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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책표지
 <투명인간> 책표지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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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불만스러웠다. '왜 제목을 투명인간이라고 지었을까?' 사실 소설 제목치고는 어쩐지 유치하지 않나. 무슨 SF 소설도 아니고….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 자전거로 마포대교를 건너는 석수와 건너편 인도를 서성거리는 만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왜 투명인간인지 '띵'하고 왔다.

이 마지막 부분은 읽는 이에게 소설의 들머리를 상기시키면서 맨 마지막의 '나'가 맨 처음의 '나'란 걸 확인시킨다.

왜 '투명인간'일까

문체에 철철 흐르는 해학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맛깔스러운 필력이야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성석제다.

다만 이전까지의 그의 작품과 이번 <투명인간>은 울림이 다르다. 예를 들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그의 단편이 저절로 책장이 넘어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면 <투명인간>은 중간 중간 숨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읽는 사람의 심장을 압박한다.

이런 소설은 사실 책의 맨 마지막을 애써 외면하고 싶다. 나에게는 <임꺽정>이 그랬고, <장길산>이 그랬다. 그게 현실이고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대다수 인민들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 받아도 피하고 싶은, 나와는 한 걸음 쯤 떨어져 있었으면 하는, 일종의 도피의식인지도 모른다.

<투명인간>은 <토지>나 <삼대>처럼 가족사를 큰 줄기로 엮은 이야기지만 시공간이 그만큼 넓고 길지는 않다. 신학문을 배운 만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생이 못마땅한 만석의 아버지의 젊은 날이 소개돼 있긴 하지만 <투명인간>의 기둥 이야기는 역시 만석과 그의 형제자매들에게 맞춰져 있다. 한국 근현대사 연보를 놓고 보자면 <투명인간>에서 만석의 삶은 1960년대부터 2014년 오늘까지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나 박정희 시대가 어땠는지 체험하지 못한 나는 나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성석제의 시대묘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1990년 초반 한국사회의 뒷골목 풍경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다. 이를테면 담임을 맡은 교련선생이 '만만한 한 놈'을 골라 온 교실을 뱅뱅 돌면서 반 죽여 놓거나,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교통경찰의 장화를 벗기자 냄새 나는 지폐가 우수수 쏟아졌다는 따위의 묘사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장면이다.

우리 곳곳에 있는 투명인간들

소설은 만수와 만수의 동생들(석수, 옥희)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절정으로 향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형(백수)을 잃은 만수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다. 만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동생들은 서울의 국립대학교와 그 학교 학생들의 단골 미팅 여학생들이 다닌다는 사립 여자대학교에 입학한다.

학생운동과는 아무 상관없는(아니 오히려 그런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석수는 순전히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공활'에 뛰어든다. 거기서 한 여자를 만나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다 석수는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결국 국가정보원(아마 당시 안기부였을 듯)의 투명인간이 된다.

옥희는 학생운동을 같이 하던 선배에게 강간을 당한 후 그와 결혼을 하고 만수의 도움으로 기사식당을 차린다. 기사식당이 불같이 번창하자 옥희 부부는 만수 내외와 만수가 키우고 있는 석수의 아들(태석), 그리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바보가 된 만수의 작은 누나(옥희)를 집에서 내 보낸다.

만수가 다니던 자동차 부품회사의 회장은 공장을 폐쇄한다. 만수와 함께 일하던 7명은 회사에 남아 끝까지 저항해 보지만 끝내 무너진다. 만수에게 남은 건 채권자들의 손배소로 인해 넘겨진 수억 원의 빚 뿐. 그래도 만수는 신문배달 음식배달 세차 폐지줍기 등 하루 20시간을 일하면서 악착같이 빚을 갚아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우직한 만수의 편이 아니다. 아내는 신장이 망가져 일주일에 두 번씩 투석을 해야 하고, 아끼던 아들(석수의 아들) 태석은 왕따를 견디다 못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숨을 거두기 직전 태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을 키워준 만수의 아내에게 '엄마'라고 부른 후 자신의 신장을 내 준다. 짐승 같이 우는 만수.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다시 마포대교. 투신, 혹은 사고….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투명인간이다. 백수 만수 석수 금희 명희 옥희, 6남매의 삶은 한국 투명인간들의 1960~1990년대다. 석수의 아들로 만수가 애지중지 기르던 태석 역시 지금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투명인간 중 하나다. 이 투명인간들은 있기는 있으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한국사회는 애써 이들을 외면한다. 작가는 지금 한국사회의 투명인간이 누군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나? 기를 써서 1970, 1980년대를 되짚지 않더라도 투명인간은 우리 곳곳에 찾을 수 있다. 2009년 1월 불타는 용산 남일당 망루에서, 그해 여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뜨거운 철판지붕에서 우리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투명인간들을 봤다. 그리고 2014년 4월, 304명을 삼키고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세월호에서도….

소설 <투명인간>은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투명인간이 된다는 걸 우리에게 깨우친다. 돈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은 투명인간이 된다.

거대 투기자본의 탐욕에 휩쓸리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 생계형 아르바이트들이 지금 한국의 보편적 투명인간들이다. '성적=행복' 공식을 달달 외우며 청춘을 갉아 먹히고 있는 한국의 초중고등학생들 역시 투명인간이다. 그리고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 깊이 가라앉아버린 304명도 어쩌면 곧 투명인간이 될지 모른다.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지 않는다면….

작가 성석제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서로의 우리들의 옆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혹은 내가, 투명인간이 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투명인간>(성석제 (지은이) / 창비 / 2014-06-30 / 12000원)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창비(2014)


태그:#서평, #투명인간,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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