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31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서는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지난 7월 31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서는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 공동대표 체제가 끝났다. 지난 7월 31일 7·30 재·보궐선거의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동반사퇴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새정치 추진위원회)의 합당으로 '동거'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이다. 아직 임기가 6개월이나 남아있다. 김·안 공동대표 체제의 완벽한 실패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자고 대표 노릇을 한 건 아니였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포괄적인 야권 지지자로서 한 마디는 해야겠다. 김 전 대표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 때문이다.

그는 "이겨야 하는 선거에 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백의종군의 자세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부단한 혁신을 감당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라고 말했다. '이겨야 하는 선거'였다고 한다. '부단한 혁신'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이 말들 속에 새정치가 이번 선거에 어떻게 임했는지 그리고 새정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등의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이겨야 한다는 말은 당위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 전 대표처럼 피선거권자가 될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일까. 선거는 승패를 냉혹하게 가르는 '게임'이다. 이기거나 지는 일만 있다. 이겨야 한다거나 져야 한다는 말의 주인은 따로 있다. 표를 던지는 국민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피선거권자가 아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함부로 내놔서는 안 된다. 표의 주인인 국민들이 자신들을 우롱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 발 양보하자. '이겨야 하는 선거'라는 말이 선거 승리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겠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새정치는 이번 선거에 '이겨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나. 얼마나 간절하게 국민들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나.

낯익은 구호 '혁신', 하지만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공천파동부터 떠오른다. 밀실공천과 수첩공천, 돌려막기공천 등 부조리한 말들과 함께 말이다. 하도 써먹어 반발감만 생기는 '정권심판' 구호도 떠오른다. 그밖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참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선거에 이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여 준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새정치를 찍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선거 전체를 아우르는 의제 하나 없었다. 그러면서도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며 유권자들을 '겁박'했다.

'부단한 혁신'은 어떤가. 새정치는 낡은 것을 고쳐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혁신은 선거에 질 때마다 나오는 낯익은 말이다. 한 트위터리안이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때부터 깎았으면 지금쯤 뼈가 이쑤시개 됐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신랄하면서도 정확한 지적이다.

참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왜 그들은 늘 선거에 지고 나서야 혁신하겠다고 할까. 선거에서 지는 게 혁신의 이유인가.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선거에 최선을 다하고, 패했더라도 후회가 없는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선거 참패 후마다 나오는 혁신 타령이, 내겐 그들이 선거를 날로 먹으려 했다는 증거로 다가온다.

김 전 대표는 도대체 무엇을 혁신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어떻게? 혁신한다고 하니 일단 믿어볼까. 믿고 싶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 벌써부터 혁신을 빌미로 계파싸움이나 벌이는 모습이 연상된다. 해묵은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는 광경이 그려진다. 김 전 대표의 '부단한 혁신'이 그저 수사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 전 대표가 몸담고 있는 새정치의 미래가 암담해 보이는 까닭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혁신(革新)'의 '혁'은 고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개혁'이나 '혁명'의 '혁'과 같은 글자다. 이들 '혁'의 대상은 모두 낡은 것이다.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치는 게 '혁신'이고 '개혁'이며 '혁명'이다. 그렇게 해서 전혀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틀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인적 쇄신 필요한 새정치

무엇보다 세대교체와 인적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 새정치 안에는 당 대표와 대선 후보를 지낸 60대 중진들이 많다. 이들은 독자계보를 이끌면서 차기 당권을 노리는 실세들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들은 당 안팎에서 세대교체와 인적 쇄신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이들이 뒷선으로 물러난다면 젊은 세대의 운신 폭이 넓어진다. 마침 손학규 상임고문의 정계은퇴로 분위기도 좋다.

계파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새정치의 계파 문제는 당내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계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주체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때 개혁과 세대교체의 상징이었던 486 그룹은 당의 '허리'가 되면서 기득권 세력이 된 지 오래다. 초선 그룹 또한 공천권 때문에 이미 계파 질서에 순응하고 있다.

거대정당체제에서 계파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문제는 계파가 무엇을 중심으로 구성되는가다. 기존 계파 구조는 인맥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계파 따위에 관심 없는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점이다. 국민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수권 능력이다. 이를 위해 민생과 경제를 올바르게 이끌 줄 아는 정책적 안목과 비전을 중시한다. 정책적인 가치와 정치 노선 중심으로 당내 계파 구조가 재구성돼야 한다.

국민을 앞에 두고 각 계파가 치열하게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계파간 노선투쟁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 싸움은 머리 수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미래 정책 비전이나 철학을 통해 판가름하는 게 좋다. 각 계파의 대표주자들이 나서는 '끝장정책 토론대회'라도 열어 국민들 심판을 받아보라. '제1회 새정치민주연합 정책평가대회'를 열어 전문가들로부터 냉철한 평가를 받아보라.

새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 얻는 방법

그러면서도 대여(對與) 투쟁은 집요하게 해야 한다. 야당은 대여 투쟁의 최선봉장이다. '싸움'을 제대로 하는 야당이라야 국민들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는다. 싸우되 비전과 가치, 정책, 대안을 놓고 싸우라. 머리 수가 뒤지는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민들에게 차기 수권세력으로서의 능력과 비전을 보여주는 비결이기도 하다.

김·안 두 대표의 사퇴로 새정치는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유지된다. 당내에서는 이 비대위를 '실권형'으로 할 것인가 '관리형'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나뉘는 모양이다. 실권형이 되면 비대위가 당 쇄신과 개편 권한까지 갖는다. 관리형은 차기 지도부가 들어설 때까지 조정과 관리 역할만 맡는다. 지금까지의 선례는 관리형이었다.

핵심은 실권형과 관리형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가 아니다. 비상사태를 맞은 당 쇄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비대위든 새 지도부든 손대야 할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대교체와 인적쇄신, 계파정치 등 모두가 중요한 것들이다. 뿌리부터 새롭게 바꾼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다. 새정치가 사즉생의 각오를 새겨 진정한 '새 정치' 시대를 열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새정치민주연합, #7.30 재보선 참패, #세대교체, #계파정치, #비상대책위원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