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꽃신>에서 순옥을 연기하는 강효성.

뮤지컬 <꽃신>에서 순옥을 연기하는 강효성. ⓒ 박정환


영화에서 얼굴을 많이 알린 어느 중견 배우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공연이 기자들 앞에서 하는 프레스콜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 관객이 보면 웃음이 터질 재미있는 장면도 프레스콜에서는 하나도 웃지 않고 셔터 누르는 소리만 요란하니, 공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반응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한탄하는 거다. 오죽하면 조승우가 <헤드윅> 프레스콜에서 기자들이 웃는 걸 보고 즉석에서 "웃으니까 좀 좋아?"하고 너스레를 떨 정도인가.

이렇게 반응이 없기로 악명 높은 공연기자들을 프레스콜에서 울린 공연이 있다. <꽃신>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사진석에 앉은 여기자들은 소리 없이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기 바빴다. 한 많은 위안부 할머니의 사연이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후세대에 전달되자 객관적으로 공연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기자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어워즈에서 창작뮤지컬상과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꽃신>에서 강효성은 한 많은 인생을 사는 순옥을 연기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도중에 남편은 징용으로 끌려가고, 자신조차 일본군에 끌려가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짓밟히는 순옥 역의 강효성은 배우뿐 아니라 예술감독도 겸직하고 있었다. 

"눈물이 나지만, 무대에서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

'꽃신' 강효성 "작가의 입장에서 대본을 읽는 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어떤 단어가 나올까, 어떤 뉘앙스의 감정 표현을 하게 될까 고민했다.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에 위안부 할머니의 정서와 심리를 끌어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꽃신' 강효성 "작가의 입장에서 대본을 읽는 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어떤 단어가 나올까, 어떤 뉘앙스의 감정 표현을 하게 될까 고민했다.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에 위안부 할머니의 정서와 심리를 끌어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주)뮤지컬꽃신


- 배우들이 개런티를 받지 않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재능기부는 배우에게 있어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부담을 감안하고 작품을 한다는 건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문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한 거다. 할머니의 증언과 이야기를 듣고 배우들이 뮤지컬을 만드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한마음이 되어서 작업할 수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기 전에는 할머니들이 피해를 받았다는 피상적인 생각만 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증언을 들어보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과정과 가서 겪은 참혹한 사건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배속에 아이가 생기면 태아를 통째로 긁어내고, 자궁을 드러냈다는 일본군의 잔악함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는 주위에서 결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할 때, 남자의 물건이 없는 남자를 만나야만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만큼 일본군에게 당한 일 때문에 남성에 대해 몸서리를 친 거다. 제가 뮤지컬을 한다고 하니 저를 좋아하는 후배가 '언니 저도 할게요', 혹은 후배를 사랑하는 선배가 '네가 하니, 나도 같이 할게' 하는 식으로 배우들이 십시일반 모여서 작업했다."

- 대본의 캐릭터 외에 어느 부분의 캐릭터를 덧입히고자 했나.
"작가가 대본을 쓰면 작가 입장에서 단어가 사용된다. 작가의 입장에서 대본을 읽는 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어떤 단어가 나올까, 어떤 뉘앙스의 감정 표현을 하게 될까 고민했다.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에 위안부 할머니의 정서와 심리를 끌어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꽃신>은 여성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반전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도우면서 살아도 바쁜 세상에 왜 서로 죽이고 싸워야만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든다. 인간이 하는 짓 중 가장 미련한 짓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꽃신>은 여성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반전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도우면서 살아도 바쁜 세상에 왜 서로 죽이고 싸워야만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든다. 인간이 하는 짓 중 가장 미련한 짓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 박정환


- 순옥은 남편을 극적으로 만나지만 남편과 재회하지는 않는다.
"공연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래 '이런 더러운 몸으로...'라는 순옥의 대사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첫날밤도 지내지 못하고 생이별을 했다. 일본군에 의해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서 남편이 다시 합치자고 했을 때 그럴 수 없었다."

- 배우들도 연습하면서 가슴 찡한 순간이 많았을 법하다.
"무대에 올라가면 눈물을 흘리는 등의 감정이 표현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이 저절로 솟아오른다. 상대 배우가 대사하는 동안에 캐릭터의 정서가 구구절절하게 흐른다. 가만히 있어도 대사 속에서 저절로 피부에 와 닿는다.

2막에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를 아들이 다그치자 '하이(일본어로 '예')' 하고 꽃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을 참상이 눈에 확 들어온다. 무대에서 배우가 많이 울면 관객은 감동이 줄어들 수 있다. 무대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마리아 마리아> 이후 공백기가 있었다.
"서울에서 큰 공연을 하지 않고 지방에서 공연했다. 연기 공백기가 있는 동안에 <사랑해 톤즈> 등의 뮤지컬 연출을 맡았다. 배우는 관객의 호흡을 느끼며 연기한다. 관객이 어느 장면에서 감동을 받고 어떤 장면에서 즐거워하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배우라, 포인트를 짚어서 연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연출하면서 세심한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체감했다. 배우는 자기 역할만 잘 소화하면 된다. 하지만 연출은 배우뿐만 아니라 안무와 스태프, 무대를 모두 총괄해야 한다. 연출이든 배우든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 하나라는 걸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강효성씨에게 있어 뮤지컬 속 '꽃신'처럼 중요한 게 있다면.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지만 '꽃신'처럼 소중한 건 뮤지컬 작품이다. 공연하는 동안에는 마치고 집에 들어와도 공연을 잘 마치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 정작 보아야 할 일본 사람은 이 뮤지컬을 보지 못하거나 아베 총리처럼 위안부가 있었다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려고 든다.
"작품을 처음 만들 때 일본에서 공연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일본에서 공연하되, 일본인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를 바랐다. 윤복희 선생님이 연기하는 하루코라는 양심적인 일본 군인 캐릭터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거다. 일본군 안에도 하루코처럼 양심적인 일본인이 존재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꽃신>은 여성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반전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도우면서 살아도 바쁜 세상에 왜 서로 죽이고 싸워야만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든다. 인간이 하는 짓 중 가장 미련한 짓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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