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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변호사가 7월 2일 오전 11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30 울산 남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범야권 시민후보'로 출마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7번째 도전에서도 결국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에 고배를 들고 말았다
 송철호 변호사가 7월 2일 오전 11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30 울산 남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범야권 시민후보'로 출마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7번째 도전에서도 결국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에 고배를 들고 말았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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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992년, 울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첫 출마한 후 2012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6번을 낙선한 송철호 변호사는 6전 7기를 꿈꾸며 다시 7·30 울산 남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결국 고배를 들고 말았다.

부산에서 태어나 아버지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 시절 잠시 살았다는 이유로 일부 지역언론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그를 끊이 없이 지역주의로 몰아부쳐왔다. 그는 누누이 6번 낙선의 배경으로 지역주의를 토로하곤 했다.

특히 그는 7번째 도전한 이번 선거에서는 시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된 방송토론에서 그는 "그것이 그렇게 잘못한 것입니까"라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

급기야 이 모습을 본 그의 큰딸은 지난 22년 간 아버지의 선거 낙마로 가족들이 겪었던 소회를 적은 글 '아버지의 눈물'을 25일 오전 아고라에 올렸고, 이 글은 4만5천900여 조회수를 기록하며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관련기사: <송철호 울산 남구을 후보 딸, "아버지 눈물... 기적 있기를">).

송철호 후보의 딸은 '아버지의 눈물'에서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곧 태어날 내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눈물이 울산 시민들의 차가운 무관심을 녹여주었다 말해주고 싶다"며 기적을 기원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높은 울산 지역주의 벽 실감

7·30 재보궐선거 울산 남구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송철호 후보는 29.1%(총 유권자 12만7789명 중 3만7193명 투표)라는, 전국 평균을 밑도는 저조한 투표율속에서 1만6379표(44.18%)를 얻어 박맹우 후보에게 4천289표, 11.6% 차로 패했다.

앞서 송 후보는 지난 2002년 박 후보와 처음 맞붙은 울산시장 선거에서 53.07% 대 43.61%로 패한 바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송철호 후보의 패배를 두고 여전히 울산에는 지역주의가 팽배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전남 순천·곡성에서 26년 만에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승리한 것을 견주어서다.

특히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가 시장 재직시절인 2011년 기업의 이익을 위해 10년만에 석유화학공단의 가동연료로 고황유를 허용하는 조례를 강행해 '도로 공해도시로 간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고, 선거구인 남구 을이 바로 해당지역이라는 점에서 심판론이 팽배했지만 무위에 그쳤다는 점도 지역주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또한 박맹우 후보가 이번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임기를 3개월 남겨두고 조기사퇴하면서 지역사회로부터 '과욕'이라는 비난여론이 형성됐지만 별반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한편 송철호 후보가 비록 패했지만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도 있다. 상대 후보가 선거직전까지 3선 시장을 지내 인지도가 높았던 반면, 송 후보는 2012년 이후 사실상 정치를 떠나 있었고 남구 을에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가운데서도 44%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는 것.

일각에서는 지역 정가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비록 박맹우 후보가 송철호 후보를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하게 됐지만 어느 정도 박 후보에게 심판이 가해졌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태그:#송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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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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