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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4일 오전 10시 34분

최민식, 그가 돌아왔다. 신화가 된 영웅과 인간 사이를 조율하느라 촬영 도중 졸도하기 까지 했다는 국민배우가 <명량>으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를 맞이할 개선문은 어느새 흥행의 문으로 급변신중이다.

<신의 한 수>로 시작해 <군도: 민란의 시대>를 거쳐, 새롭게 국민을 사로잡을 영화에 관한 소문은 연일 최다관객 기록 경신이라는 속보성 기사를 흘려보내는 중이다. 최종 관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천만 고지 등극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61분간의 해상전투씬 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자체가 협소한데도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그 자체가 기록인 것이다.

<활>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한민 감독은 멘탈에서 이미 상남자임을 증명한다. 한류라는 원군이 있기는 하지만 특정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외국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인데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명량>을 기어이 완성했다는 것에 모든 걸 떠나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가 과연 일본에서 상영 가능한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호불호의 평가는 엇갈리고 평론가들은 비교적 냉정한 멘트를 날리지만 재미있다는 관객의 반응은 굴곡이 없다.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평가는 거역할 수 없다는 대세에 한 표를 던진다. 실제로 재미있다! 뚝심이 이루어낸 결과다.

알다시피 영화는 역사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에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대한 사건을 압축 요약한다고 해서 보여주기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61분간의 해상전투신으로 '이야기'의 공백을 얼버무렸다는 식의 지적은 과감한 연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어차피 향기와 열매를 모두 가질 수는 없는 법.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관객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당시의 아픔을 공감하되 절감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폭염주의보를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유통되는 이 '핫'한 시대에 적어도 생존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일상의 전투에 지친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 본, 당대의 보다 더 큰 아픔이 주는 학습효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과 현재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는가? 거기서 문득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마치 와류가 일어나는 울돌목의 힘찬 물살처럼. 관객이 열광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미끼로 욱일승천하는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힌 적군을 유인해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은 비장하다 못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순간 그를 따르던 부하들의 관망이다. 모두 득도한 것 같은 표정으로 멀찍이서 상관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수군들, 대체 그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자리한 걸까?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는 배설이라는 부하의 암살시도를 보면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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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라는 최고통수권자의 의심과 질투를 견디는 것도 힘든 판에 뭉치고 싸워도 적을 이길 수 없는 현실에서 적전분열을 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로 영웅을 제거하고 거북선을 불태우는 자들, 바로 임진왜란의 가장 큰 책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지도층이었던 그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을 단숨에 격파해버리고 기세가 등등한 왜의 수군 진영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도도사마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리고 해적 출신인 구루지마의 미묘한 역학관계의 긴장은 전공에 사로잡힌 수뇌부의 갈등과 알력을 조장, 결국 이순신을 제거하고 조선의 임금을 사로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적에게도 선조나 배설과 같은 얕은 마음이 어깨동무한 것은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충심에 대한 하늘의 선물일 것이다. 자중지란을 일으킨 약점 외에도 승전을 위한 카운터 펀치격의 행운의 요소는 더 있다. 오타니 료헤이가 열연한 준사라고 하는, 조선 측 첩자로 활동한 왜의 장군이 나중에 이순신 진영에 합류하는 것이다. 구루지마의 지적처럼 당시 왜군중에서 일부가 이순신을 흠모하고 존경했다는 사실은 전투가 격화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스펙을 가진 적장에 대한 또 다른 경탄으로 바뀌면서 어느덧 왜군이 자신들의 전의를 접어버리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무릇 예기(銳氣)가 꺽이면 천하도 무너지는 법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줄 아는 존재, 영웅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죽어서 신화가 된 남자 이순신이라는 브랜드파워는 오늘날 모든 CEO가 본받아야할, 최고의 심리전 표본인 셈이다. 이름 석자만으로 적을 물리친다는 것, 무한 긍정의 절대 수퍼 갑이 아니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그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도망가다 잡혀 온 아군의 변명을 다 듣고 단칼에 베어버린다거나 진영을 모두 불태우고 부하들 앞에서 결전을 독려하며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순신의 또 다른 면을 접한다. 인간적이되 나약하지 않고 진중하면서도 물러섬이 없는 그는 확실히 최고의 승부사가 틀림없다.

수군을 해체하고 권율이 이끄는 육군에 합류하라는 임금의 교지를 받고서도 주변의 그 모든 협박을 잠재운 배짱과 기개는 그가 단지 완전무결한 무인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열정과 신념 그리고 의지, 이 모든 것이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최상위의 소유자였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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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동안 유일한 웃음코드였던 스님특공대는 어딘가 격이 맞지 않는 코스프레 같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전 기간 동안 과소 평가된 승병들의 활약상을 수군에서도 일부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벙어리 아낙네 역할을 맡은 이정현과 왜군 진영을 염탐해 준사와 정보를 주고받는 임준영의 러브라인은 적절한 감초 역할로 화약 냄새를 희석시킨다. 그래서 대장선을 향해 돌진하는 적군의 화약선이 중간에 폭발했을 것이다. 적어도 영화의 문법상으로는 그렇다.

여담이지만 이순신 제거를 위해 본토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합하가 특별 파견한 구루지마를 열연한 류승룡은 최후의 순간에 한 번 구른다. 이름대로라면 굴러서는 안 되는데 과감히 적선에 뛰어들었다가 준사의 칼을 받고 최후에 영웅의 힘찬 칼질에 목이 나뒹군다. 웃기게 죽은 적장이지만 살기는 등등했다.

승전 후 격군들은 배안에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훗날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싸워서 나라를 지킨 것을 알기나 할까요 하는 말에 그걸 모르면 개호로 새끼들이지 라고 말이다. 문득 그 대사가 사회 각계각층에 골고루 포진한 매국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비수가 아닌가 싶은 것은 과민반응일까?

그냥 지나치기에는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많은 선조와 배설 그리고 뒷짐을 쥔 자들로 가득찬 세상이기에 400년이나 지났지만 란(亂)은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대리만족은 결국 불만이라는 화약을 물에 적시는 것이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명량>으로 잠시나마 명랑해지는 것도 크게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좋을 것 같다.

* 사족을 하나 부치자면, '호로(胡虜) 새끼'(호래자식)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청나라에 바친 공녀 가운데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즉 환향녀(還鄕女)가 낳은 아이를 말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청나라에 아첨하여 벼슬을 얻은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으니 정유재란 당시에 이 말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만주어를 고증해 역사성을 돋보인 세심한 연출을 한 감독이지만 미처 이것까지 챙기지는 못한 것 같아 살짝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신문 후아이엠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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