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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면서 뻔뻔하기까지 하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 승객들에게 탈출 안내방송을 했다고 주장한 목포 해경 123정장의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해경의 부실 구조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분위기다. 온·오프라인에서는 해경이 초동 대처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책임을 피하게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의 비난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해경의 거짓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종자 수를 사실과 다르게 번복했고, 구조에 투입된 인력을 부풀렸으며, 민간 구난업체에 사실상 '특혜'를 준 사실을 숨겼다.

사고 초기부터 이어져온 해경의 '무능하면서도 뻔뻔한' 거짓말들을 정리해봤다.

김석균 해경청장이 4월 26일 오후 전남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 수색에 투입된 '언딘 리베로' 바지선 위에서 수색 현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날 오후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은 잠시 중단됐다.
 김석균 해경청장이 4월 26일 오후 전남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 수색에 투입된 '언딘 리베로' 바지선 위에서 수색 현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날 오후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은 잠시 중단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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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①] "선내에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 (4월 18일)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3일째인 4월 18일 오전 9시 10분께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선내에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5분여 뒤 다시 나타나 "공기 주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현장에 있던 가족들은 "우리 아이가 죽어 가는데 또 거짓말을 한다"고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수색 작업 상황도 번복됐다. 해경은 같은 날 오후 1시 40분 "잠수 인력이 여객선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 2시간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선내 진입 성공'을 '실패'로 정정한다"고 말을 바꿨다. 해경도 곧이어 "화물칸 진입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해경의 말 바꾸기에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전부 다 거짓말"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게다가 이후 해경이 선체에 주입한 공기가 인체 유독성 일산화탄소였다는 주장이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제기돼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비수를 꽂았다.

[거짓말②] "잠수요원 532명을 지속 투입했다" (4월 18일)

세월호 사고에 대한 해양경찰청 상황보고서 4월 18일자 일부분. '동원세력'에는 '잠수요원 532명'으로 돼있으나 아래 시간대별 '수색사항'을 살펴보면 수중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76명에 그쳤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해양경찰청 상황보고서 4월 18일자 일부분. '동원세력'에는 '잠수요원 532명'으로 돼있으나 아래 시간대별 '수색사항'을 살펴보면 수중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76명에 그쳤다.
ⓒ 해양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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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해경은 "잠수요원 532명을 지속 투입했다"며 "모든 가용세력을 총동원하여 수색·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경의 이 같은 발표는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가 해경 상황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실제 투입된 잠수사는 76명에 불과했다.

다음 날에도 해경 등 정부는 "652명 잠수부가 총 40회에 걸쳐 선내 진입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해경의 상황보고서에는 "(수중) 잠수요원 14명, 총 7회 실시"라고 기재돼 브리핑 내용과 큰 차이를 보였다.

[거짓말③] "첫 실종자 시신을 발견한 건 언딘 소속 잠수사다" (4월 19일)

해경 등이 참여한 범정부대책본부는 사고 4일째에 "민간잠수요원이 4층 격실 부근에서 유리창을 통해 시신 3구를 발견했다"며 "(민간 잠수부는) '언딘'이라는 심해잠수 전문 구난업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시신을 발견한 게 언딘이 아닌 민간 자원봉사 잠수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해경은 뒤늦게 "선내에서 처음 시신을 발견한 것은 민간 잠수부가 맞다"고 말을 번복했다.

해경은 사고 초기부터 제기된 '언딘 일감 밀어주기' 의혹과 관련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왔다. 하지만 해경이 사고 발생 직후인 4월 16·17일 '언딘 잠수사들이 우선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해군 UDT 요원의 현장 투입을 막은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거짓말④] "침몰 현장에서 승객 향해 탈출 안내 방송 수차례 했다" (4월 28일)

'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4월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경과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한 뒤 실종자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선체 진입시도하는 해경·해군 '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4월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경과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한 뒤 실종자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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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해경 123정장인 김아무개 경위는 사고 초기 당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함내 방송장비를 이용해 승객들에게 '퇴선하라'는 방송을 수회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경위는 '해경이 침몰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서 탈출 안내 방송이 들리지 않는다'는 질문에 "방송은 내가 직접 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당시 경비정에선 그 누구도 탈출 안내 방송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도리어 탈출 방송을 한 것처럼 함정일지가 위조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광주지검은 해경이 4월 16일에 작성된 함정일지 1장을 찢어내고 허위 내용으로 일지를 다시 작성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위조됐다고 판단한 일지에는 '사고 해역에 도착해 오전 9시 30분부터 35분까지 5분간 세월호를 향해 퇴선 방송을 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고 알려졌다.

해경은 참사 초반부터 제기된 '초기 대응 실패' 지적에 적극 반박해 왔다. 목포해경의 한 간부는 해경 측 초기 대응이 미진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논란을 빚어 직위해제되기도 했다.

[거짓말⑤] "세월호 실종자 2명 늘어... 중국인 추가 발견" (5월 7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22일째, 해경은 구조자와 실종자수 집계를 바꿨다. 7번째 번복이었다. 당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탑승자수는 변동이 없으나, 구조자가 2명 감소하고 실종자가 2명 늘었다"고 밝혔다. 실종자수는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추가로 발견돼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경의 이 같은 해명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청장이 언급한 중국인 이도남, 한금희씨는 지난달 21일과 23일에 각각 발견돼 장례까지 치렀다. 이미 신원확인이 이뤄지고 장례 절차까지 마친 희생자를 세월호에 남아 있는 것으로 허위 발표한 것이다.

해경 등 정부는 사고 당일부터 탑승인원과 구조자수를 수차례 번복해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동안 탑승 인원은 471→477→459→462→475→476명으로, 구조자수는 368→180→164→174→172명으로 오락가락해왔다.

[거짓말⑥] "먼저 구조된 선원들, 선원인줄 몰랐다" (7월 2일)

해경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영상을 4월 28일 공개했다.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해경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영상을 4월 28일 공개했다.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 해경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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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해경 123정이 가장 먼저 구조한 건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배에서 해경이 오기만을 기다린 250명의 학생들은 구조되지 못했다.

해경은 "선원인 줄 모르고 구조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2일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세월호 국정조사장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빨리 구조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어서 선원인지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 결과, 해경이 일부 선원의 신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 123정에 구조된 선원 15명 대부분 자신이 세월호 승무원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 중 1등 항해사 1명이 자신의 신원을 확실히 밝혔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2등 항해사가 무전기를 갖고 있었으므로 선원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태그:#세월호, #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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