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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의 인자하신 모습
 치느님의 인자하신 모습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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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사이의 C"라 하였다. 그 C는 Choice(선택)이 아닌 바로 바로 Chicken(치킨)! '단언컨대 치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 자부하는 나는 소문난 치타쿠('치킨'과 '오타쿠'의 합성어. 오타쿠는 특이한 것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함)다.

지금부터 치킨계의 학살자, 치킨계의 히틀러였던 나의 과거와, 나 이외에 또 다른 치느님('치킨'과 '하느님'의 합성어) 신도들이 겪은 치킨 에피소드를 돌아보며 현재 치느님에 대한 나의 행태를 반성하고자 한다.

나는 돌잡이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떡을 잡고, 떡을 치우니 국수를 잡고, 엄마가 아무리 연필을 가까이 놔줘도 먹는 것만 잡았다고 한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이토록 남다른 식성의 소유자였던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치킨을 좋아했다.

나머지 가족을 고려해, 종종 치킨과 피자를 함께 주는 가게에서 배달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피자는 영문도 모른 채 나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고, 치킨만이 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5살 무렵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그날따라 무척 허기진 상태로 집에 온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집 안을 누비다가, 부엌 한구석에서 전날 언니가 먹다 남은 치킨을 발견했다. 번들번들 기름진 치킨에서 유난히 허브향 같은 냄새가 많이 났지만 새로 나온 맛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올킬(all kill)'.

그날 저녁 귀가한 엄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연인즉슨, 엄마가 남은 치킨을 버리려는 찰나 급히 약속 전화를 받았고 치킨에 벌레가 꼬일까봐 에프킬러만 잔뜩 뿌려놓고 나갔는데 그걸 내가 모조리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 번들거렸던 기름과 허브향의 실체는 바로 살충제. 엄마가 돌아왔을 땐 이미 내가 살충제 치킨을 먹은 지 몇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물론 철벽 같은 나의 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병원에서도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살충제 치킨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치킨 먹다 응급실행...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치느님'

생명에 위협을 가한 치킨 뼈. 혼자 몰래 먹으려다 그만.
▲ 실제로 응급실에서 빼낸 치킨 뼈의 모습 생명에 위협을 가한 치킨 뼈. 혼자 몰래 먹으려다 그만.
ⓒ A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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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겪었으면 치킨이 좀 싫어질 법도 하다고? 천만의 말씀. 풋풋한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서는 나의 치욕(치킨에 대한 욕망)이 정점을 찍는다. 동네 치킨에서 벗어나, 캠퍼스 번화가 치느님을 처음 영접한 나. 나에게 그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내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학교에서 밤새는 일이 잦아졌고, 야식은 대부분 치킨이었다. 어쩌다보니 저녁밥과 야식 모두 치킨 연속 2단 콤보로 때울 때도 많았다. 프라이드, 양념, 간장, 카레, 파닭 등 종류야 많았으니 아무래도 질리진 않았다.

그보다 더 먹은 날도 있었고 덜 먹은 날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세 마리씩 먹었다(그나마 좀 줄여서 계산한 거다)고 가정할 때, 기자 활동을 한 2년 6개월 동안 내가 먹어 치운 치킨의 수는 무려 360여 마리에 이른다. 심지어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도 종종 새벽에 좀비처럼 일어나 "엄마, 왠지 치킨을 먹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서 한동안 엄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2살 한때는 잠시 치킨을 멀리하며, 소개팅의 여왕(현실은 소개팅 기계)으로 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도 두 번의 소개팅이 같은 날 점심, 저녁으로 잡혀버린 적이 있었다. 무슨 소개팅 공식도 아니고,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은 느끼한 크림 파스타를 먹고 바로 저녁 소개팅 자리로 이동했다. 꽤 괜찮은 편이었던 저녁 소개팅남이 처음 던진 말.

"파스타 어때요? 이 근처에 괜찮은 곳 아는데."

평소 같으면 '얼씨구나! 땡큐!' 했을 그 젠틀한 제안이 그날따라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또 다시 그 느끼한 크림으로 위를 도배하기는 끔찍하게 싫었다. 뭔가 매콤한 음식이 땡겼고, 갑자기 숨겨왔던 치욕이 되살아나며 양념치킨이 절실해졌다.

머뭇머뭇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치킨을 먹자고 제안했다. 시끌벅적한 호프집에서 치킨은 맛있게 먹었지만 당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마치 TV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연상시키는 그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네? 네?"만 연발할 뿐. 그렇게 나는 치킨 때문에 괜찮은 남자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절친 A양(그녀의 혼삿길을 막지 않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함)에게도 치킨에 대한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그날은 3월의 편안한 공휴일 저녁. 그녀의 언니와 함께 다정하게 치킨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하필 언니가 샤워하는 틈에 치킨이 배달 돼버렸고, 그녀는 끓어오르는 치욕을 주체 못해 언니 몰래 치킨에 먼저 손을 댔다.

벌을 받을 것일까. 그녀는 맛있게 먹던 중 치킨 뼈가 목에 걸려버렸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공휴일이라 근처 병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여서, 급히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 내시경을 거쳐 그녀는 간신히 목에 있는 치킨 뼈를 제거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죽다 살아났다. 그 후 그녀는 치킨을 무서워해 다시는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는 건 거짓말. 어제도 나랑 맛있게 한 마리 해치웠다.

"치타쿠의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윤허해주소서, 치멘!"

그동안 치킨을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 아아 치느님. 잔인하셔라.
▲ 치느님이 선사해주신 지방간 인증 그동안 치킨을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 아아 치느님. 잔인하셔라.
ⓒ 남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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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의 경우, 치느님이 제대로 힐링을 해주고 있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B군은 시험이 끝날 때마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주기적으로 치킨을 사먹는다고 한다.

신나게 치킨을 먹으며 시험 얘기 따위는 제치고, 본격 고민 토크 돌입. 시험 기간 전부터 짝사랑을 하게 됐다는 친구, 부모님과 싸워 힘들다는 친구, 꿈이 없고 아무 생각이 없어 이번 시험은 망쳤다고 말하면서도 치킨은 너무 맛있다던 엉뚱한 친구도 있단다. 그는 열정적으로 치느님을 찬양하며 "시련, 우울함을 떨치는 데는 치킨만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후배의 경우, 고3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치킨 먹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배달 아저씨와 너무 친해져 배달아저씨가 수능 응원도 해줬단다. 한 번은 밤늦게 배달 온 치킨을 받기 위해 기숙사 담을 넘다가 그만 바지가 철창에 걸려 격하게 찢어지는 바람에 놀란 적도 있었다고. 물론 중요한 기관(?)엔 아무 문제가 없어 참 다행이었다는 후문이다. 각박한 현실 속 청소년들에게는 확실히 '눈물 젖은 치킨'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나는 사실 그들만큼 치킨을 절실히 원해본 적도 없고, 최근 들어 치느님에 대한 애정도 소원해진 상태다. 건강염려증에 걸린 엄마 때문에 이제 집에서는 거의 치킨을 시켜먹지 않는다. 사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그동안 영접한 치느님이 나에게 지방간을 선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조금 절제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치킨을 먹자는 친구들의 부름에는 언제든지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긴 하다.

마치 오래된 내 남친처럼, 치킨도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 맨 처음에 치느님을 영접하던 그 벅차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되새기며, 건강을 조금 회복한 후에는 다시 치타쿠의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치느님, 부디 제가 어서 당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치타쿠의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윤허해주소서. 치멘."


태그:#치킨, #치느님, #치타쿠, #치맥, #반반무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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