가 달려와서 학원을 다 뒤집어놨다고. 실제로 분실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사를 해서 한 부는 학원에 보관하고 한 부는 가지고 다녀요. 빈틈없이 일을 하려는 것이죠. 문제가 생길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죠.

사실 이 시기에 수험생들이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돼요. 강의 듣고 첨삭받은 대로 잘 쓰고 싶은데, 자기 생각만큼 실력은 좋아진 것 같지 않고…. 입시는 코앞이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글을 잘 써서 '잘 썼다'라고 칭친해 줘도 곧이 안 듣고 대충 시간 때우려 한다고 오해해요. 그래서 첨삭지도 할 때는 칭찬 반, 비판 반 섞어주는 기술이 필요해요. 칭찬하면 오히려 아이들 표정이 굳는 게 보이거든요. 그러면 여지없이 클레임이 들어와요. '선생님 바꿔주세요'라고."

박다현씨는 대입 수험 생활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날에는 함께 첨삭지도하는 동료와 함께 어떻게든 일을 일찍 끝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늦어도 오후 9시에는 무조건 일을 정리하고 박다현씨와 동료들은 택시를 타고 와인이 무제한으로 나오는 뷔페 레스토랑을 향해 달렸다. 대면 첨삭 아르바이트끼리 하는 '파이널' 뒤풀이임과 동시에 1년을 마무리하는 조촐한 위로회였다.

대학원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논술첨삭 아르바이트를 계속 할 것이라는 박다현씨. 공부를 마치고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말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곳에 적을 두기 전까지는 또 몇 번의 '파이널'을 고3들과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추석 연휴, 아니 추석 특강은 조금 짧아서 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하나 기자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연구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 8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논문 첨삭 알바, #사교육 문제, #특수고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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