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 ⓒ 설앤컴퍼니


뮤지컬 배우 김선영을 <위키드>에서 볼 때마다 안쓰러운 게 하나 있다. 추위가 살을 에는 엄동설한이라면 따뜻할 복장과 모자를, 생달걀이 금세 익어버릴 듯한 무더위 가운데서 입고 노래하다 보니 공연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다. 땀이 많은 배우가 아니라 얼굴은 뽀송뽀송해도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한여름에 김선영은 마녀 복장과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엘파바를 연기할 때 거울을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엘파바의 모습과, 연습실에서 요령을 피울 줄 몰라야 관객에게 진정한 희열과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다고 믿는 김선영의 우직함이 오버랩하고 있었다. 뮤지컬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맑고 청아한 음색 덕도 있겠지만, 무대에서의 성실함이 든든하게 뿌리를 내려야 가질 수 있는 별명이라는 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뮤지컬 <위키드>의 한 장면

뮤지컬 <위키드>의 한 장면 ⓒ 설앤컴퍼니


- 뮤지컬 인생 15년 가운데 작품 중간에 투입되기는 이번 <위키드>가 처음이다. 대사 연습은 상대 배우가 있어야 가능한데, 혼자 연습하려다 보니 대사 연습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뮤지컬 중간에 공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잊고 지낸 것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기회였다. 여기에서 잊고 지낸 것이란 상대 배우 없이 혼자 연습이 가능한가 하는 일이다. 엘파바는 외로운 캐릭터다. 혼자 연기한다는 게, 외로운 엘파바를 연기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상대 배역을 배우가 아닌 연출부에 있는 이들과 함께 시뮬레이션처럼 연습했다. 시간이 비면 배우들도 짬이 날 때마다 호흡을 맞춰주었다."

- 엘파바는 자기 소신이 확고하다. 뮤지컬 인생에서 엘파바와 같은 김선영만의 자기 소신이 있다면.
"제 감정에 솔직한 연기를 하고, 끊임없이 정직하게 살고자 한다. 이런 점이 엘파바와 많이 닮았다. 연습은 항상 정직하게 한다. 제 능력 밖의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다. 반대로 제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공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만들어서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

공연은 저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작업이자 동시에 직업이다. 뮤지컬을 하면서 내가 과연 행복했는가를 되돌아보니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의 행복감처럼 일하면서 행복했던 때도 많지만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 갑자기 밀려드는 행복감처럼 일상에서도 많은 행복을 느꼈다. 공연이 제게 안겨주는 큰 기쁨과, 일상에서 차를 마시며 불현듯 다가오는 소소한 행복은 다른 것 같다.

뮤지컬이라는 일과, 일상에서의 삶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공연할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쁨이 거창하게 표현하면 소신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지금까지의 뮤지컬 인생에서 큰 기복 없이 달려올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 엘파바는 자기 소신을 위해 움직이는 캐릭터다. 그러다 보니 엘파바가 절정에 달하는 2막에서는 감정이 극한으로 치솟을 법하다.

"넘버 '중력을 넘어서'를 부르기 전에 모리블 총장이 엘파바에게 일갈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부터 감정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지금껏 진실이라고 믿어온 게 모두 사기였다는 걸 엘파바가 깨달으면서 충격을 받는다. 이런 엘파바를 연기하면서 속상하다. 엘파바를 제외한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편한 걸 추구하고 행동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뮤지컬이라는 가상의 세계만 투영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2막에서 엘파바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진실이 다르다는 걸 마법사를 통해 알게 된다. 이런 장면을 연기할 때 엘파바가 순수하다는 걸 느낀다.

모리블에게 속았다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억울함이 엘파바에게 교차한다. 제가 연기하는 엘파바를 보며,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해 갈림길에 있는 관객, 슬프거나 상처가 많은 관객이 보더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 ⓒ 설앤컴퍼니


- 뮤지컬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몇 년 된다. <엘리자벳> 하면서 그 별명이 더욱 탄력받은 것 같다. 왜 저를 보고 여왕이라고 불러주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왕이라는 단어가 주는 존재감이 있다. 제가 여왕이 되었으면 하는 팬들의 바람도 담긴 별명이라고 본다. 하지만 저는 그런 대단한 명분을 갖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알고 보면 굉장히 소박한 사람인데 여왕이라고 불러주니 민망하다.

개인적인 삶은 소박하지만 작품을 바라볼 때에는 소박하지 않다. 작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장면도 일부러 의미를 부여해서 접근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스쳐 지나가는 역할은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참으로 소박하다. 무대에서는 여왕의 이미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김선영이라는 개인으로 돌아가면 소박하고 털털하다."

- 남편 김우형씨가 <고스트>에서 몸을 만들 때는 좋지만, 몰리 역의 여배우와 진한 키스신을 연기할 때는 어땠는가.
"남편이 최근 로맨스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자꾸 그쪽(로맨스물)으로 가시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직업이 배우라 로맨스를 피하며 작품을 택할 수는 없다.

남편이 연기하는 <고스트>를 두 번 보았다. 처음에는 (스킨십 강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웃음) 하지만 저 역시 배우다. 남편의 연기를 쿨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샘은 노래가 많은 역할이 아니다. 하지만 동작이 많아서 애를 많이 쓰며 연기해야 한다. 두 번째 볼 때는 그동안 남편이 연습한 과정이 너무 힘든 걸 아니까 안쓰러웠다.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과 글린다를 연기하는 김소현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김선영과 글린다를 연기하는 김소현 ⓒ 설앤컴퍼니



위키드 김선영 고스트 김우형 엘리자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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