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영화 <명량>이 개봉 11일 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거세게 흥행 중이다.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에 대한 열망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분명 그 메시지와 별개로 <명량>이 등에 업고 있는 조건과 그것을 대하는 영화 산업계의 태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렇다. 수 없이 반복 되고 있는 상영관 독과점 문제다.

알려진 대로 <명량>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보유한 대기업의 힘을 입었다. CJ 계열사인 CJ E&M이 투자·배급을 맡았고, 또 다른 계열사인 CGV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총 스크린 수는 2584개. 이중 <명량>의 스크린 수는 개봉 당일 1250개, 지난 주말(8월 1일~2일) 동안 1586개였고, 현재(8일 기준)까지는 1272개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의 약 50~60%를 상회하는 비중이다. CGV, 롯데시네마 등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체 극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국내 관객은 애초부터 <명량> 등의 대형 상업 영화 외엔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 싶어도 상영관 부족해 못 보는데 독과점이라고?

 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포스터 ⓒ 빅스톤픽쳐스


"각 극장의 영화별 스크린 수가 예매율 및 좌석 점유율을 기준으로 산정되기에 <명량>을 찾는 관객이 많으므로 문제없다"는 논리도 있다. 굳이 CJ E&M의 해명이 아니더라도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도 왕왕 등장하는 말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여전히 <명량>의 예매율은 66.2%(9일, 오전 10시 기준), 6일 개봉한 또 다른 여름 기대작 <해적>은 17.1%이다. <명량>의 좌석 점유율은 9일 오전 기준으로 52.4%. 이 정도면 <명량>이 신작 영화보다도 스크린 수를 많이 가져갈 조건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 현상을 두고 영화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인 김영진 평론가는 "매번 나오는 얘기이고 근본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개선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군도> <해적> <해무> 역시 100억대 자본이 들어간 작품인데 이들이 공존하지 못하고 <명량>이 파이를 다 가져가고 있다"며 "산업적 논리로 봤을 때 파이를 키우지 않고 이렇게 가는 게 정상적 상황인가. 한국영화 스스로 만든 상황"이라고 평했다.

또, "한국영화 산업 자체가 매우 기형적이기에 그 테두리 안에서는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한 최광희 평론가는 "미국이나 프랑스 등 영화 선진국들이 아무리 인기 있는 작품을 갖고도 독과점은 안 하지 않나"고 반문하며 "그들은 영화 산업을 문화로 보고 있고 그 전제 조건은 다양성이기에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영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인 견제 방안을 세우지도 않고, 스크린 독과점 관련 공청회를 열 때마다 산업 종사자들만 불러놓는다"며 "소비자(관객)는 안 부르고 점주들만 놓고 상권을 살리자고 외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영화를 바라보는 저급한 시선, 관객들 역시 각성해야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경제 상식에 등장하는 수요 공급의 법칙은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경쟁의 순수성과 시장의 완전성이 그것이다. 이는 대형 멀티플렉스 측이 단순히 수요 공급 논리를 내세우기 전에 되새겨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완전히 동질적인가', '수요자와 공급자가 재화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갖고 있는가'. 이 전제를 적용하면 국내 영화 시장은 이미 한참 왜곡된 기형적 시장이기 때문이다.

제작비를 제외한 <명량>의 마케팅 비용은 약 30억 원 정도다. 일반적인 외화나 독립 영화들이 개봉에 앞서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부터 이미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다.

최광희 평론가는 "<명량>이 3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관객의 기대감은 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마케팅 비용만큼 언론에서 영화를 언급해주고 그 파급효과로 관객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 산업에서의 '수요 공급 논리'는 곧 '공급자만의 논리'인 것이다.

이는 <명량>의 흥행을 반기면서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한국영화 산업계의 어두운 면이다. <명량>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수요 자체가 왜곡된 시장에서 관객들의 각성 또한 필요한 지점이기에 반복해서 독과점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자 이미 50여 년 전 미국은 독과점금지법, 일명 '반 트러스트 법'을 통해 제작사가 극장 체인을 소유하고 자체 배급까지 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아무리 특정 영화가 매진을 기록해도 1개관 이상 확장 상영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이 전체 스크린 중 30% 이상을 한 영화가 점유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적어도 영화 선진국들은 다양성을 원칙으로 영화 산업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부 김현수 부장은 "미국의 반독점법 적용 사례로 할리우드 제작사 파라마운트 판례가 있긴 하지만 수치를 제시하면서 규제를 하고 있진 않다"며 "최근엔 다시 극장 업체에서 배급사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프랑스는 영화진흥기구(CNC)와 제작사가 협약을 맺어 특정 영화가 상영관의 30% 이상을 틀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CNC가 극장 허가권과 영화 제작비 지원에 대한 권한이 있기에 가능한 협의로 법적으로 위반 업체에 대한 과태료나 영업 제제 근거는 아직 미비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분명 기괴한 구조다. 동시에 독과점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나라보다 관대하다.  영화 종사자들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며 서로의 공존과 문화 발전을 고민하기보다는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려 앞서 나가겠다는 경쟁 구도에 익숙해있다. 관객 역시 시장 만능 주의에 함몰돼 빼앗긴 선택권을 자연스럽게 용인하고 있다.

고스란히 모두가 함께 점차 고사하는 구조다. <명량>이 한국 영화 시장 파이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비슷한 시기의 개봉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군도: 민란의 시대>, 심지어 같은 CJ E&M 배급인 <드래곤 길들이기2>마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상을 직시하자.

'스크린 독과점'과 '왜곡된 수요'라는 끝나지 않을 룰렛 게임의 다음 피해자는 누구일까. 분명한 건 대형 투자·배급사도 언제든 이 게임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명량 군도 드래곤 길들이기 최민식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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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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