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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가 없어서 미안하다!"
 "후보가 없어서 미안하다!"
ⓒ 정진우 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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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궐선거가 막을 내렸다. 국회의원을 15명이나 새로 뽑은 이번 선거는 '미니 총선'이라고 불렸다. 임기가 1년 6개월 정도 남은 자리라고 해도 선거운동을 대충 하지는 않는다. 네거티브 공방과 단일화 등 예상할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해프닝이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론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 해프닝이 내게도 일어났다. 수원 영통 지역에 옥중출마한 정진우 노동당 후보(노동당 부대표) 선본에서 내가 부대변인 역할을 맡은 것. 1980년대도 아니고 2014년에 옥중출마라니, 황당해할 분들도 많을 것 같다.

후보도 없이 꾸려진 선거본부, 날 더러 부대변인을 하라고?

하지만 후보가 없어도 선거본부는 돌아간다. 정진우 후보는 경찰에 의해 '불법집회'로 규정된 6·10 청와대 만인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진우 후보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그의 선거 슬로건 "그래도 희망"은 희망버스에서 따온 것이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비록 옥중이지만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수원 영통 지역은 여러모로 파랑색으로 물들었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곳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선본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정 후보가 구치소에서 입었던 옷과 색깔이 같은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우리 선본 '연대와 희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인 용혜인씨가 선본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가만히 있으라' 참가자들도 선본에 합류한다고 했다. 나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이윤보다 생명이다" 목이 터져라 외쳤던 사람으로서 정진우 선본에 결합하게 되었다.

"후보 없는 선본 부대변인 해볼 생각 있어요?"

선본 홍보팀장이 나에게 제안했다. 부대변인 자리는 여러모로 난관이었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논평은 써본 적도 없고, 선거 경험도 없는 왕초보 대학교 1학년생인 나한테 부대변인이라니…. 내가 "왜 하필 저예요?"라고 물었을 때 홍보팀장은 "사람마다 하고 싶은 것도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달라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나는 일을 빨리 익히기 위해 7월 10일부터 다른 유세원들보다 일주일 일찍 수원에 있는 선본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 내가 사는 부천에서 수원까지 왕복 3시간. 아침 6시에 일어나 제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당도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웠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까지 잠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다시, 다시, 다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던 내 '보도자료'

머리 민 후 정진우 vs 머리 밀기 전 정진우
 머리 민 후 정진우 vs 머리 밀기 전 정진우
ⓒ 정진우 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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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이라고 하면 흔히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브리핑을 하는 '달변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 선본 활동을 하면서 느낀 대변인의 실체(?)는 조금 달랐다. 당의 정책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다른 당이 입장을 내놓았을 때 적절히(?)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문제나 사안에 대한 관심도 많아야 하고, 당의 방향에 맞추어 논평을 쓰는 일도 대변인이 한다.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대변인의 주업은 쓰고 읽는 것이다. 나는 주로 각 당의 논평을 조사하고 약간의 코멘트를 달아서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도자료와 논평을 썼다. 선본의 입장과 사회적 사안을 적절히 조율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홍보팀장은 "이게 뭡니까",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다시, 다시, 다시" 하고 타박을 주었다.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글을 생산했는지 알았다. 3시간에 걸쳐 쓴 보도자료에 논점이 없다는 말을 듣고 두 번, 세 번 고쳐 썼다. 홍보팀장이 퇴짜를 놓을 때마다 괜히 움츠러들어서 사무실 밖으로 들락날락거렸다. 그때마다 사무실 한편에 있는 쓰레기통에 내 글을 박아 넣고 싶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실감할 때마다 좁아터진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잠깐씩 쉬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뜨거운 에어컨 실외기 옆에 서 있으면 기분이 풀렸다. 깜깜한 대변인실도 또 다른 휴식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발 냄새(?)가 나고 깜깜해서 아무도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곳이 좋았다. 좁은 의자에 앉아 청하는 짧은 낮잠은 그렇게 꿀같을 수 없었다.

7월 17일 공식 선거운동 첫날, 후보가 없다보니 선거운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명함을 뿌릴 수도 없다. 공직선거법에는 후보 본인이나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사람 가운데 후보가 지정한 1명, 또는 후보의 배우자 말고는 명함을 나눠주지 못하게 돼 있다. 한 선거유세원은 "지나가는 차에 인사만 한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선본의 어려움을 알았을까. 바로 그날 노동당 변호사가 선거사무실로, 정진우 후보가 석방된다는 연락을 했다. 선거운동이 끝날 때까지 보석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던 재판부가 마음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후보가 석방된다고 박수 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바로 논평을 작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현수막과 명함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옥중출마'에 포커스를 맞춘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지나가는 차 앞에서 춤추며 선거유세... 무표정의 시민들

석방 직후 명함이 없어 '셀프'로 A4 명함을 자르는 정진우 후보
 석방 직후 명함이 없어 '셀프'로 A4 명함을 자르는 정진우 후보
ⓒ 정진우 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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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물에 실린 얼굴과 실제 얼굴이 너무 다른 것도 웃지 못할 일이었다. 명함과 공보물에 쓰인 사진은 구치소에서 찍은 것으로 정 후보가 머리를 빡빡 밀기 전인데, 사진 촬영 후 정 후보는 더워서 머리를 밀어버렸다. 명함을 받아든 시민들은 명함과 정 후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도 했다. 한 어린이는 명함을 보고 "야, 이 머리 좀 봐. 머리가 얼마만 한 거야?" 하고 웃었다. 하지만 후보의 석방은 선본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나는 선본의 SNS 계정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SNS에 선거운동 현장 사진을 올리면서 유세원들에게 "피켓 좀 똑바로 맞춰주세요", "줄 좀 맞춰주세요" 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머리가 시키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 바람에 너무나 힘들었다. 인사를 해도 지나가는 시민들은 무표정이고, 지나가는 차를 보고 춤을 출 때는 밀려오는 '뻘쭘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처음 1시간 정도는 밝게 인사도 해보고 웃으려 노력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어하기가 힘들어졌다. 너무 웃어서 얼굴 근육은 딱딱해지고, 턱도 아팠다. 한편으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명함을 뿌리치고 가는 시민들을 보면 서운했다.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족한 나를 부대변인이라고 격려해주고 수고했다 말해준 사람들 덕분에 2주간의 선거운동을 버틴 것 같다. 정진우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변인실 분들이 고생하신다. 후보가 석방돼도 할 일은 늘어나니 죄송하다" 하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왜 정진우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지, 선거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되지 않았고 이목을 끌지도 못했다. 정진우 후보는 510표, 득표율 0.68%로 낙선했다.

서운했다. 7월 30일 밤 선거결과를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도 넘어가지 않았다. 30도가 넘어가는 날씨에도 피켓을 들며 선거유세원들은 땀을 흘렸고, 다른 당 유세차보다 작은 유세차 안에서도 목이 터져라 "기호 5번 정진우"를 외쳤는데도 결과는 냉혹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510명의 지지자를 얻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과 '만민공동회'에서 외친 "이윤보다 생명", "돈보다 인간"이란 구호를 거리에서 외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 번에 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번 선거를 발판 삼아 우리의 가치인 '이윤보다 생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모으면 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
 선거운동 마지막 날
ⓒ 정진우 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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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은하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정진우, #노동당,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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