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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없이 추진된 전교조 법외노조화

이석기 의원 사건과 공안정국 형성,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논란, 채동욱 검찰총장 강제 사퇴, 여야 3자회담 결렬, 복지공약 후퇴와 진영 복지부 장관 사퇴 등으로 한국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던 와중인 2013년 9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이에 짝하여 또 한 번의 갑작스런 충격타를 가했다.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였다.

2013년 9월 23일, 고용노동부(아래 노동부)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따라 해직교사를 30일내 조합원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던바, 이때 노동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명분으로 굳이 해직교사 배제를 들먹인 데는 전교조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려는 깜냥이 깔려있었다.(<서울신문> 2013. 10. 19) 그러나 10월 16일부터 사흘 간 실시된 전교조 조합원 총투표 결과 노동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이 통보는 국내외 시민사회의 광범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선 8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교조 탄압 저지 연대기구를 구성하였고, OECD 노조자문위원회·세계교원단체총연맹·국제노동조합총연맹·국제공공노련 등 국제단체들도 박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발송하는 등 국내외적 반발 움직임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10월 24일 노동부는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공식통보하였다.

그러나 현행법상 노동부를 비롯한 행정기관에서 이미 설립된 노조에 대해 법외노조를 통보할 권한은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노동부는 노조법시행령 제9조 제2항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이 시행령은 법적 뒷받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므로 실상 무효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 시행령은 87년 6월항쟁으로 폐지된 '행정 관청에 의한 노조해산명령권'을 노태우 정부 당시 법률의 위임을 거치지 않은 채 시행령으로 부활시킨 것이었다.

또한 해직교사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 제2조'는 위헌적 조항으로서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사항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미 국제노동기구는 한국정부에 "조합원 자격요건이나 조합임원 자격요건의 결정은 노동조합이 재량에 따라 정할 문제이지 행정당국이 개입해선 안 된다"고 누차 권고한 바 있었다. 특히 전교조는 '학교별 노조'가 아닌 '산별 노조'이므로 특정 학교에서 해직되었을지라도 본인이 교직에 대한 의사가 있는 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이상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근혜 정권 1년 失政 보고서>, 2014, 79∼86쪽 참조)

이러한 '국제적 상식'을 두고 논란을 빚는 형편은 길게 볼 때 '글로벌 스텐다드'를 부단히 강조하고 중시하는 한국정치, 사회의 이율배반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여태껏 한국정치·사회의 '글로벌 스텐다드'가 오직 자본, 기술, 인력에만 국한되고, 노동과 복지는 제외되어 온 현실이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탓에 2013년 11월 13일, 법원은 전교조 측이 노동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받아들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때로부터 43년 전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분신한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6월 19일, 법원은 태도를 바꾸어 법외노조통보처분취소 소송 1심 판결에서 정부 측 손을 들어주었다. 전태일의 사상과 외침은 이 땅 위에 아직도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교조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충?

사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추진은 정권 공식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이미 세간에 보도된 바 있었다. 다만 이때는 정권 내부에서 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강·온론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뉴시스> 2013. 2. 22) 실제 1987년 이후로는 노조를 강제 해산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9월 공세'의 일환으로 이를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박근혜 정권은 왜 전교조를 압살하려 한 것일까?

외형상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반(反)노동공세로 보일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뉴라이트 교과서 공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9월 공세'의 본질적 속성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교조 인식을 살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2005년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장외투쟁에 나서는 한편, 전교조에 대한 비난과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 박 대표는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이번 날치기법이 시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는 이를 수단으로 사학을 하나씩 접수할 것"이라 주장하며 "전교조는 대한민국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단체이며 반미와 친북을 주입시키는 집단"이라 규정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한테 교육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교조에 대한 조중동의 논조와 철두철미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박근혜의 발언과 태도는 18대 대선 당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도, 집권 후에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전교조에 대한 비난의 초점 역시 한결같았다. 전교조는 극우세력의 역사인식―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과 정반대의 역사인식을 유포하는 '이적단체', 즉 '적'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교조가 노동단체임을 꼬투리 잡은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극우 일변도의 질서로 재편하는 데 있어 주요한 '적'이라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통해 박근혜 후보 당선에 진력했던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재직 당시 민노총·전교조를 북한보다 싸우기 어려운 '국내 내부의 적'으로 설정해두고 있었다.

유신말기 연상케 한 초강경일변도의 공세들

한편, 9월 공세를 거치며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는 초강경일변도로 치달았다. 유신 말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예컨대 이해 10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이후 주민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성이 노골화되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샀던바, 경찰의 행태는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지경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송전탑 공사 현장에 무려 3천 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고, 이들은 공사 강행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통행금지, 의료진 출입 제한, 무리한 사법처리, 불법채증, 방문금지, 식사·생수·이불·천막 등 기본물품 반입금지, 집회금지 따위 감시와 위협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이곳 주민들에게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박 정권은 전교조에 이어 10월 말부터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전공노)을 타깃으로 삼아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박 정권은 전공노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불법 대선개입을 했다는 혐의를 덮어 씌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혐의였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 결사체인 전공노는 애당초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아예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혐의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청와대·극우단체·새누리당·극우 관변언론·검찰로 이어지는 극우 네트워크가 합심해 전공노 탄압에 나섰다. 검찰은 수사 착수 나흘 만에 전공노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런 양상은 이해 연말까지 계속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해 12월 22일, 철도노조 파업 진압을 위해 경찰이 69개 중대 5천 5백 여명을 동원하여 경향신문사 건물의 유리문을 깨부수고 최루액을 뿌리며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난입한 일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날 경찰은 체포대상인 철도노조 간부에 대한 정보도 없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 철도노조 간부 체포에는 실패했다.

이 사건은 유신말기였던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경찰 1천여 명이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을 강제 해산키 위해 신민당사에 난입하여 여성노동자들과 신민당 의원, 기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사망한 'YH사건'을 연상케 했다.

이에 대해 다음 날 <경향신문>은 '경향신문사 난입은 반언론적 폭거다'라는 제하의 사설을 내고 경찰이 "노조 지도부를 체포하는 것보다는 마치 경향신문 건물을 초토화하는 것이 목표인 양 행동"했음을 지적하고,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신문제작 중인 언론사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어놓은 중대한 사안을 '윗선'의 지시 없이 경찰이 독자적으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정권 차원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경찰의 비상식적 행동은 박근혜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 본 떼를 보여주겠다는 '윗선'의 연출이었다.

이러한 초강경일변도의 '토벌전'은 비단 공권력 행사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해 12월 10일,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을 선언한 장하나 민주당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선친 전철"을 경고한 양승조 의원에 대해 즉각 제명안을 제출했던 바, 이 일은 유신 말기 박정희 정권이 체제 비판에 앞장섰던 김영삼 의원에 대해 그의 신민당 총재직에 더불어 의원직까지 박탈해버린 사건의 판박이였다.

이처럼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권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경향신문>, <뉴시스>, <서울신문>, <시사In Live>, <한겨레>

김행수, <“붉게 물들이는 해충” 놀라운 적개심>, <<오마이뉴스>> 2013. 10. 9.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근혜 정권 1년 失政 보고서>>, 2014.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밀양, #장하나 양승조 제명, #경향신문사, #토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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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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