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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구조 실패의 원인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반복되는 재난사고 속에서 왜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연속칼럼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5월 10일, 안산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들이 강남집단이었다면 (사고 수습)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너무나 아픈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참사조차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이들은 학생들이었다. 선원들은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라"며 통제하려고 했다. 여러 차례 이 배를 탔던 화물 노동자들은 배에 이상이 발견된 후 대부분 빠져나왔지만,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던 학생들은 '가만히' 있다가 희생되었다.

조리사들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역시 참변을 피할 수 없었다. 해경에게도 승객 구조는 일순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구조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까를 걱정했고, 정부 역시 VIP(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더 걱정했다.

보호받아야 할 약자, 위험으로 모는 사회 구조

4월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한 뒤 안타까워 하고 있다.
 4월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한 뒤 안타까워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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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거나 권력이 없는, 나이나 적거나 많은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대중교통수단인 철도와 지하철의 경우도 그렇다. '이윤논리'를 앞세워 차량 정비 비용을 줄이고, 안전업무 담당 인력을 줄여서 위험을 높이고 있다. 스스로 사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이들은 큰 비극을 면하겠지만 위험으로부터 자력구제를 하기 어려운 약자들은 타인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안전 비용을 제대로 지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이다. 참사 이후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은 배제되고 책임은 하위직들만 진다. 정부는 사회적으로 여론이 집중될 때 책임자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척만 한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이 멀어지면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은 사라지고 재발방지 대책도 유야무야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최고책임자와 정책결정단위의 고위 공무원들이 책임지도록 하지 않는 이상 기업의 이윤을 위해 안전비용을 줄이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또 정부와 기업이 결탁하여 안전관리와 재난구호를 소홀히 하는 일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참사가 '불평등하다'는 말은 참사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곡기를 끊고 싸우는 유가족들에게 누군가는 폄훼하는 말조차 서슴지 않는다. "사고는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데 그 모든 사고에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냐"고. 게다가 새누리당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는 '해상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사고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복잡하고 속도가 빠른 현대사회에서 사고는 일상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가 '참사'가 되는 것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고는 수습도 금방되고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회구조가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안전에 대한 비용을 아끼려 들며, 무책임이 구조화되면 사고는 '참사'가 된다.

2004년 홍콩에서도 한 노인의 방화사건이 있었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부상자만 14명이었다. 지하철 내부에 불연재를 사용했고 사람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3년에 있었던 대구지하철 참사에서는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51명의 부상자를 남겼다. 기관사는 마스터키를 빼고 혼자 도망갔고 구조를 담당할 승무원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지하철 재료들이 모두 불쏘시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사고가 아니라 '참사'인 이유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19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 19일째 단식농성중인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19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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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의 차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청해진해운은 이윤을 위해 노후한 선박을 들여와 불법개조하고 과적했다. 이윤 중심의 사회는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비용이 들기때문.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안전관리 업무를 외주화했고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이윤 논리를 더욱 부추겼다.

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진도VTS 담당자들은 관제를 소홀히 했고, 문책이 두려워 증거를 삭제했다. 해경은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하려는 이들을 통제하기에 바빴다. 언론은 구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왜곡보도로 혼선을 줬다. 언딘은 인양업체이기 때문에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부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통제하고, 탄압하기에만 바빴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부 정책과 책임있는 자들의 무책임이 사고를 '참사'로 만든 것이다.

참사는 결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 구조가 왜곡되어 있고, 생명을 하찮게 여길 때, 아주 작은 사고가 커다란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일차 희생자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며, 그 구조 속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은 사회의 지배층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피해자들이 나서는 것을 가로막으며, 진실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탄압한다.

단지 사건에 대한 수사로만 그치도록 유도하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시민들을 윽박지른다.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이며, '그로 인해 희생된 이들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자신의 책임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자들의 교활한 논리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침몰의 원인이 아니라, 침몰을 부추겼던 규제완화와 이윤을 향한 기업과 정부의 카르텔 등 침몰의 구조를 밝혀야 한다. 또 사고를 참사로 만든 정부의 대응, 즉 생명에 대한 무시와 통제, 무책임의 극한을 제대로 밝히고 책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짜 권력의 주체가 나서야 안전한 사회 가능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14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 ‘4·16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 350만1천266명으로부터 받은 서명지를 공개했다. 서명지는 4월 16일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모두 416개 노란 상자에 담았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14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 ‘4·16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 350만1천266명으로부터 받은 서명지를 공개했다. 서명지는 4월 16일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모두 416개 노란 상자에 담았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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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은 '4·16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청원했다. '우리는 돈을 위해 위험을 양산할 테니 너희는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정부를 향해 '과연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서이다.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하고, 작은 생명이라도 그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고 실현할 때 정부의 의미가 있다.

만약 정부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약자들을 희생시키고, 위험을 양산하기 위해 나선다면 당연히 '그런 정부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정부를 대신하여 "국민들이 바로 국가"임을 선언하며 스스로 법을 만들고, 사회의 여러 불안정한 요소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참여하여 안전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천명한 이들이 있다. 이 법안에 서명한 400만명의 시민들이다.

진짜 권력의 주체는 청와대에 앉아 있거나 국회에 앉아 있는 이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어야 한다. 진짜 권력의 주체들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주범들을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참사 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특별법,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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