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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휴가' 심경을 담은 박근혜 대통령 SNS 글.

'방콕 휴가' 심경을 담은 박근혜 대통령 SNS 글. ⓒ 박근혜SNS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를 떠났다. 이른바 '방콕 휴가'라고 한다.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여름휴가만큼은 꼭 챙겨야 했나 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인사 참사'까지 겹쳤으니, 대통령도 사람이라면 심신이 피로했으리라. 이를 방증하듯,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오전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힘들고 길었던 시간들...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동안 남아있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더운 여름,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라면서..."

시가 따로 없다. 한편으로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임기 첫 해 '반쪽 휴가'를 보낸 것을 제외하고 매해 꼬박꼬박 여름휴가를 즐겼다고 하니, 이 얼마나 배 아플 노릇인가. 그러나 너무 자괴감에 빠지지 마시길. 노무현 전 대통령은 5년 중 3번이나 관저 내 '방콕 휴가'에 만족해야 했으니. 심지어 1996년 청남대로 휴가를 떠났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경기 집중 호우로 인해 휴가 기간 중 청와대로 복귀한 바 있다.

한데, 여유로움이 없다고 비감어린 글을 올리다니... 대통령이 참으로 한가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이 와중에 29일 새정치민주연합은 키와 치아를 이유로,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 회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인사 참사의 여파도 여전하다. 차기 문화관광부 장관도 아직 지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특별법이 표류하면서 유가족들이 2주 넘게 단식 중이다. 대통령의 결단이 강력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응답하라 1994'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지존파.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지존파. ⓒ 영화사진진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 때 책을 읽곤 했다.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책이 아닌, 영화 한 편 추천하고자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바로 그 영화다. 청와대 코앞에 있는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극장을 찾기 힘들다면 비서진이 영화사에 문의하면 될 일이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바로 대통령의 '결단'에 각성효과를 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기 때문이다.

1994년 9월 12일,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일당 7명이 1993년 7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했다. 부자를 죽여 10억을 모으겠다던 철부지 살인마들.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은 서민들이었다. 한국사회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고 난리였다. 한쪽에선 압구정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강남부자들이 수면위로 떠올랐고,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빈부격차를 인식하던 때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강북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 상판 49m가 재난영화처럼 무너져 내렸다. 버스를 포함해 6대 이상의 차량이 추락했고, 여고생을 포함해 9명이 사망했다. 당시 서울시장이 경질됐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리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지존파를 검거했으며, <논픽션 다이어리>의 주연격인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장도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피해자들이) 살려달라고 하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하던 그 지옥도와도 같았던 초유의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사망자 502명에, 부상자 937명, 실종 6명, 피해액 총 2700여억 원이란 기록적인 수치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쉽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리고 넉 달여 후인 11월 2일, 지존파 6명 전원에게 이례적으로 신속한 사형 집행이 내려졌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시종일관 이 지존파 사건을 기둥 삼아 1990년대의 한국사회에 냉철하고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신랄하다 못해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20대 지존파 청년들은 과연 악마인가. 그들을 악마로 만든 언론과 사법 당국, 그리고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한 정권은 누구로부터 그 정당성을 부여받았는가.

지존파의 살인과 지존파를 죽인 사법적 살인, 그리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으로 이어진 사회적 타살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가 말이다. 5년간 관련 자료 찾고, 인물들을 인터뷰했다는 정윤석 감독의 시선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버금가는 서늘함으로 우리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고스란히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2014년의 박근혜 대통령에게로 향하게 된다. 역사는 순환되고 반복되는 법이라지만, 1994년의 김영삼 대통령이 보여줬던 기이한 결단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에.

20년 전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다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삼풍백화점 참사를 담은 모습.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삼풍백화점 참사를 담은 모습. ⓒ 영화사진진


정윤석 감독은 영화 말미, 대북관계에서 헛발질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회 통합을 이유로 지존파에 대한 사형집행을 단행했다고 넌지시 결론 맺는다. 사회 통합과 국가 개조, 꽤나 닮아 있다. 물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사고는 정부 당국의 책임보다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대에 막 도입되던 '한국형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더 닿아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사람보다 돈을,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했던 삼풍의 과거와 세월호의 현재가 어디 크게 달라 보이는가.

"지존파를 동경했지만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 구원이란 이름 아래 그들의 죄를 대신 용서 하려 했던 자들, 그들 때문에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들, 이 영화는 이 모두를 호출하고 있다."

정윤석 감독의 이 연출의 변에 세월호 참사나 유병언 회장을 대체하면 어떤가. '동경'을 제외한다면, 세월호 트라우마 속에 살아야 하는 유가족과 국민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역으로 이용하거나 빨리 잊으려는 이들로 치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포스터.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포스터. ⓒ 영화사진진

그때나 지금이나 자극적인 보도에 매달리는 언론, 책임을 전가하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실천하는 정부당국과 사법당국, 그리고 이 모든 소용돌이를 끝내려는 대통령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논픽션 다이어리>는 20여년 전 역사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는 깨끗한 거울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중이다.

야당과 일부에선 "대통령이 세월호 비극을 남 일처럼 대한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말들도 참 많다. 부디 기왕 떠난 휴가, 박근혜 대통령이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갖길 바란다. 그래서 이 소용돌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단 하나의 결단이라도 내오기를.

물론, 20여 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존파에 대해서 내렸던 결단과는 정반대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야당의 공세를 보란 듯이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그 결단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단적인 조치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현재 한국사회가 <논픽션 다이어리> 속 그것과 결코 같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방콕 휴가'의 값진 '셀프 선물'이 되지 않겠는가.

논픽션다이어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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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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