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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우도의 명소. 검멀레동굴과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자세히보면 동굴과 해수욕장의 모래는 검은빛을 띄고 있다.
▲ 우도 제주 우도의 명소. 검멀레동굴과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자세히보면 동굴과 해수욕장의 모래는 검은빛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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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구좌읍의 바닷가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 제주도의 푸른 바다 제주도 구좌읍의 바닷가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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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들썩였다. 아무리 이어도 해양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강연들이 흥미로웠다지만 좀이 쑤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도어(indoor)보다는 아웃도어(outdoor)에 강한 필자에게, 어떤 강연은 지루하다 못해 '잠의 림프'까지 만나게 해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강현, 강은정 박사가 진행한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은  필자의 눈에 붙은 '잠의 림프'를 내쫓아주기에 충분했다. 푸른 바다에 위치한 탐방지들을 시원하게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인 주강현 박사는 인문학, 민속학, 해양학 등 전방위적인 지식인으로 유명한 분이고, 연구원인 강은정 박사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를 당한 곳을 탐방하면서 역사적인 반성과 성찰을 해보는 새로운 형식의 테마여행을 말한다.

섬 속의  섬, 우도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섬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우도였다. 우도는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 하여 우도(牛島)라고 불린다.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우도는 '우도 8경'이 있다.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해양아카데미 탐방단은 유명한 우도 등대에 올라가 우도와 바다건너 성산 일출봉 일대를 조망하였다. 우도 등대는 섬의 남쪽 쇠머리오름에 있는 등대로 1906년에 처음으로 점등되었다. 2003년에 새롭게 개축하였고, 일대를 등대공원으로 만들어 지금은 우도를 찾는 이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우도 등대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제주대 명예교수 주강현 박사. 사진 중간에 물병을 든 이가 주강현 박사임.
▲ 우도 우도 등대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제주대 명예교수 주강현 박사. 사진 중간에 물병을 든 이가 주강현 박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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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등대 앞에서 주강현 박사는 우리나라의 등대 문화에 대해서 문화해설을 하였다. 초기 등대는 일제가 우리해양을 수탈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당시 등대 관리자들은 전부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칼을 차고 근무를 했어요. 관헌들이었죠. 그만큼 일제는 등대를 전략 시설로 본 것입니다."

우도 제일의 명소인 검멀레 동굴 탐방이 이어졌다. 우도봉 아래에 있는'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옆에 있는 검멀레 해수욕장은 검은빛을 띄는 모래사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검은색의 현무암이 오랜 세월 깎이고 깎여 검은색 모래로 변한 것이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 갯담

탐방단은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로 향했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이라는 갯담을 보기 위해서였다. 갯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는 재래식 어로작업을 말한다. 

바닷가에 빌레(너럭바위)로 둑을 쌓아 놓으면, 밀물 때 밀려 들어온 물고기들이 썰물 때에 못 빠져나가고 그 둑 안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갇힌 물고기를 걷어 들이는 방식이다. 원시적인 어업형태지만 가장 친환경적인 어로 형태가 바로 갯담인 것이다. 

갯담은 재래식 어로방식이다. 제주에서는 갯담을 원담이라고 불렀다. 밀물을 타고 온 물고기들이 갯담(돌)에 막혀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어획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 형태다. 충청지역에서는 독살이라고 불린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
▲ 갯담 갯담은 재래식 어로방식이다. 제주에서는 갯담을 원담이라고 불렀다. 밀물을 타고 온 물고기들이 갯담(돌)에 막혀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어획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 형태다. 충청지역에서는 독살이라고 불린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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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담을 두고 제주에서는 원담이라고 불렀다. 원담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어획됐는데 그 중에서 멸치가 가장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멸치를 '멜'로 부르는데 이 '멜'은 식용 뿐아니라 토지의 거름으로도 쓰였다. 척박한 현무암 토양에 밑거름으로 뿌려진 것이다.

탐방단이 찾은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은 넘실대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자연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인공미였다. 만약 주강현 박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바다쪽에 쌓여진 돌무더기 정도로만 인식했을 것이다. 그만큼 무두망개 갯담과 거기서 이루어진 어로작업은 자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주강현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탐방단은 운이 좋았다. 밀물일 때는 갯담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이든 여행이든 '때'를 잘 맞춰야 하는 것 같다. 밑바닥이 보이는 청정 제주바다 위에 올려진 무두망개 갯담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열대지방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이가 이런 말을 했다.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아요. 뭐 몰디브나, 남태평양 같은데요..."

한 참가자가 갯담 밖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얼핏보면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같다.
▲ 무두망개 갯담 한 참가자가 갯담 밖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얼핏보면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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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작전으로 사라진 곤을동 마을

제주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곤을동 마을이란 곳이 있었다. 이 곤을동 마을은 화북포구 서쪽에 있었는데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았던 곤을동 마을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곤을동 마을이 사라진 날은 제주 4·3사건이 한창이었던 1949년 1월 4일이었다. 그날 오전 무장대와 군인들 간에 교전이 있었는데 무장대 중 한 명이 곤을동 마을 쪽으로 도망을 친 것이다. 곤을동으로 도망 온 무장대는 곤을동 마을 주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인들은 곤을동을 '폭도의 마을'로 지목하고, 주변을 포위한다. 군인들이 마을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학살이 일어났고, 곤을동은 불태워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4·3사건 당시, 군경의 초토화 작전은 중산간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곤을동 마을처럼 해안지역도 초토화 작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워낙 중산간지역의 피해가 커서 그렇지 해안지역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제주 4.3사건 때 군경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곤을동 마을.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돌담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 곤을동 제주 4.3사건 때 군경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곤을동 마을.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돌담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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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만 남아 있는 곤을동 마을을 보고 있자니 폐사지에서나 느껴졌던 황량함이 밀려왔다. 집채는 온데 간데 없고 마당을 둘렀던 돌담들만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마을이 한 순간에 사라질 정도로 곤을동 마을 주민들이 큰 잘못을 한 것일까? 인간의 내면에는 자비심보다 파괴욕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인가?'

다크 투어리즘과 제주도

돌담을 타고 오른 넝쿨들과 마당 자리에 피어난 잡초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운 감정만 들었다. 곤을동 마을 탐방처럼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를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부른다. 다크 투어리즘은 아픈 기억을 가진 지역을 탐방함으로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테마 여행의 한 형태다.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같은 곳을 탐방한다면 다크 투어리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제주도 곳곳이 다 탐방지에 속할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옥쇄 작전,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4·3, 한국전쟁 당시 때 일어난 예비검속 등등...

돌담들이 이 곳이 집 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 중앙의 오른편에는 곤을동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거욱대가 보인다. 곤을동 사건은 1949년 1월 4일 오후 3시경에 발생했다.
▲ 곤을동 돌담들이 이 곳이 집 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 중앙의 오른편에는 곤을동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거욱대가 보인다. 곤을동 사건은 1949년 1월 4일 오후 3시경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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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만 그러겠는가? 육지도 다크 투어리즘 천지다. 5·18, 노근리, 서대문형무소 등등... 동학농민군이 몰살을 당한 공주 우금티도 다크 투어리즘의 최적지일 것이다.

밀물 때는 들어갈 수 없는 구좌읍 세화리 갯것이 할망당(해신당) 방문 등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은 짧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주강현 박사의 입담과 강은정 박사의 꼼꼼함이 잘 결합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더군다나 한 여름 제주의 바다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잠의 림프' 따위가 찾아올 틈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돌아오는 비행기는 창문측에 앉을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떠난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렇게 하여 산 사나이의 제주도 해양문화 나들이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 시내. 용두암 일대가 보인다.
▲ 제주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 시내. 용두암 일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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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이어도해양아카데미, #제주도, #해양문화, #다크투어리즘,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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