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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은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권주자 손학규·김두관은 새누리당 정치 신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당의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국회 입성을 지켜만 봐야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다.

정의당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노회찬이라는 간판선수를 내보냈지만 서울 동작을에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노회찬 후보는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듯했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선거 도중 이뤄지는 후보 단일화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애초 당선 가능성이 낮았던 통합진보당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새정치연합이 권은희 후보를 전략공천한 광주에서 장원섭 후보가 26%라는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남 순천·곡성에서 이성수 후보가 캐스팅보트의 역할에는 못 미쳤고, 수도권에 출마한 후보들은 출마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야권이 '패배'라는 공통된 성적표 속에서도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하면서 이후 '야권의 재편' 또한 혼돈에 빠졌다. 선거 이후 '야권연대'나 '후보단일화'를 넘어선 통합이나 재편 수준의 야권 지형의 변화가 예상되기도 했으나, 현 단계에서는 누구도 섣불리 야권 재편을 말하기 어렵게 됐다.

상처만 남긴 서울 동작을 후보단일화

7·30 재보궐 선거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낙선한 노회찬 정의당 야권단일 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선거사무실에서 취재기자들에게 소회를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고개 숙여 인사하는 노회찬 후보 7·30 재보궐 선거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낙선한 노회찬 정의당 야권단일 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선거사무실에서 취재기자들에게 소회를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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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보궐선거 이후 야권의 재편 가능성은 서울 동작을 지역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제기됐다.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와 노회찬 정의당 후보는 사전투표를 앞두고 극적으로 단일화를 이루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선거 공학적인 후보단일화가 아닌, 향후 정치적 행보를 함께하겠다는 뜻이었다.

노 후보는 지난 24일 기 후보의 사퇴를 놓고 "기 후보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가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있는 국민들에게 새 희망을 발견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라면서 "앞으로 더 먼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벗이 되길 강력히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후보단일화'를 넘어서 사실상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제안한 것이다.

이에 기 후보 역시 "노 후보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삶의 궤적이 다르지 않은데, 경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라면서 "저의 행동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큰 반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단일화만이 아니라 야권의 혁신과 통합으로 가는 단초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두 후보의 발언은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립서비스'로 볼 수도 있었지만, 실제 노 후보의 승리로 이어질 경우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수 있었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당의 후보를 잃은 문제에 명분을 세울 수 있었고, 정의당 역시 존재감을 알리며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결과는 929표 차 노 후보의 석패였다. 희망적이었던 전망이 180도 달라지는 순간이다.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이 전략공천한 후보를 지키지도 못하고, 무능력하다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고, 정의당 역시 '후보단일화'에 매달리며 진보정당으로서 '자립성'을 잃은 모습만 남겼을 뿐이다.

특히 같은 지역에서 김종철 노동당 후보가 1076표를 기록해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했다는 게 노 후보에게는 뼈아픈 결과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의 분열, 또다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의 분열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분열의 역사가 고스란히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참패에 휘청거리는 '야권 재편'

7·30 재보궐 선거가 실시된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회찬 정의당 야권단일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초반 개표방송에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에 뒤지자,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긴장감 도는 노회찬 선거캠프 7·30 재보궐 선거가 실시된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회찬 정의당 야권단일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초반 개표방송에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에 뒤지자,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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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감지됐던 야권 통합의 목소리도 힘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장 야권 재편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라면서 "최소 6개 지역에서는 승리할 것이라 예상해는데, 당이 너무 큰 참패를 당해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차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전 야권 재편과 관련해 "2016년 총선에서는 더 이상 단일화 얘기를 할 수 없다, 이념과 정치성향을 보장해주고 (정의당과) 합당을 해야 한다"라며 통합을 강조했었다. 그는 "심상정·노회찬 같은 경우는 현재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의당 역시 쉽사리 야권의 재편을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지속적으로 당 대 당 단일화 협상을 요구하며 독자성을 상실했다. 거기에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의 양보로 단일화가 성사되고도 패배하면서 여야 양당 구조 속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에도 상처를 입었다.

정의당의 핵심 관계자는 "김종철 노동당 후보와 2차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새정치연합과 한 단순한 단일화의 한계라고 생각한다"라며 "노 후보가 승리했다면 정의당이 주도하는 야권 재편이 가능했을 텐데, 당의 인물을 내놓고도 이기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야권 재편 논의는 각 정당의 내부가 수습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도부의 거취 문제와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혼란이 정리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오는 2016년 총선까지 큰 선거가 없어 야권 재편 논의 자체가 상당히 뒤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재보선 결과는 진보정당들에 가장 중요한 숙제를 남겼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가?'라는 고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도 정의당과 합당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왔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후 진보정당들이 이러한 고민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야권 재편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사이의 야권 재편 논의가 어려워진 가운데 내란음모 사건과 정당해산 심판 청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계속 독자적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유선희 후보가 진보정당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지만, 중앙당 차원의 전략이었다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당 지도부는 순천·곡성과 광주 광산을 선거에 집중했다.

진보당 관계자는 "광주에서 장원섭 후보의 당선을 기대했지만,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라면서 "그래도 유의미한 득표로 새누리당의 종북몰이에 동조하며 야권의 연대를 외면했던 새정치연합을 충분히 심판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당은 앞으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응하면서, 제대로 된 야당으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보궐선거, #노회찬, #기동민, #새정치연합,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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