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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부터 6월까지, 혼자 필리핀 팔라완 배낭여행을 했다. 더 '늙기' 전에 떠난 여행이었다. 팔라완의 북부여행은 '바다와 몸', 남부여행은 '바다와 사람들'이었다. 팔라완은 안전하고 아름답고 순수했다. 고되고, 거칠고, 가난하고, 고맙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두 달 만에 얼굴은 새카맣게 탔고 몸무게는 11kg 빠졌다. 팔라완은 이제 내게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운 곳이 되었다. - 기자 말

14 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 배낭여행 14 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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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망설였다. 샌드위치와 미네랄워터를 양손에 든 채. 기내식을 판다고? 그냥 주는 게 아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간식 카트를 밀고 온 승무원에게 "샌드위치 주세요, 물 주세요" 하며 반색했었다. 먹을 것인가, 물릴 것인가? 물렸다. 배는 고팠지만, 비쌌다.

아침밥은 마닐라 공항 대합실 맨바닥에서 노숙하느라 걸렀다. 공항 노숙은 처음이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지나다니든 말든, 아무 데나 누워 잘 수 있다는 게. 마치 내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세상을 방랑하는 자유인이 된 것 같았다, 존재가 가벼워졌다'라고 여행일지에 썼다.

과장이 심했나? 어쨌든 몸은 가벼워졌겠지. 지난밤 자정부터 먹은 게 없다. 기내식 먹을 생각에 일부러 점심도 걸렀다. 그런데 오후 1시 15분 출발 예정인 필리핀 국내선 세부 퍼시픽 에어라인을 4시 20분이 돼서야 탈 수 있었다. 출발부터 배고픈 여행이었다.

내 옆자리의 승객은 붙임성 좋은 필리핀 청년이었다. 짧은 머리가 단정하고 말쑥해 보였다. 그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영어발음이 매끄러웠다. 나는 배가 고팠다. 기운이 없었다. 그의 질문에 짧게 짧게 대답했다. '한국사람. 배낭여행자. 팔라완(Palawan)은 처음 간다. 앞으로 두 달 동안 팔라완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여행할 계획.' 그는 마닐라에서 산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3박4일 코론(Coron)으로 여행가는 중이랬다. 탑승수속을 늦게 해 둘의 좌석이 멀리 떨어졌다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노안'이라는 펀치에 정신이 번쩍 들다

4월 21일 팔라완 부수앙가 공항에 도착하다.
▲ 도착 4월 21일 팔라완 부수앙가 공항에 도착하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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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과 바다와 섬들이 환하게 내려다보였다. 마치 내 방에 걸려있는 세계지도의 한 쪽이 입체감을 띄며 펼쳐지는 것 같았다. 마술처럼 흐르는 풍경. 그제야 여행이 시작됐다는 게 실감 났다. 쿵쿵, 나의 심장이 쿵쿵쿵쿵, 빠른 북처럼 뛰기 시작했다. 기대, 긴장, 불안, 흥분... 여행을 시작할 때 느끼는 그 전율! 

비행 내내 창밖을 내다보며 마음이 달떠 있었다. 허기도 잊었다. 한 시간쯤 날자 비행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하강은 빠르고 급작스러웠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지했을 때 옆자리 청년이 불쑥 껌 한 쪽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팔라완에서 파라다이스를 만나길 바랍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오후 5시 30분, 마침내 팔라완의 최북단 칼라미안 제도(Calamian Group) 부수앙가(Busuaga) 섬 공항에 도착했다. 트랩을 내려서니 백여 미터 앞에 단층 건물 몇 동이 보였다. 지붕이 뜯겨져 나가 철골구조가 드러난 건물도 있었다. 5개월 전,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자국이었다. 대합실은 고속버스터미널처럼 작았다.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에 여행객들이 활주로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 예약한 곳도, 아는 곳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어디로 가고, 어떻게 가고, 어디서 자고, 뭘 먹고, 뭘 하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그때그때 내 멋대로 결정할 일들이었다. 누구는 그 선택의 순간들을 자유라며 즐겼고, 누구는 피곤하고 성가신 임무라고 했다. 내겐 재미이기에, 혼자 무작정 떠도는 배낭여행이 신나는 여행이다. 짐을 찾은 후, 대기실 한쪽에 비치된 숙소 홍보 팸플릿들을 들춰 봤다. 돋보기를 꺼내야 했다. 참 귀찮다.     

노안이 왔다. 돋보기 없이 더는 책을 볼 수 없게 됐다. 3년 전에 닥친 일이다. 그때까지 나의 몸과 마음은 아무 이상 없이 청춘처럼 팔팔했다. 반세기 가까이 살았음에도. 짙어져 가는 검버섯이나 주름살, 몇 가닥의 새치, 스러져 가는 미색...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애초 나는 몸을 살뜰히 돌보는 타입이 아니다. 치장도 화장도 운동도 내겐 먼 일이다. 그래도 내 몸은 건강했고, 꿈은 기고만장했다. 천년만년 그럴 것처럼.

그러다가 '노안'이라는 펀치에 되게 맞았다. 무지 셌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늙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노화, 몸의 기능들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도둑처럼 슬그머니. 

나는 불가항력적인 그 '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수 있겠나, 너그러워질 수 있겠나, 애써 담담해질 수 있겠나, 어떤 성인들처럼 황혼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예찬할 수 있겠나....

못하겠다. 나의 정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나의 신경은 그리 둔하지 않았다. 삶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결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너덜너덜 망가져 가는 몸으로 수년 혹은,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니. 매일 한 주먹씩 약을 털어 넣으면서. 모든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숨이 멈출 때까지. 아프고 슬프다 못해 끔찍한 과정 아니겠나. 그때 사랑이고 돈이고 명성이고... 다 무슨 소용이람. 그 지경까지 되면 난 그냥 팍 죽어버려야지. 그런 생각들이 난무했다. 그러니 오늘은 불편하고 내일은 영영 불길하기만 했다.

죽기 전에 '소설가'가 되겠다며 처박혀있던 골방...

부수앙가 공항 밖 풍경.
▲ 공항 부수앙가 공항 밖 풍경.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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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살던 그대로 살 수 없었다. 남은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겠나, 한치 앞도 모르지만. 우선 '골방'에서 뛰쳐나왔다. 죽기 전에 '소설가'가 되겠다며, 수십 년 동안 처박혀 있던 골방. 때론 머리를 쥐어뜯으며 창작하던 곳, 그러나 태반 룸펜처럼 무위도식하던 곳. 덜 된 채로 태어난 습작들이 덜 된 채로 민망하게 쌓여 가던 곳.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런데 '노안'이 한 방에 끝장냈다. 그리곤 막막했다. 어떻게 살지?

"누나 경험들이 누나가 쓴 소설보다 훨씬 재밌어요. 누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거죠?"

대학 과(科) 후배인 제훈이 정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인도 배낭 여행담을 너스레 떨며 늘어놓던 술자리였다. 그때 그는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섬>과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한국 문단에서 '천재 작가' 소리를 듣고 있었고, 두 번째 장편소설 <나비 잠>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무명 습작생으로 '골방'에서 쪼글쪼글 늙어가고 있을 때였다. 되지도 않는 픽션을 쥐어짜며 화락화락 미쳐가고 있을 때였다.

"왜 소설을 쓰느냐고?" 나는 제훈의 질문에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렇다. 소설을 놔버리면, 내가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 걸 붙들고 살아왔는데... 어떤 사람은 종교를 붙들고 살고, 어떤 사람은 돈을, 사랑을, 거울을... 붙들고 살잖아.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살아가는 명분이 필요하니까.

이제와서 내가 소설을 버리면, 뭘 붙들고 살지? 지나간 시간은,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 재능은 쥐뿔도 없으면서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어. 다른 건 다 건성이었고. 20년 넘게. 믿을 수 있겠어? 그러느라 놓치고 버린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아."

차마 떨구지 못하는 내 늙은 눈물을 제훈은 봤을 것이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누나, 누나 얘기를 써요. 소설보다 재밌잖아요."

'골방'에서 뛰쳐나오니, 나를 살게끔 하였던 것이 정말 사라졌다. 곧 죽을 것처럼 내 인생이 파리해졌다. 그때 문득 제훈의 그 말이 떠올랐다.

'누나 얘기를 써요. 소설보다 재밌잖아요.'

그래, 세상을 떠돌며 내 얘기를 쓰자. 다리가 아직 멀쩡하니 가능한 일이다. 그냥 떠돌자. 비울 것도 없다. 구할 것도 없다. 어떤 화두를 붙잡을 것도, 세상 어떤 심오한 이치를 터득하고자 할 것도 없다. 그저 세상을 바라보자. 아직 성한 오감을 열어놓고 가볍게. 몸에 충실하자. 더 부서지기 전, 그나마 온전할 때 마음껏 몸부림치는 거다. 어디로 가든 어디에서 멈추든,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변덕 부리며. 오롯이 존재함으로써만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유랑 얘기를 글로 쓰는 거다.

내가 본 것을, 들은 것을, 느낀 것을... 철학과 상상과 은유의 세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 내 몸이 막무가내 부닥친 생짜 그대로. (사실 내 얘기를 쓰라는 제훈의 말은,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는 세계들을 힘들게 다루지 말고, 별난 내 경험들을 녹여 소설로 써보라는 뜻이었다. 소설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었다.)      

우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자락 산촌마을로 이사했다. 나의 길고 먼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될 시골집. 바람벽 한쪽에 세계지도부터 걸었다. 본격적으로 멀리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생활은 단순해졌고, 생활비는 도시보다 절반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3년이 칼바람처럼 지나갔다. 정작 베이스캠프에서 밖으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그동안 노안은 여지없이 더 진행됐다. 렌즈를 바꿔야 했다. 

나는 피터 빅셀의 <지구는 둥글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굴고 있었다. 그 사람처럼 쓸쓸한 사람도 아닌데, 지구가 둥글다는 걸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아닌데. 준비물 목록만 만들고 있었다.

'휴대용 구급낭, 우산, 등산화, 편상화, 장화, 옷, 그런 것들을 실을 수레 한 대, 배 한 척, 이 배를 싣고 갈 수레 한 대...'

'수레, 배, 기중기...' 내게 필요한 건 여행지에서 치러야 할 수레 값, 배 값, 기중기 값... 그만큼의 '돈'이 없으니 떠날 수 없었다. '평생 실패만 하는 사람들이 영웅으로 대접받는다'는 나라에 가고 싶었지만, 너무 멀었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 여행이었다. 

다행히 <지구는 둥글다>의 주인공은, 죽기 전에 돌아오려면 여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 날 그는 사닥다리 하나만 어깨에 둘러메고 떠났다.

나 역시 '사닥다리' 하나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그러니 나는 멀리 갈 수도, 오랫동안 떠돌 수도 없을 것이었다. 더 지체하느니 그게 낫겠다 싶었다. 배낭을 꾸렸다. 두 달 동안 필요한 옷가지와 썬크림, 수건, 책, 노트, 수영복... DSLR 대형 카메라와 어쩌자고 2.5kg 노트북까지 챙겼다. 카메라는 필수품이니 그렇다 치고, 노트북은 여행 내내 골칫덩어리가 될 거였다. 마지막으로 얇은 전대를 단단히 허리에 찼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첫 여행지를 향해 떠났다. 필리핀의 팔라완으로.

여행을 꿈꾸며 방 벽에 붙인 세계지도
▲ 세계지도 여행을 꿈꾸며 방 벽에 붙인 세계지도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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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완은 'The Last Ecological Frontier in the Philippines(필리핀의 마지막 개척지)'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덜 오염됐다는 말이다. 필리핀의 서쪽 끝 지역이다. 넓이 50km, 길이는 450km의 길고 좁은 섬 지역. 본섬의 지형이 접힌 우산 모양이다. ('Palawan'의 뜻과 어원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스페인어의 'Paragua'에서 왔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가설이다. 그 뜻이 '접힌 우산'이다.) 서남태평양에 17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섬. 나는 그 중 팔라완 최북단 칼라미안 제도의 부수앙가 섬에 막 도착했다.    

부수앙가 공항에 비치된 숙소 팸플릿 몇 장을 훑어보다가 내려놓았다. 돋보기를 벗어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무거운 배낭을 낑낑대며 등에 멨다.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두르고 한 손엔 노트북 가방을 들었다. 그때 비행기에서 내 옆에 앉았던 청년이 밖으로 나가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여자 친구도 미소를 보냈다.

그들이 떠나고 나도 천천히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몇 발짝 걸으니 밖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투명했다. 열대의 섬. 심장이 쿵쿵쿵쿵 다시 크레센도,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필리핀 팔라완
▲ 지도 필리핀 팔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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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팔라완,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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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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