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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기 전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였어요? 점수가 어땠어요?"

미국 유학을 준비중인 친구들에게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영어 점수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점수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고 싶다. 이 점수라는 게 참 '간사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점수는 입시생들을 현혹시킨다. 입시경쟁은 학생들이 본래의 목적을 잃고 단순한 숫자를 목표로 삼게 만든다.

'어떻게 이 숫자 따위가 학생들의 목표가 되는 것인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점수라는 것은 그저 통계를 위한 데이터가 아닌가?'

참 뻔하고 새삼스런 질문이다. 그러나 이왕 질문을 던졌으니 이에 대한 아주 상투적이고 진부한 답을 덧붙이겠다.

그렇다. 점수가 다가 아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진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중 '기회'라는 녀석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그 녀석을 "옳다쿠나!" 낚아채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로 생각하며 갈고 닦아야 한다. 

"읭… 옆집 개가 짖나? 왕왕!"

사실은 이게 바로 내가 방금 했던 저런 종류의 영어 공부에 대한 이상적인 말을 들었을 때 나의 태도였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준비하면서 나도 자기계발서부터 온갖 종류의 공부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모두 참 좋은 말들이었지만 절대, 죽어도 와 닿지 않았다. 책을 덮고 나는 생각했다.

'하, 공자님이 울고 가실 법한 진리들이군. 너무나 옳은 말들이야. 그래서, 내가 받아야 하는 점수가 몇 점이라고?'

그러던 나였기 때문에 점수는 통계일 뿐이라거나 영어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공부하라거나 하는 이상적인 말을 하는 게 어찌보면 참 웃기다. 하지만 그 뜬구름같던 조언들을 나 역시도 서론에서 장황하게 한 이유는, 그 말들이 대학 입학 후 처절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전공 공부를 하면서 튜터(교수)님, 친구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은데 목표 점수만을 위해서 공부한 내 영어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목표 삼아야 했던 것은 이런 곳에서 원하는 공부하는 내 모습이었다.

그렇게 더 큰 시야로 내 꿈을 바라 볼 수 있었다면 대학에서 요구하는 점수는 물론이고 진짜 내 꿈을 위한 공부를 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렇게 진부한 말을 나 역시도 하고 또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정말로 본격적으로 어떻게 그 실력으로 학교 공부를 했는지 이야기해야겠다. 세인트 존스 대학은 (매 기사마다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고전 원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이 수업 내용의 전부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세인트 존스의 고전 원서 토론 커리큘럼에 관한 읽기(Reading) 공부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고전을 읽으며 고전을 면치 못하다

책을 읽고 있지용
▲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지용
ⓒ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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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100% 토론 방식이다. 즉, 수업을 위해선 예습 차원이 아니라 '무조건' 정해진 분량의 리딩(책읽기)을 해야만 한다. 나의 고난은 당연히 이 리딩부터 시작됐다. 첫 수업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Physics)>의 일부분과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어했다. 또다시 '이게 뭔 옆집 멍멍이 소리다냐?'였다.

내가 까막눈이 된 것인가 할 정도로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잉크'였다. 물론 한 줄 한 줄 사전 두드려가며 단어를 찾고, 문법 따져가며 읽고 있으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 번의 수업당 몇십 장은 기본, 특히나 (다른 수업보다 수업시간이 긴) 세미나의 경우 많을 때는 심지어 몇백 장의 분량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무조건, 잠을 안 자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야 해! 독한 자들은 이런 것도 해낼 것이다!'고 마음 먹었지만 잠을 안 자고 공부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종일 공부만 할 수 있으랴.

그러다 보니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수업준비는 언제나 끝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수업에 읽어가야 할 분량을 다 읽지 못하고 가는 일이 계속됐다. 다른 원어민 친구들은 어쩌다가 리딩을 못 끝내고 수업에 갔지만 나는 아주 어쩌다가 운좋게 리딩을 끝내고 가는 식이었다. 그렇게 리딩을 다 못 끝내고 수업에 가면 문제가 무엇이냐. 당연히 토론 준비가 덜 돼있으니 참여는커녕 이해하기도 힘들다.

즉 내 문제를 단계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1) 고전은 원래 어려워 읽어도 뭔 말인지를 모르겠다.
(2) 한국말로도 모를 판에 영어로 읽어야 하니,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자신이 없다.
(3) 난 읽는 속도도 느린데 분량이 많아 다 읽지 못하니 수업을 못 따라가겠다.

결론은? 게임 오버다. 고전과 영어의 어려움에 더해 책을 다 읽지 못한 어려움까지. 이런 어려움들에 직면했을 때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밤잠 안 자고 책을 다 읽었더라도 내가 읽은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고전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했다.  대체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피할 수 없으면 잔머리를 굴려라

답은 간단했다. 그냥 극복하지 않았다(하하). 물론 뛰어난 사람들은 독기와 코피 나는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겠지만, 난 이미 말했다시피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 방법은 '잔머리 굴리기'였다(하하). 어떻게 잔머리를 썼는지는 다음과 같다. 위에 언급했던 세 문제를 거꾸로 살피겠다.

우선 세 번째 문제는 영어 읽는 속도가 느린 데다 읽어야 할 범위는 많았기 때문에 내가 매번 책 읽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수업엘 들어가는 것이다. 이건 아주 큰 문제였다. 어렵지만 배울 것이 많은 고전을 읽고 온 학생들은 수업시간마다 이해하려 머리 맞대고 노력한다. 내 영어 실력 때문에 그걸 그대로 놓치고 있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용을 알고 수업에 가고 싶었다. 내용을 알면 토론을 따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독 능력은 며칠 공부한다고 확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한국 책을 샀다. 한국 책은 확실히 영어보다 훨씬 빠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분량을 한국말로 먼저 읽고 나면 영어로 다시 읽었다.

몇백 페이지씩 읽어야 할 때는 한국 책만 읽고 수업 가기도 바빴다. 그런 때도 어떻게든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리딩을 끝내고 중요한 챕터들만 대충이라도 영어 책을 훑어봤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은 밑줄을 좍좍 그어 놨다가 영어로 어떻게 쓰여 있는지 분석해보며 비교했다. 특히 철학책은 영어가 오히려 더 간단명료하기도 했다.

나처럼 영어가 제2외국어인 친구들 중에는 죽어도 모국어로 된 책을 읽지 않고 영어로 끈질긴 싸움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처음에는 진짜 고생하지만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런 친구들, 정말 참 존경스럽다. 근데 난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내 방식대로 했다(하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업의 한국말 교재를 다 살 수는 없었다. 한국말로 번역이 안 되어 있는 책도 많을 뿐더러 그렇게 사려면 돈도 많이 든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또 머리를 굴린 것은(이놈의 잔머리…) 다른 수업들은 그냥 되든 안 되든 영어로 읽으며 나도 영어와의 싸움을 조금 하고,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 특히 세미나에서 몇 번의 수업에 걸쳐 비중 있게 다루는 어려운 책들 몇 권은 어떻게든 한국말로 된 책을 구입해 확실히 읽고 수업에 갔다.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랄랄라~

저녁 7시 반, 세미나실로 향합니당
▲ 해가 지는 저녁 7시 반, 세미나실로 향합니당
ⓒ The Johnnie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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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 번째 문제는 해결을 했는데 두 번째와 첫 번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됐다. 이 문제들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너도 나도 뭔 말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즉, 심지어 영어가 안 돼서 리딩을 다 못하고 온 영희도, 다 읽어 갈 수는 있지만 자신이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철수도, 영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책 자체가 어려워 이해를 못하는 피터도, 심지어 영어도 문제 없고 똑똑해서 자기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온 다니엘까지도, 모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수업에 온다는 것이 바로 공통점이었다. 웃기지만 얼마나 다행인 공통점인가!

이렇게 모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모인 수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 같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을 읽었는데 "아, 모르겠어"하고 끝내면 정말로 끝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었는데 (언어의 문제 때문이든, 책 내용이 어려워서든) 그것에 대해 잘 모르겠고 자신이 없으면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지,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없는지 체크를 해놓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수업에 가서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을 부탁할 수도 있고, "이 부분이 이렇다는 거야?"하고 내 의견을 확인해 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잘못 읽은 거라면 다른 이들의 의견과 조언을 듣고 받아들이면 되고, 그저 의견차이일 뿐이라면 그걸 가지고 토론하면 된다. 

따라서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모든 수업의 핵심이었고 이게 바로 전 기사(관련 기사 : 유학 후 첫 영어토론수업 '멘붕'... 이렇게 극복했다)에서도 말했던, 영어를 배우는 데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는 법"과도 관계가 있는 소통의 태도다.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려는 욕심이 있어야만 내가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집요한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말 책을 먼저 읽는 잔머리를 굴렸던 것도 사실 이 핵심을 위해서였다. 아예 언어가 안 돼서 내가 모르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되면 답이 없고 아무도 도움을 줄 수가 없지만 그 단계만 벗어나면, 배움을 얻는 토론이 시작될 수 있다. 

이게 사실은 별거 없는 나의 영어 고전 원서 공부법이다. 이런 식으로 4년을 하다 보니 조금은 철학책들의 문투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으헉, 이게 뭔말이래!"하고 겁부터 먹었다면 지금은 "이게 이렇다는 건가? 랄랄라~"하면서 마음대로 착각한 내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게 내놓은 해석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보면 어쩔 때는 그 해석이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또는 내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내 맘대로 해석한 이유로 틀리기도 한다.

그렇게 틀렸다는 것이 발견되면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또 어쩔 때는 나의 (원어민보다 떨어지는) 영어 실력 덕분에 내가 그 친구들보다 더 주의 깊게 읽어서 내 해석이 더 정확하기도 하는 그런 즐거운 일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4년간 영어 고전을 읽으면 고전 원서 읽기가 껌 같아야 할 것 아닌가?하고 의아하실 수도 있는데 솔직히 난 지금도 철학 원서를 읽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열정의 폭죽을 터뜨리며 '오로지 영어로만!'을 고집한 그런 친구들처럼 공부했다면 학교를 졸업한 지금쯤엔 영어 고전 읽기가 껌 같을까? 그 또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내 맞춤형 고전 공부 방법이 마음에 든다.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매 수업을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결국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렇게 여전히 어려운 영어와 고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내 스타일대로 찾아나간 고전 영어 공부법에 관한 더 자세한 일화는 다음 기사에서 토론 시간에 친구들의 말을 알아 듣고(리스닝), 내 의견을 말하고(스피킹), 페이퍼를 써내기(롸이팅)까지의 과정과 함께 계속 됩니다. 기대해주쎄용~!

덧붙이는 글 | 개인 까페 (http://cafe.naver.com/nagnegil)에도 연재중입니다



태그:#세인트 존스 대학, #ST.JOHN'S COLLEGE, #고전 공부, #영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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