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입구에 놓여진 역사적인 범죄학자들의 사진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입구에 놓여진 역사적인 범죄학자들의 사진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중년의 대학 교수가 자택 거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현장의 정황을 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혼란스럽다. 작은 원탁에는 술병과 술잔 하나가 있고, 그 옆에는 '미안하다'라는 요지의 유서 비슷한 문서가 출력되어 있다.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도 흩어져 있다.

이것만 보면 자살같다. 그런데 현장에는 사망자의 것이 아닌 다량의 혈흔이 있고, 침입자로 보이는 사람의 발자국도 있다. 반면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온 흔적은 없다. 처자식과 직장동료, 전문절도범 등 사건의 용의자는 모두 여섯 명.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실제 사건은 아니다. 전 경찰대학 교수 표창원 박사가 대표로 있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www.pyocsi.com)'가 주최하는 제1회 'CSI/프로파일링 체험전'을 위한 가상의 사건이다. 범죄사건 및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 체험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 첫 번째 팀에 속할 수 있도록 참가신청을 했다. 체험전 참가자들은 수사관이 되어서 이 사건을 수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8월 1일 금요일 오전 9시께 지하철분당선 야탑역 인근에 있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과학수사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범죄학자들의 사진과 간략한 프로필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다. 이번 체험전은 약 3시간 동안 6개의 방을 차례로 거치면서 진행된다.

체험장으로 들어서면서 의외라고 느껴졌던 점은, 참가자들 중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체험은 10명이 한 조가 되어서 이동하며 진행된다. 내가 속한 조에서 성인 남성은 나 혼자 뿐이었다. 여성이 많은 이유가 뭘까. 표창원 박사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서일 수도 있고, 범죄를 다룬 미국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표창원 박사가 들려주는 범죄수사 이야기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자택거실에서 발견된 시신, 체험전 참가자들은 이 사건을 수사해야한다.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자택거실에서 발견된 시신, 체험전 참가자들은 이 사건을 수사해야한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과정에서는 표 박사가 동영상을 통해 범죄수사의 기초를 들려주었다. 표 박사가 말하는 '명탐정의 조건'은 5가지다.

1. 어린이가 되어라 - 사건에 대해서 순수한 호기심을 가져라.
2. 바보가 되어라 - 자신이 무지하다는 가능성을 갖고 모두에게 질문하라.
3. 엄격한 아내, 엄마가 되어라 - 아내와 엄마의 뛰어난 관찰력과 직감을 가져라
4. 할머니의 뜨개질을 떠올려라 -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끊긴 고리를 찾아라.
5. 유능한 영업사원이 되어라 - 명탐정은 말하기보다는 듣고, '연락달라'고 말한다.

표 박사의 강의가 끝나고 범죄현장으로 이동했다. 그 전에 완전무장(?)을 했다. 등에 'CSI:과학수사대'라고 써진 검은 조끼를 입고, 신발에는 덧신을 신었다. 현장에 수사원들의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머리에 샤워캡 같은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양손에는 고무로 된 얇은 장갑을 끼웠다. 이 모든 조치는 현장을 보존하고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다. 수사관이면서 동시에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가 된 기분이랄까.

마치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작은 거실에 한 남성이 사망한 채로 누워 있다. 왠지 표창원 박사를 닮은 것도 같다. 체험자들은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서 현장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고 증거물들을 수집했다. 나는 기다란 면봉으로 바닥에 떨어진 혈액을 채취해서 증거물 상자에 담았다. 이 혈액이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서 수사방향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흥미로운 증거물 분석과정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대학교수는 어떻게 살해당했을까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대학교수는 어떻게 살해당했을까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루미놀을 이용한 혈흔반응 실습을 하고있는 참가자들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루미놀을 이용한 혈흔반응 실습을 하고있는 참가자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증거물 보존의 원칙 중 하나. 증거물은 봉투 또는 상자 하나에 하나씩만 담는다. 여러 개를 담을 경우 그 안에서 섞이며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증거물을 수집하고 현장을 관찰한 체험자들은 그 옆에 있는 증거물 분석실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이 가장 열띤 반응을 보였도 곳도 이 방이었다. 여기서는 여러 장비를 이용해서 직접 증거물들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코스는 '정전기 전사지'를 이용한 족적 채취 과정이다. 현장에 남겨진 족적을 채취해서 그 특징과 보폭 등을 확인하면, 그 족적의 주인공이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신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조교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자신의 족적을 채취하는 실습을 했다. 당연히 질문도 나온다.

"나무로 된 마루바닥에서도 채취가 가능한가요?"
"야외의 흙바닥에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나요?"

조교는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족적채취 이후로 루미놀을 이용한 혈흔반응 실습, 지문채취 실습, 고성능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증거물 확인 방법 등의 과정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혈흔 반응이었다. 범죄소설을 읽다보면 사건현장에서 루미놀을 이용해서 혈흔을 확인하는 장면이 수없이 나온다.

조교의 지시에 따라서 루미놀(무색)이 들어있는 작은 튜브에 혈액을 묻힌 면봉을 넣으니 루미놀은 파랗게 변하면서 빛을 내고 있다. 체험장이 어둡기 때문에 이 파란색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소설 속의 장면이 내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다.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참가자들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참가자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제는 사건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써야할 때다. 체험자들은 책상에 둘러 앉아서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고 실현가능한 범죄시나리오를 보고서에 작성한다. 보고서를 당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추리한 후에 원한다면 8월 15일까지 이메일을 통해서 전송하면 된다. 우수한 보고서를 작성한 체험자에게는 푸짐한 상품이 있단다.

나도 텅 빈 보고서를 앞에 두고 앉았다. 이 사건에서 실현가능한 범죄시나리오는 너무 많다. 자살 가능성은 배제하자. 자살이면 맥이 빠져버리니까.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 세 가지를 하나씩 써내려갔다. 그런데 표 박사는 어디 있기에 안 보이나.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보고서 작성까지 끝내고 나오자 표 박사가 수료증을 건네면서 말한다. 내가 작성한 범죄시나리오는 사건의 진상과 들어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설에서만 보아왔던 증거물분석도 직접 해보았고, 조용히 앉아서 추리하며 보고서를 썼으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체험으로 3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발생 3시간 만에 해결되는 살인사건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사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의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범죄소설을 좋아하고 과학수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체험전에 참가해보면 어떨까. 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3시간 동안 정말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표 박사에게 수료증을 받으면서 인증샷!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표 박사에게 수료증을 받으면서 인증샷!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수료증
▲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 수료증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체험전 명 : 제1회 ‘CSI/Profiling 체험전'
장소 : 수도권지하철 분당선 야탑역 인근 코리아디자인센터 (031-780-2114)
기간 : 2014.08.01.(금) ~ 08.15. (금)
체험전 시간 : 매일 09:00~17:00 (매 30분 간격 입장)
소요시간 : 3시간 (총 6개의 방, 각 30분 씩 체험)
문의 : 1544-1555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