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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1일 오전 12시 47분]

29일 안산 단원고 세월호 생존 학생 법정 증언 이틀째. 전날에 이어 7번째로 증언에 나선 G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G학생의 숙소는 세월호 4층 중앙 좌현 쪽인 B-20번방이었고, 사고 당시에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탈출 경로를 보면 좌현 복도에서 우현 복도까지는 성인 승객들이 내려준 커튼 줄을 잡고 올라갔고, 우현 복도에서 갑판까지는 위에서 내려준 호스를 잡고 올라갔다. 그의 탈출 양상은 전날 마지막 증인 F학생과 거의 같다.

갑판 위로 올라온 후에도 계단, 난간 밖 등 계속 위쪽으로 올라가서 대기했다는 그는 그곳에서 해경과 같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해경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계단 쪽에서 같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냥 아무 말 없이"라고 말했다. 당시 몇몇 성인 승객들은 죽을힘을 다해 학생들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G학생은 방에서 나와 좌현 복도에서 서 있을 때 의사자로 지정된 고 박지영씨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지영씨가) 선원 전용 통로에서 나와서 벽에 부딪히고 난 다음에 우리한테 '구명조끼 입었냐'고 묻고선 (4층 로비 쪽으로 가다가 좌현 쪽으로) 다시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밑으로 갑자기 훅 하고 떨어졌다"며 "많이 다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G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헬기 타러 올라갈 자신 있는 사람만 손들고 나갔다"

[검찰 측 신문]

"4월 16일 아침에 밥을 먹고 나서 복도에 나갔다가 갑판 위에 올라갔다가 다시 방으로 와서 잤다. 배가 기울 때는 방 안에 있었다. 그때 캐비닛이 다 넘어져 애들이 놀라서 뛰쳐나갔다. 나는 캐비닛을 밟고 애들이 끌어올려주고 해서 방에서 나왔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하얀 옷 입은 사람이 막 신고하라면서 소리치고 다녔다. (고 양대홍 사무장 사진을 본 다음) 아니다. 젊은 사람이었다. 얼굴은 자세히 기억 안 난다. 승무원인지 일반인인지는 잘 구별 못 하겠다."

"박지영 언니는 "(F-7번방 앞) 선원 전용 통로에서 나와서 벽에 부딪히고 난 다음에 우리한테 '구명조끼 입었냐'고 묻고선 다시 (중앙 로비 쪽으로) 떨어졌다. 그 언니가 박지영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당시에는 승무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언니는 굴러 떨어진 이후로는 안 보였다.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저희는 박지영 언니가 떨어지고 나서 멍하니 있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안내방송에서는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하고, 한참 뒤에 구명조끼 입었는데 그때서야 (방송에서) '구명조끼 입으라'고 했다. 또 잡'을 수 있으면 아무거나 잡으라'고 하고, 또 '10분 뒤에 헬기 도착하니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구명조끼는 방송이 나오기 전에 한 남자애가 와서 방마다 하나씩 꺼내줬다. 그리고선 복도에 있는데 친구들이 '헬기 탈 거니까 올라갈 자신 있는 사람만 올라가자'고 했다. 그래서 손을 들었고, 손 든 사람만 한 명씩 나갔다. 구명조끼를 꺼내준 남자애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얘기해줬다.

"B-20번방에선 친구들 두세 명이랑 같이 올라왔다. 다 셀 수는 없는데, 그때 B-23번방~S-5번방(4층 중앙 좌현 복도)에는 저희 반 인원 정도 되는 애들이 대기 중이었다."

"B-20번방에서 복도 끝 B-22번방까지는 그냥 바닥을 밟고 걸어갔고, 맞은 편(우현) B-28번방까지는 벽에 있는 안전바를 잡고 올라갔다. 커튼 엮은 걸 허리에 둘러맨 다음 위에서 올려주고. 도와준 사람이 누군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승객이었던 것 같다. 갑판으로 올라갈 때에는 일반인이 끌어올려줬다."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 사진을 본 다음) 이 분은 아니고 외국인이었다. 초록색 줄을 내려줬다. (사진 속) 김동수씨 뒤에 모자 쓴 아저씨다(기자 주 - G학생이 가리킨 사람은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승객 김홍경씨로 추측된다. 외국인이라는 진술은 착각으로 보인다)."

"우현 갑판에서 한참 대기하다가 계단에 올라갔고, 또 호스 있는 곳에서 대기하다가 계단에 올라가 있었다. 난간 밖으로 올라가서 또 창문 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저 계단 쪽에서 해경이 같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방청석에서 한숨). 그냥 아무 말 없이."

"(사고 당시가) 생각나는 건 당연한데,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다. 선원들의 처벌을 원한다."

"높은 곳에서 같이 대기하던 해경은 갑자기 사라졌다"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화상장치가 연결된 법정이 공개되고 있다.
▲ 세월호 생존 학생 증언 위한 법정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화상장치가 연결된 법정이 공개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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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측 신문]

"박지영 언니를 본 시간은 잘 모르겠는데 방송이 한 수십 차례 나온 후인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났던 때였다. 언니는 그냥 밑으로 갑자기 훅하고 떨어졌다. 많이 다쳤을 수도 있다."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색 옷 입은 사람도 봤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랑 박지영 언니랑은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B-23번방 옆에 있는 좌현 갑판 쪽 출입문으로는 절대 못 나간다. 물이 차고 거기로 나가면 바다였다. 창문이 거의 잠겼고 바다가 가까웠다."

"해경하고는 (우현 갑판의) 초록색 계단에 있을 때, 같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래쪽에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는 안했다. 해경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경이랑 얘기해 본 적도 없고 같이 대기만 했다. 해경이 물어본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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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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