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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4년에 징병 신체검사를 받고, 이듬해 여름에 현역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6주 동안 논산훈련소에서 각종 병기본 훈련을 받고, 이후 대전의 군의학교에서 다시 4주간 의무병과 교육을 이수했다. 그 뒤에 나는 퇴소하여 의무병 보직을 부여받고, 전방의 어느 국군병원으로 자대를 배치받았다.

당시 훈련소 조교로부터 국군병원에 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방의 야전부대에 비해 훈련량이 적고, 훈련 내용도 그리 힘들지 않은 편이라는 얘기였다. 거기다가 부대 근무환경도 조금이나마 더 낫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매일 밤의 일과 '행사', 무수히 많은 폭력이 오간 그 시절

아픈 병사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MBC <진짜 사나이> 중 한 장면.
 아픈 병사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MBC <진짜 사나이>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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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에 부푼 채로 도착한 자대에서 내가 마주한 상황은 조교의 말과 상당히 달랐다. 물론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병원 시설이 근무지인 터라 깨끗하고 쾌적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 병원 업무가 부대 운영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훈련 일정도 매우 적었다. 최소한 야전부대와 비교하자면 말이다.

부대생활이 마냥 편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심하게 부상당한 병사들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했던 것도 컸다. 출혈이 심한 환자를 처치하는 군의관을 옆에서 돕는 경우도 있었고, 수술실에서 환자의 절개된 신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당황해서 실수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이다.

강도높은 훈련 끝에 쓰러진 병사 샘. MBC <진짜 사나이> 중 한 장면.
 강도높은 훈련 끝에 쓰러진 병사 샘. MBC <진짜 사나이>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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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었거나 죽음을 앞둔 상태의 병사를 목격하기도 했다. 매달 사상자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입대하기 전에 뉴스에서 보던 것이 군대 내 사건·사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군에서 죽고 다치는 사람은 늘 있었고,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부분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관련기사 : 뺨 맞아 고막 파열, 성폭행도... 부모들은 모르는 국군병원의 '진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매일 밤의 일과라며, 내가 내무실로 배치받은 이후부터 강제로 참여하게 된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취침점호가 시작되기 전, 청소시간에 '후임'들은 모두 화장실에 모여야만 했다. 그리고 내무실에서 '군기반장' 역할을 맡는 선임이 후임들을 일렬로 줄 세운 뒤, 그날 잘못한 일을 스스로 읊게 했다.

잘못을 실토하게 한 이후에는 어김없이 구타가 이어졌다. 흔하게는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치기도 했으며, 얼굴에 상처가 남을까 우려될 때에는 주먹으로 복부를 때리기도 했다. 발로 걷어차거나 몽둥이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한 사람의 둔부를 가격하는 방법도 있었다.

혹독한 훈련이 없는 병원부대에서는 당시에 '군기를 잡는 방법'으로 폭력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야만 위계질서가 유지된다는 논리였다. 분위기를 정리한다는 식으로 자행된 구타는 부대의 전통으로 여겨지면서 암암리에 계속되었다.

'잘못을 체벌로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과연 옳은 것일까. 문제는 그런 질문을 던져볼 틈도 없이 구타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한 후임들은 어떤 실수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도록 말과 행동에 더 신경을 썼다.

군 생활 1년 동안 아무 일 없다, 사투리 문제 삼은 선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후임(윤종빈 분, 감독)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구타를 하려는 선임(하정우 분)의 모습.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후임(윤종빈 분, 감독)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구타를 하려는 선임(하정우 분)의 모습.
ⓒ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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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으로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그날 일과가 모두 지나고 또 다시 화장실에 '집합'당한 인원들은 하나도 실수한 것이 없음에 안도했다. 그렇지만 당시 상병이었던 선임은 일렬로 서 있던 무리에서 나를 한 발 앞으로 따로 불러냈다.

"야, 김준수! 넌 왜 억양이 그 모양이냐? 사투리 안 고칠래?"

나는 입대하기 전까지 21년을 오로지 대구에서만 살았다. 평생을 써온 사투리도 입에 착 달라붙은 상태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선임이 뱉은 질책에 당황한 나는 급기야 말을 더듬었다. 1년 가까이 되는 군생활 동안 사투리를 이유로 질책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구타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반복되었다. 맞은 뺨을 추스를 틈도 없이 주먹이 날아왔고, 때리는 사람이 그만두기 전까지 구타는 계속되었다.

내 옆으로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왜 쏘아보냐"고, 혹은 "넌 왜 말하는데 눈을 마주치지도 않느냐"고 주먹질이 이어졌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다고 때리고, 반대로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반항하는 투라며 때리기도 했다. 그에게는 눈에 띄는 무엇이든 '맞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내서 때리고야 말겠다는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전역했다. 이제는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전에는 그런 질문 없이 "경상도 출신인가 보네요?"라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이제는 고향이 대구라고 대답하면 "사투리를 거의 안 쓰네요?"라며 놀라는 표정을 보게 된다. 과연 군대에서 당한 일에 고마워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거침없이 주먹질을 당했던 나와 동기들은 "우리가 선임이 되면 바꾸자"고 함께 다짐했다. 거기다 2005년 '김일병 총기 난사사건' 이후로 구타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진 영향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병장이 되었을 즈음에는 부대 안에서 누군가 맞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내가 전역하고 몇 달 뒤에 씁쓸한 소식을 전해들었다. '내가 아끼던 후임'이 실세가 되고 나서 다시 구타가 시작되었고, 결국 몇 명은 영창에 갔다는 것이었다.

처벌 강화가 해법? 군 시스템 투명성과 군인 인권부터 개선해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7월 31일 오후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7월 31일 오후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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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군도>로 주목받는 윤종빈 감독의 2005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 내 폭력문제를 다룬 영화다. 폭력은 군대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퍼져나간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폭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염되듯이 옮아간다. 그것은 계급에서 드러나는 권위주의 그리고 구타를 방조하거나 묵인하는 분위기가 같이 작용한 것 아닐까 싶다.

최근 군대 내 집단구타로 또 한 명의 병사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18일 28사단 의무부대로 전입온 피해자 윤 일병은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3월 3일부터 사망한 4월 6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아무개 병장과 하아무개 병장, 이아무개 상병, 지아무개 상병으로부터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 가혹행위를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관련기사 : 28사단 윤 일병, 신병 전입 후 죽던 날까지 매일 맞았다").

충격적인 폭행 내용이 드러난 가운데,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 폭행' 혐의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해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한 사람이 '때리고' 다른 사람이 '맞는' 것이라면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해결법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다시 현실을 보자. 진정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그런 행동으로라도 계급 간의 질서가 유지된다면 괜찮다'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만연한 분위기 때문이지 않나. 결국 처벌은 사건의 마무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복무기간 동안, 혹은 상급자의 임기 동안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임시방편이 효과적이지 않은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사건과 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진정 바꾸려고 한다면, 군 시스템의 투명성과 군인의 인권 개선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말로 비켜가거나 시간이 흘러 잊히기를 기다리는 태도를 버려야 할 때다. 계급을 악용한 범죄와 폭력이 발생하고, 이것이 결국 총기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군대는 '국가의 용맹한 파수꾼'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한 자'를 양산하는 악몽의 현장으로 남을 것이다. 사회가 '진짜 사나이'만을 외칠 게 아니라, 변화를 위한 '진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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