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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영세한 홍보대행업체에서 근무했던 20대 후반의 여성 지인이 한 명 있다. 그녀는 최근 1년을 겨우 채우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른 조건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다니던 회사의 직원이라고는 그녀 한 명 뿐이었다. 사장 입장에서는 하나뿐인 직원이기에 직원 관리하는 것에 그리 애를 먹을 것도 없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며 즐겁게 일하면 좋을 텐데 왜 그녀는 그만둔다고 한걸까?

그녀는 사장으로부터 느끼는 모멸감이 너무 심해 당장 때려치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 회사는 기자가 사적인 업무와 관련해서 종종 들리던 영세업체였다. 때문에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접해봤기에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아직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순진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장은 툭하면 '멍청하다'느니 '그런 것도 모른다'라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고, 말투에서도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는 끈적끈적한 불쾌감이 묻어났다. 기자가 자리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방비로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다 민망하고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지나치게 야단을 치는 모습도 종종 목격했다. 대학까지 나온 혈기왕성한 젊은이인데 또 일을 못하면 얼마나 못하랴? 차분히 의견을 조율해가고 알려주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 사회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니까 인격 모독을 받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녀에게 '너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어, 그 사장의 인격이 문제지'라고 말하며 어서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 그렇게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곳에선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계발하기 어렵다는 말도 해주었다. 내 말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아무튼 그녀는 곧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사례2#
이사 하는 지인을 도와주기 위해 주말에 이삿집을 나른 적이 있다. 가족과 간촐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지인도 막상 견적을 내보니 생각보다 엄청나서 결국 이 지역의 영세포장이사업체를 불렀다.

지역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이사업체다보니 직원이라고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두고 사장과 그 아내 둘이서 함께 자잘한 업무까지 처리하는 1인 기업 형태였다. 이사짐센터 일이라는 게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지역에서 17년간 소규모 이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사장과 이런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사장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독점하니까 나 같은 서민이 세상 살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열심히 살수록 더욱 어려워진다"며 사회를 향해 분노하고 억울해 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은 결국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아르바이트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서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중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개인 가정의 이삿짐을 옮기는 일이라 일의 대중이 없어 점심도 거루기 일쑤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사짐센터 일은 '3D 업종' 중에도 가장 힘든 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육체적으로 꽤 고되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을 향한 사장의 폭언과 인격모독이 너무 심했다. 그 학생이 왜 그리 욕을 먹어야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괜히 뺀질뺀질 눈치나 보는 인상의 청년도 아니었다. 그는 하루종일 고된 노동일을 잠시도 쉬지 않고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툭하면 폭언을 내뱉었고 바보 취급을 했다.

사장은 그를 고용하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할 권리까지 부여받았다고 믿는 걸까? 잘못된 사회 구조로 인해 생긴 내적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하는 모습. 그는 분노의 표적을 잘못 인식한 것이다.

영화 <플랜맨>의 한 장면. 주인공은 어린 시절 사람들로 인해 생긴 외상으로 심각한 강박장애를 지니게 된 인물이다.
 영화 <플랜맨>의 한 장면. 주인공은 어린 시절 사람들로 인해 생긴 외상으로 심각한 강박장애를 지니게 된 인물이다.
ⓒ 영화 <플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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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약자가 자신보다 더한 약자에게 폭력을 행하는 행태를 우리는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수평 폭력이다. 프란츠 파농에 따르면 수평 폭력이란 자신이 당한 사회적인 억압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그 근원과 제도를 찾아 고치려고 하기보다, 자신보다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라고 한다.

위계화된 권위주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이나 삶이 짓밟히더라도, 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폭력 행사에 용이한 약한 자에게 폭력적이 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법적인 제한으로 폭력이 항상 물리적인 형태으로만 표출되기는 어렵기에 모멸과 멸시라는 감정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수평 폭력이 꽤 심한 사회 중 하나다. 인문학자 김우창은 한국 사회에 돋보기를 댄 자신의 저서 <정치와 삶의 세계>란 책에서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값어치는, 권력과 부와 지위에 의해 정해진다. 오만과 모멸의 구조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멸시하고 조롱하는 심성이 사회적 관성으로 고착된 것"이라고 한국 사회를 분석했다.

사회의 상대적 약자가 자신보다 약자에게 인격 모독(폭력)을 가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텔레비젼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는 대부분 외모다. 신체적 약자의 외모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은 웃는다.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관련기사: 욕하고 소리지는 상사, 이렇게 대처하세요) 학비를 벌겠다며 고생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일터에서 인격 모독을 당하며 손쉽게 해고된다. (관련기사:과자 먹다 알바 잘린 얘기 들어보실래요? ) 평범한 이웃들은 세월호 유족을 헐뜯는다. (관련기사: 세월호 유족 헐뜯는 이웃들, 이유가 섬뜻하다.) 직장인의 27.7%는 상사에게 인격 모독을 당해 울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작년 12월, 고용노동부 취업포탈 워크넷이 남녀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박봉의 감정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비인격적 대우는 또 어떤가.

왜 우리 사회는 품격있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비열한 사회가 되었을까?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의분을 지닌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사회다. 야비한 사회에 저항하기 보다 우리들은 그냥 사디스트(타인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되기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인문학 유명작가이자 <분노사회>의 저자인 정지우씨는 기자와 나눈 이메일에서 그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수평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불합리하게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 있어요. 어느 사회에서든 사회적 강자와 약자는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이 공정하고 정당했다면 상대적 약자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폭력과 같은 극단적 행위를 표출할 가능성이 적어지요.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보다는, 부당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연고주의를 통한 사회적 진출이 횡횡하면서 상대적 약자들의 불만이 커지게 된 것이죠."

그럼 왜 사람들은 사회의 잘못된 구조 자체에 분노를 표출해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폭력의 피학과 가학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수평 폭력의 핵심은 이 부분에 있어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심리구조 혹은 의식구조는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경우 합리적 의사소통 구조가 자리잡기 전에 식민지배에서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적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폭력을 내재화하게 되었죠.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구조 안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한 명의 보편적이고 동등한 '개인'으로 보기 보다는 특정 위계나 사회적 역할망에 의해 규정된 존재로 바라보게 되지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정 역시 위계적 관계망의 위치 속에서 찾게 됩니다. "

사회적 주체로 취급 받지 못하고, 항상 객체로 취급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내재화된 분노를 약자에게 푼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인간으로 존중받기 보다는 평가받고 재단 받는 삶을 살아온 사람은 내재화된 분노를 풀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게"되고 그 결과 "그는 항상 자기에게 용인된 폭력을 즉각적으로 행사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신보다 약자에 대한 수평 폭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폭력을 내면화해 나가면서 스스로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간다고 한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또다시 폭력적인 가정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듯. 형사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어린 시절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은 이유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라고 부른다.

위 사례에서 언급한 청년들도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그들도 언젠가는 내면화된 폭력성의 이빨이 어느 순간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향해 드러날지 모른다. 이렇게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잉태한다. 폭력의 해악은 이 뿐만이 아니다. 폭력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기비하의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한 사람의 정신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이 폭력의 악마적 속성이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다.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다. <올드 보이>나 <디스커넥트> 같은 영화에서 잘 묘사했듯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세상에 대한 증오 또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억울하게 수모를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다른 집단에 대한 맹렬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찬호,<모멸감>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폭력으로 인한 외상의 무력감으로 사회를 향한 적개심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그 때문에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

정 작가는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국가 폭력 문제만 이슈로 부각되다 보니 선진국처럼 일상의 폭력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대안 연구가 아직 미미하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사회적폭력, #공동체, #분노사회 정지우, #세월호,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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