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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구조 실패의 원인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반복되는 재난사고 속에서 왜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연속칼럼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양재천변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보면 양재 시민의 숲이 나온다. 왼쪽은 경부고속도로에 면하고 오른쪽은 강남대로에 면한 이 숲의 맨 남쪽 끝머리에는 삼풍백화점 사고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서초동 법조타운과 맞닿아 있는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졌는데, 위령탑은 왜 고속도로와 맞닿은 공원 구석에 있을까?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37층짜리 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서 있다. 백화점은 무너져도 부동산 신화는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평당 3천만 원 하는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그냥 두기에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위령탑을 세우기에는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떨어질 것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삼풍백화점 참사를 담은 모습.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삼풍백화점 참사를 담은 모습.
ⓒ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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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명이라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2013년까지 전 세계 단일 건물 가운데 외부 충격없이 자연적으로 붕괴된 사고 가운데 당당히(?) 사망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풍백화점 사고는 그렇게 외딴 공원 모퉁이의 위령탑으로만 남아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이 삼풍백화점과 다를 수 있을까? 이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에 대한 질문이다. 처음 약속과 달리 박근혜 정부는 특별법 제정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고, 7월 30일 재보선이 끝난 후 자신감을 회복한 새누리당은 세월호 손털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광화문에서는 아직 유가족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고, 참사 100일 문화제에는 3만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으며, 농성장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사고의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이 사고를 통해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택했던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둘러싼 힘겨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잊혀진' 대구지하철 참사,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지난 7월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 광화문 농성장에 엄마부대봉사단이라는 보수단체가 찾아와 기자회견을 한다며 막말을 퍼붓고 갔다. 봉사단 부대표의 발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사고난 사람들 이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한 학교에 많은 학생들이 한 번에 죽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세상에 대구지하철 사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누가 이런 소리 합니까."

대구지하철 사건. 그때도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었다. 일부 실종자는 사망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는데 왜 세월호 유가족만 유독 이러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고 이후에 가만히 있었던 유가족은 없었다. 그 유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대구지하철 사고를 다시 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이 사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대구에서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세 차례나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 1호선 제1~2구간 공사장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 2000년 1월 대구 중구 동산동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현장(현 대구지하철 서문시장 역 부근) 붕괴 사고, 2003년 2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방화 사고까지. 무려 두 번이나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난 참사였다(가스폭발 사고로 사망 102명, 부상 117명·방화 사고로 사망 192명, 실종자 21명, 사상자 151명).

전 세계에서 지하철과 관련한 사고 중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는 단 세 차례뿐. 이 중 대구에서만 두 번의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백승대, 대구지하철 사고와 시민단체의 대응, 2003 참고)

대구 지하철 방화 사고 당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이 고위 정치인의 방문에 대비해 군대를 동원해 현장을 물청소 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도 얼마 없을 것이다. 그 사장을 유족들이 간신히 '증거인멸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도, 1년 반간의 법정 싸움 끝에 2004년 결국 그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 법정에서 오로지 유가족들만 울부짖었던 사실도 우린 모른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한 달 뒤 유가족들이 '안전한 지하철'을 요구하며 지하철 점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몇몇 활동가들은 그때 유가족들이 서울까지 찾아와 함께 싸워줄 것을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사고였으나 사회는 이를 너무 빨리 잊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논문이나 옛 기사 한 구석, 몇몇 단체 활동가들의 기억 저편에만 남아있다.

진상규명하지 못하면 참사는 또 일어날 것, 지금처럼

'사설 해병캠프' 고교생 시신 인양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 항포구 해역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다 실종됐던 공주사대부고 2학년 이모군의 시신이 19일 오전 6시 5분께 수색대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 '사설 해병캠프' 고교생 시신 인양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 항포구 해역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다 실종됐던 공주사대부고 2학년 이모군의 시신이 2013년 7월 19일 오전 6시 5분께 수색대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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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 사회가 이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와 직결된다.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 피해가 컸던 1080호 열차 기관사가 '마스콘키'를 뽑아갔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마스콘키가 있든 없든 화재로 회로가 손상되어 전동차 문의 조작은 불가능했음에도 언론은 대대적으로 기관사의 책임을 부각시켰는데, 이렇게 되면 모든 참사의 책임은 기관사의 자질 탓이 된다.

물론 기관사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1인승무제로 인한 한계 즉, 기관사 혼자 위급 상황에 대처하고 승객 대피와 사령 교신을 모두 수행할 수 없었던 점, 비상유도등·피난로·소화설비 등의 비상장비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와 같은 구조적 문제들은 제대로 여론화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빈번하게 지하철 사고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내구 연한이 완화되고 안전 인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

2013년 발생한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역시 사고 원인부터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사고로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는데, 경찰은 학생들이 교관의 지시에 뒷걸음질 치던 중 갑자기 깊어지는 갯골에 빠진 후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당시 교관과 학생,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체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갯골과 너울성 파도는 없었다. 의문을 가진 유족들은 몇 번이나 경찰에 현장 검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갯골과 너울성 파도 여부는 사고 책임을 묻는데 핵심적이다. '어쩔 수 없었던 자연적 조건'이 부각될수록 책임자 처벌은 약해지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의 유족들은 학교가 여행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태안군과 해경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것이 아니었는지, 업체와 관계기관의 유착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기했지만 관련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시 구조적인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둘러싸고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구조 의무를 내팽개친 선장과 선원을 악마화하는 것으로 사고 원인규명이 마무리된다면, 나머지 원인들은 그대로 잠복되어 우리 사회에 남을 것이다. 엉터리 선박 검사도, 과적을 위해 평형수까지 빼며 위험한 항해를 계속하는 관행도, 구조 과정에서의 무능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똑같은 사고를 언제든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특별대우'가 아닌 이유

재난참사 유가족,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와 씨랜드 화재 사고 등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모인 '재난안전가족협의회' 준비위원회가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재난참사 유가족,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와 씨랜드 화재 사고 등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모인 '재난안전가족협의회' 준비위원회가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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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이후 늘어난 악성댓글로 세월호 대책회의는 지난 5월부터 악성댓글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내용을 제보받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비난 논리 중 대표적인 게 "왜 이 사고만 특별대우를 하느냐"는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지난날 수많은 참사의 아픔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세월호 유가족에게 왜 특별대우를 받으려 하느냐고 따질 게 아니라,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과 연대하길 바란다. 그러면 수없이 일어난 사고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사고를 기억하는 이들이 10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상'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아픔과 절망을 경쟁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자는 말과 같다. 이 모든 아픔을 끌어안을 때만이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형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대단한 연대를 보이고 있다. 지난 참사의 유가족들 중 누구도 '왜 세월호만 특별대우냐'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어 진짜 안전한 사회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한국의 지난 대형사고의 원인이 된 문제까지도 해결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난 날의 비극도 새롭게 기억되고, 유의미하게 되살아 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지난 대형사고의 유가족들의 오랜 노력에, 우리가 화답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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