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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31일 오전 1시 23분]


단원고 O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세월호에서 탈출 이후 안산 고대 병원으로 왔다. 병원 욕실에서 그는 소금기를 씻기 위해 물을 틀었다. 물이 쏟아지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정신적 충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같은 방에 있던 친구들 중 혼자 살아남았다.

"살 것이라고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그는 선장과 선원들의 처벌에 대한 질문을 받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도 그냥 핸드폰만 보는 그런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며 "내 친구들의 이유 없는 죽음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는 공부는 생각도 없고 운동도 못해서…정말…그냥…선생님이 해경이 왔다며 버티라고 했다"며 O학생은 증언을 이어갔다.

"그런데 운동 잘하는 친구들은 전부 없고…나만…그렇게 살아왔다. 정말 선장, 선원들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다음은 O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배 밖으로 나왔을 때, 배는 이미 잠겨 있었다"

[검찰 측 신문]

"원래는 B-18번방이었다. 근데 친하지 않은 애들이 많아서 B-5번방으로 옮겼다. 잠도 거기서 잤다. 그날엔 아침 먹고 올라와서 머리를 감았다. 씻고, 다시 방으로 와서 놀고 있었는데 배가 1, 2초 기울다가 확 기울었다. 방에는 갖고 온 여행 가방이 전부 다 기울어진 쪽으로 쏠렸다. 다른 방에서는 물건 깨지는 소리 들렸다. 쿵하는 소리는 없었고 우리는 기울어진 쪽에 있어서 밖에는 물밖에 안 보였다."

"친구들끼리 비상사태라고 하면서 내가 그때 방에서 제일 맨 밑에 있어서 구명조끼를 다 꺼내서 던져줬다. 그 후에 문밖으로 나와서 서 있었다. 기울고 1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애들이 전부 나와서 벽에 기댈 때에야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 나왔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했다."

"처음에 레크리에이션룸 쪽에 있던 애들이 배가 기울자마자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좌현 갑판 쪽에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레크리에이션룸 앞에는 비어 있고, 떨어진 애들은 잡을 게 없어서 올라올 수 없었다. 체육선생님인가가 계셔서 그 선생님이 앞에 있는 애들을 레크리에이션룸 벽까지 오도록 해줬다.

좌현 창문이 깨져서 물이 빨리 들어왔다. 출입문 쪽에는 일반인 2명이랑 애들이 있었는데 애들도 구명조끼 입어서 물 타고 올라오는데,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정말 빨리 물이 찼다. 물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고 선생님이 올라갈 준비하라고 했을 때 이미 허벅지쯤 찼다.

여자애들 방으로 가는 통로, F-7번방 쪽에는 물이 없다가 그쪽으로 물이 들어갔다. 벽을 타고 올라와 그 근처에 있는데 수압이 세서 문에 다리가 걸렸다. 그 통로에 여자 2-3명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가만히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다른 애가 물에 뛰어내리라고 해서 나도 덩달아 말했다. 근데 그 말을 했는데도 물이 진짜 빨리 차서 통로에 있던 여자애들은 못 나왔다.

그 때 나는 발이 끼었는데 어느 정도 물이 차서 그런지 느슨해졌다. 그래서 계속 우현 쪽으로 올라왔다. 거기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중앙 계단 옆쪽에)에 15~16명이 빠졌다. 나는 근처 봉에 걸려서 못 가고 있었다. 속으로 막 욕했는데, 또 물이 차서 그런지 느슨해져서 우현으로 올라왔다. S-6번방 쪽 통로에는 물이 별로 안 들어가 있었다.

그쯤에 정신 차려보니까 내 주위에는 두세 명 밖에 없었다. 우현 갑판 출입문까지 오니까 소방호스가 연결돼 있어서 그걸 타고 갑판 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때엔 배 모양은 안 보이고, 단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잠겼다. 우리가 그냥 땅을 밟고 있는 것처럼, 배 벽을 밟고만 있었다."

"(처음에 대기할 때) 뭐라도 잡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기울어지는 반대쪽으로 올라가면 그나마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근데 방송에선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선생님들은 그 말 때문에 우리를 계속 통제했다. 한 명이 장난처럼 움직였다가 엄청 (친구들한테) 야유를 받아서 아무도 움직일 생각 못했다."

"사고 첫날에는 좀 힘들었다. 첫날에 우리가 이제 막 바다에서 탈출하고 바다 소금기 때문에 씻어야 했다. 병원에서 있다가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는데 머리 감을 때 물이 쏟아지는 순간…숨이 턱 막혔다. 정말 힘들었다."

"선원들이 처벌 받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이 왜 아무 이유 없이 진짜… 나는 13명 중에 혼자만 나왔다. 지금도 그냥 핸드폰만 보는 그런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내 친구들이 아무 이유없이 죽은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난감한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면서) 내가 살 거라고 딱히 기대도 안 했다. 나는 공부는 생각도 없고 운동도 못해서.. 정말... 그냥.. 선생님이 해경이 왔다고 하면서 버티라고 했는데 해경은 도무지 구해줄 생각도 없고 그냥 물이 차오를 때까지만 대기했다. 근데 운동 잘하는 친구들은 전부 없고…나만…그렇게 살아왔다. 정말 선장, 선원들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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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소리는 났지만 구해주진 않았다."

[변호인 측 신문]

"미술선생님이 학생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다른 애들이 야유 보내니까 선생님이 조금 큰 소리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선생님도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움직이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학생을) 혼냈다."

"해경이 구해줄 생각이 없었다고 한 이유는…처음에 체육 선생님이 '해경 왔다, 안심해라'고 했다. 그 말 끝나고 1, 2분 정도 뒤에 헬기 소리 들렸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살았다'고 생각하고 친구랑 수다 떨고 있는데 거기서 10, 20분 정도 대기를 더 탔다. 근데 물이 차는 게 보이는데도 우리는 계속 대기 타고 기다렸다. 맨 위에 애들부터 구조해주나 했는데 거기 그대로 있었다. 헬기 소리는 났지만 구해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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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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