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뉴질랜드와 다섯 차례에 걸친 평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과 신체조건에서 한 수 위로 꼽히는 뉴질랜드를 상대로 2승 3패를 기록하며 대등한 승부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러 가지 수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건강하게 돌아온 오세근의 부활을 확인했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오세근은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1년 넘게 제대로 코트를 밟지 못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은 3위를 차지하며 농구월드컵 출전권을 따냈지만 오세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상무에 입대한 오세근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게임을 준비하는 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표팀에 복귀했다. 공백기와 부상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오세근은 오세근이었다.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로 꼽히는 뉴질랜드와의 홈-원정 평가전에서 오세근의 경쟁력은 빛을 발했다.

'숨은 살림꾼' 오세근

뉴질랜드전의 최대 스타는 역시 22점을 올린 조성민이었지만, 숨은 살림꾼은 오세근이었다. 지난 7월 29일 뉴질랜드와 홈 1차전에서 11점-14리바운드의 더블-더블을 기록했던 오세근은 이틀 뒤인 31일 2차전에서도 10점 7리바운드 3스틸 2블록을 기록하며 골밑을 사수했다. 한국보다 높이와 체격에서 월등한 뉴질랜드를 상대로 골밑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큰 선수들을 마크하며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쳐준 오세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세근은 한국에서 쉽게 나오기 어려운 유형의 빅맨이다. 키는 커도 체격조건이 가냘픈 보통의 한국 빅맨들에 비해 오세근은 탄탄한 근육질의 체격을 앞세워 외국인 선수들과도 대등한 몸싸움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선수다.위치선정이 좋고 손놀림이 빨라서 빅맨임에도 가로채기에 능하고 활동량도 크다.

하승진이나 이승준 같은 빅맨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토종빅맨의 전형적인 롤모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농구 역대 최장신 센터인 하승진은 축복받은 신체조건에도 부상 위험이 잦고 내구력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승준의 뛰어난 탄력은 혼혈선수라는 선천적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신체조건에 상당히 의존한 농구를 펼치지만 부상위험이나 수비력, 낮은 전술 이해도 등으로 단점도 뚜렷하다.

오세근은 이들에 비하면 힘이나 신체조건으로만 승부하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터프한 이미지에 비해 오세근은 농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된다. 동료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스크린을 걸어주거나, 한 박자 빠른 도움 수비로 상대의 실책을 끌어내는 등 공을 가지지않은 상황에서 궂은 일에도 능하다.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는 오세근이 직접 포스트업을 통해 상대 수비를 끌어들이거나 중거리슛·컷인 등으로 직접 득점에 가담할 수도 있다.

골밑 싸움-활동량-체력 두루 갖춘 빅맨

오세근은 빅맨으로서는 결코 큰 신장이 아니다. 이번 대표팀의 빅맨 4인방 중에서도 오세근의 신장이 가장 작다. 김종규-이종현은 국제경험이 아직 부족하고, 노장인 김주성은 현재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다. 어차피 국제무대에서는 대부분의 토종 빅맨들이 언더사이즈일수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오세근은 한국형 빅맨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힘과 높이는 떨어져도 최대한 상대가 리바운드를 쉽게 걷어내지 못 하도록 적극적인 몸싸움과 박스아웃으로 골밑에서 볼을 다투는 것은 기본이다. 일대일로는 자신보다 큰 상대를 막을 수 없기에 상대보다 한 발이라도 더 뛰는 부지런한 활동량과 체력도 필수다. 빅맨이라도 상황에 따라 중거리슛을 던지거나 외곽수비에도 가담하는 등 다양한 테크닉과 폭넓은 코트 활용 역시 단신 빅맨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이는 유재학 감독이 대표팀 토종빅맨들에 꾸준히 요구하는 조건이기도 하며, 이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오세근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농구의 전술적 중심은 슈터다. 야오밍이나 하메드 하디디처럼 탈아시아급의 신체조건과 기량을 갖춘 빅맨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정교한 슈팅을 바탕으로 한 외곽농구에 의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국제대회의 특성상, 오세근 같은 빅맨이 대표팀에서 두각을 드러낼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구는 높이와 확률의 스포츠다. 슈터들이 마음 놓고 슛을 쏠 수 있는 것은 빅맨들이 헌신적으로 스크린을 걸어 기회를 만들어주고, 슛이 빗나가도 리바운드를 해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신체조건이 열세인 팀일수록 빅맨들이 보이지않는 곳에서 한 발이라도 더 뛰어주고 궂은 일을 해줘야 정상적인 팀플레이가 살아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눈에 띄는 것이 곧 빅맨의 가치다. 직접 공을 들고 있는 시간이 적어도 코트 위에서 빅맨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더 많다. 또한 누구보다 수비 조직력을 트레이드 마크로 강조하는 유재학 감독의 대표팀에서 빅맨들은 골밑뿐 아니라 외곽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전술적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장신센터가 부족한 한국이 농구월드컵과 아시아게임에서 세계적인 강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오세근 같은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