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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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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조금 풀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그 문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8년 4분기 스타벅스는 1억2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시 미국 발 금융위기로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경이적인 기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2009년 2월, 스타벅스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300여 개 매장의 문을 닫고 직원 7000명을 감원하겠다는 것이다. 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발표했을까?

정답은 주주자본주의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구조조정의 이유로 2008년 4분기 순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의 70%에 미치지 못했음을 들었는데, 무엇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예측보다 낮은 이익을 기록했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주가는 시장이 예측하는 이익에 근거해 이미 형성되어 있는데, 아무리 많은 이익을 내더라도 그 크기가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경영자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고, 구조조정은 그 방법 중의 하나로 가장 쉽게 제시된다.

이원재 소장은 그의 저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서 이 스타벅스의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임을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로서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운영되는데, 그와 같은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가로 경영자를 평가하는 프로세스이다.

이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IMF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는데 이는 그들이 주주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시스템이 요구하는 운영방식을 잘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쟁과 효율의 원칙이 우선이고, 1등만이 모든 걸 독점하며, 작은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는 구조조정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 정글의 법칙을 충실히 따랐기에 지금과 같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처럼 되어야 할까?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한국 경제를 둘로 나눈다. 수출 대기업 및 1차 협력업체, 금융권, 컨설팅 등의 서비스 부분이 성 안의 경제요, 그 나머지 부분이 성 바깥의 경제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 안의 경제에 정규직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지만, 이는 현실상 매우 어렵다. 성 안의 경제는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11%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생산하지만, 정작 고용 인구는 전체의 1% 밖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만능주의를 추구한 결과이다.

반면 성 밖의 경제는 다르다. 그곳은 1%에 속하지 않은 99%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칼 폴라니가 이야기했던 실체적 경제의 공간이다. 경제가 돈이 아니라 생활인 공간. 따라서 이 부문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시장만능주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얼마나 더 벌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해고는 곧 죽음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와 같은 성 밖의 사람들이 성 안에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시장만능주의를 내면화 한다는 사실이다. 생존을 위해 시장과 대기업에게 보호 받아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국가 경제성장률을 걱정하고,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갱신에 박수를 친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이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는, '트리클 다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한계

더 안타까운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결하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생존의 백척간두에 서 있는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사회제도와 문화의 재생산을 통해 국민들을 끊임없이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승산이 거의 없는 해외자본과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되지 않냐며 무책임하게 국민들을 밀어내고 있는 국가.

물론 국가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20년대 대공황을 정점으로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나자 뉴딜정책을 통해 경쟁을 완화시키고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하는 등 수정 자본주의의 정책을 폈다. 덕분에 대압착 시기의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비슷한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국가가 국민을 시장의 만행으로부터 지켜줬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1980년대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들은 완만해진 경제성장 곡선을 변화시키기 위해 공급주의 경제학을 택했고,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효시가 되었다. 국가는 자본의 첨병이 되어 국민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았으며, 결국 이는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극심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결국 1등만이 모든 걸 독차지 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그 비극적 결말을 제시한다.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월스트리트와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예 등을 보여주며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추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준다. 모두가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탐욕, 경계선 없는 탐욕은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자본주의의 근원, 탐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타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선 현재 자본주의의 근원이 탐욕에 있음을 주목한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이롭게 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고, 그 이기심이 곧 공익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현재 자본주의는 더 이상 탐욕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탐욕에 기초한 과생산과 과소비가 빚어내는 비극으로 저자는 금융 위기와 기후변화 위기를 지목한다. 현재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두 문제가 결국 하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서 돈을 빌려 페르시아 만의 석유를 사들였고, 석유를 연소하는 과정에서 지구를 파괴했다."(엘 고어)

또한 저자는 경제성장의 허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탐욕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성장률을 근거로 우리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경제성장이란 개념과 그를 타내는 수치인 GDP 자체가 우리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탐욕의 빈자리를 채워라

더 이상 탐욕으로 굴러갈 수 없는 자본주의. 저자는 그 빈 공간을 이타성과 호혜주의로 채우자고 주장한다. 고전 경제학은 자본주의 경제가 탐욕만을 원동력으로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잠깐 주위를 둘러보면 이윤 극대화 이외의 다른 동기로 굴러가는 경제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예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과 착한 소비, 협동 소비 등을 나열한다. 가격이 좀 비싸도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서 소비하고, 주주나 기업의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운영되는 조직의 존재가 이미 새로운 자본주의의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스티븐 잡스와 안철수의 공통점으로 저자는 탐욕 없는 성공을 이야기한다. 주주의 이익보다는 제품의 완결성과 세계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 대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척박한 시장에서 윤리를 이야기 하고 반칙 없는 사회를 이야기 하는 안철수. 저자는 이 신드롬의 의미를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으로 분석하고 있다.

더 이상 돈만 쫓는 냉혈한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 기업이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이 아니라 영혼을 갖고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쏟는 시대. 저자의 말대로 바로 그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이 아닐까?

앙드레 말로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다. 새로운 꿈을 찾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태그:#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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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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