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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현직 언론인 두 명이 또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청와대는 지난달 2일 국정홍보비서관에 천영식 <문화일보> 전국부장을 그리고 뉴미디어비서관에 민병호 <데일리안> 대표를 각각 내정했다. 언론인들의 청와대 직행은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도 안 될 만큼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꾸준히 현직에 있는 언론인들을 청와대 주요 요직에 임명해 왔다. 마치 본사에서 계열사 직원 차출해 가듯 필요하면 언제든지 언론인들을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의 부름을 받은 언론인들은 이를 영전으로 생각하고 현직에서 대통령의 참모로 직행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얼마 전에도 윤두현 YTN플러스 전 사장을 홍보수석에 임명하고, 하루 전까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뉴스해설을 진행했던 민경욱 전 KBS 문화부장을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홍보수석이었던 이남기 전 수석도 SBS미디어홀딩스 사장 자리에서 곧바로 청와대로 직행했다.

이러한 언론인들의 청와대행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있었던 일이다. 김은혜 당시 MBC 보도국 뉴스편집센터 차장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성식 당시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정무수석실로, 김두우 당시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정무2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SBS 출신인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과 하금열 비서실장 역시 언론인으로써 현직으로 있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로 직행했다. 

그런데, 이처럼 언론인들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취재현장에서 청와대로 직행하는 것은 언론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행위로 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임받아 정부와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던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정부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지양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의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감시 대상이던 대통령의 참모로 변신해 대통령의 충견(faithful dog)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현장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던 언론인들이 하루아침에 청와대에 합류하는 관행이 계속되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공정성이라는 언론인의 사명을 뒤로한 채 권력에 연줄을 대고 자리를 보상받으려는 언론인들을 일컬어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친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언론인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등 사회 여러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하며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은 권력기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인들이 현직에서 청와대로 직행하는 사례가 일상화 되면, 정·관계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가진 언론인들이 취재와 보도 활동을 통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대신, 직·간접적으로 힘있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즉, 언론인들이 정계 진출을 위해 교묘한 편파보도를 통해 정치권에 언론로비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언론인들의 교묘한 편파보도를 통한 언론로비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언론윤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공정보도를 파괴하는 아주 못된 짓이다. 따라서 언론인이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순간 당사자는 바로 사퇴하고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언론사에 사표도 안 낸 상태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자신의 인맥과 보도기능 등을 정계입문에 활용하는 행위는 언론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디어오늘>(2007년 7월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기자출신 정치인들의 옛 기사와 칼럼들을 분석한 결과 특정 대선후보를 띄우거나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언론현장에 있다가 정치에 참여한 언론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유리한 기사나 칼럼을 통해 간접적으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원한 행위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국민들을 우롱한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많은 언론사들은 언론인들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도의 공정성과 공영성 확립에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언론인들이 지켜야 하는 윤리규정을 자체적으로 제정해 언론인들에게 지키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윤리규정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아도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언론인들이 윤리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언론사들이 오래 전부터 뉴스 프로그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제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규정으로 정하고 시행해 오고 있다. 이처럼 외국 언론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규정으로 정한 이유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나 기자들은 취재활동이나 뉴스 진행을 통해 사회적 이슈나 사건에 대한 정보나 해설을 수용자인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은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알권리를 이용해 정치권력과 정부, 나아가 재벌을 포함한 경제권력 등 국민들의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모든 권력기관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인들은 어느 특정 정당이나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지원해서는 안 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언론이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의 정·관계 진출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강제화 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고 실현가능한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법적규정과 언론사 자체 윤리규정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인 법적규정으로는 언론인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유권자에게 늘 다가가는 존재로 언론보도의 신뢰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언론사 퇴직 후 1년 이내에는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언론사 내부에 언론인들의 정치참여와 관련된 윤리규정을 만들어 언론인들의 정치참여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즉시 모든 방송제작과 취재 및 보도 현장에서 퇴출시키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는데 1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다른 공직자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직업 특성상 언론인으로 현직에 있으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이럴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1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사들은 자체적으로 기자윤리강령을 만들어 기자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징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언론사들의 기자윤리강령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원칙은 공정성, 신뢰성, 정확성, 언론인의 품위유지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언론인이 어떠한 정치적인 압력과 회유에도 영향받지 않고 오직 국민들을 위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도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을 규제하는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와 규제방안을 마련하여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폴리널리스트, #언론윤리, #감시견, #최진봉,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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