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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를 태국의 유적지로 잘못 소개한 CNN 공식 페이스북
 앙코르와트를 태국의 유적지로 잘못 소개한 CNN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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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방송매체 CNN이 중대 실수를 저질렀다.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태국의 영토라고 소개한 것이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 사실을 접한 뒤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캄보디아 관광부도 CNN 측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사태를 파악한 CNN은 즉시 두 번에 걸쳐 공식 사과편지를 보냄으로써 다행히 이 사건은 더 확산되지 않고 일단락됐다.

미국 언론매체가 저지른 실수였으니 망정이지, 국경 문제 등으로 갈등이 심각한 이웃나라 태국과 베트남 언론매체가 실수로라도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아마도 과거처럼 유혈폭동사태가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앙코르와트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자긍심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심지어 국기에 앙코르와트가 그려져 있을 정도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 유적의 소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특히 더 민감하다. 한때지만 앙코르와트가 태국 관할의 영토로 전락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태국의 한 여배우가 라디오에 나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을 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문이 나자, 이에 격분한 캄보디아 국민들이 주 태국대사관 건물에 불을 놓았고, 태국계 호텔, 음식점 등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캄보디아인과 베트남인, 두 민족간 갈등과 반목의 역사

역사적으로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캄보디아와 태국도 그렇다. 문화나 종교적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지만, 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캄보디아는 15세기 무렵 태국 아유타야족에 의해 앙코르제국이 몰락한 후, 지난 수세기 동안 태국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며, 종속국가로 근근이 버텨왔기 때문이다. 특히 두 나라는 캄보디아 북동쪽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라고 불리는 사원과 그 주변 영토를 둘러싸고, 최근까지 양국 군대가 접경지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2013년 11월 국제사법재판소(IJC)까지 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이 사원은 캄보디아 땅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아직 사원주변 일부 영토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국 총리가 사임하고 군부 쿠데타로 내부가 혼란스러워서인지, 영토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은 잠시나마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캄보디아는 지리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서쪽으로는 태국, 북쪽으로는 라오스, 동쪽에는 베트남이 자리 잡고 있다. 라오스와는 갈등이 적은 편이지만, 베트남과는 영토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매우 심한 편이다. 양국간에는 영토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반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캄보디아인과 베트남인, 두 민족간 갈등과 반목의 역사는 수백여 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베트남땅이 된 캄푸치아 크롬을 캄보디아에 돌려달라고 시위하는 승려들
 지금은 베트남땅이 된 캄푸치아 크롬을 캄보디아에 돌려달라고 시위하는 승려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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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아랫지역'라는 뜻의 '캄푸치아 크롬'은 지금은 베트남 남부 땅이다. 이 지역은 과거 '사이공'으로 불리던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 '호치민시'를 둘러싼 6만8990평방킬로미터 크기의 땅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캄보디아인들이 주로 정착해서 살던 땅이었으며, 지금도 약 100만 명(1999년 통계 기준)이 넘는 크메르 자손들이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이 지역에 베트남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다. 1662년 캄보디아 국왕이 전쟁 중 흘러들어온 베트남인들의 일부 거주를 허용해 베트남인들의 정착이 본격화되었다. 18세기 무렵 태국의 침략으로 캄보디아 국력이 약해지자, 베트남 응우옌 왕조가 본격적으로 통치를 시작하면서 캄보디아의 영토 지배력은 극도로 약해졌다.

1862년과 1873년 맺어진 1~2차 사이공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캄푸치아 크롬을 '코친차이나'로 개명하고, 베트남 북부의 통킹 보호령과 중부의 안남 보호령과 함께 프랑스령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49년 6월 4일 프랑스정부가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제네바 협정에 따라 이 지역을 캄보디아가 아닌 베트남 영토로 확정지으면서 국제적으로 베트남 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 프랑스는 이런 양국 국민들의 정서를 교묘히 이용해서 캄보디아인 대신 베트남인들을 관료로 고용함으로써 캄보디아인들의 반베트남 정서에 불을 붙였다. 지난 1979년에는 베트남군이 캄보디아 인민들을 압제에서 해방시킨다는 미명 아래 크메르루주를 괴멸시키고, 캄보디아를 점령, 훈센 등을 앞세워 베트남 괴뢰정부를 세운 적이 있다. 베트남은 당시 20만 대군을 상주시켜 이후 10년 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했다. 최근의 반베트남 정서는 여기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여행책자 한 권, 캄보디아를 들끓게 하다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캄푸치아 크롬이 베트남 영토로 확정된 지 65주년이 되던 지난 6월 4일, 캄푸치아 크롬 출신 승려들과 민간인, 연합회 회원, 그리고 인권단체들이 모여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시위집회 다음날, 베트남 대사관 대변인은 현지 라디오 방송국에 출연해, "캄푸치아 크롬은 프랑스가 1949년 베트남 영토로 구획을 확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베트남 영토"였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캄보디아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캄푸치아 크롬 출신 주민들과 연합회, 인권단체들이 즉각 규탄성명을 냈다. 지난 7월 21일에는 학생, 승려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이 협회 회원 수백여 명이 수도 프놈펜에서 두 번째 가두시위를 벌였다. 프놈펜시 당국은 사전 집회금지명령을 내렸지만, 시위가 일어난 당일에는 오히려 경찰이 시위대 행렬을 보호하는 등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이들 시위대는 이날 하루 동안 프놈펜 주재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외국 대사관들을 돌며 베트남 대사관을 비난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2월에는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베트남인이 시내 한복판에서 구타를 당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일부 집단 구타에 가담한 현행범들을 일부 잡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석방했다. 베트남 정부가 캄보디아 정부측에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별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며  캄보디아 정부도 조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서 미결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에 사는 베트남인들 중에는 자신의 출신을 속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국여행책자 제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4년 전인 2011년 <중앙북스>가 낸 <베트남, 앙코르와트>가 그것.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뒤늦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한국 내 캄보디아 커뮤니티가 이 문제로 들끓기 시작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책자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겉표지에는 베트남이라는 글자가 큰 글씨로, 앙코르와트는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세계여행을 많이 다녀본 전문가라면, 대번에 베트남과 캄보디아 유적지 앙코르와트 두 곳을 소개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캄보디아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한 의견을 넘어 격분하는 캄보디아인들도 많았다.

"<중앙북스>, 책 제목 수정하고 사과하는 게 옳아"

최근 한국 내 캄보디아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여행책자 표지
 최근 한국 내 캄보디아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여행책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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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에 대해 오랫동안 동남아 역사와 역사를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개인이나 국가나 힘이 셀 때는 장밋빛 청사진을 설계하고 미래를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희망이 꺾이고 좌절될 때는 앞날을 설계하기 보다는 과거의 영화를 반추하며 살게 된다. 험난하고 힘든 시기에 과거 조상들이 일군 찬란했던 앙코르문명과 강력한 힘으로 천하를 지배했던 선조를 그리다보니 그 원천인 앙코르와트를 단순한 유적지 이상의 신성하고 성스러운 의미로 캄보디아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결코 우리 입장에서만 단순히 판단하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중앙북스> 측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그 문제는 다음 개정판에서 고려하겠다, 그러나 지금 나온 책을 수거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들이 책 제목을 두고 분노하고 있는데, 공식사과할 계획은 없냐"고 묻자, 그는 "아직 내부 논의되지 않아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목을 수정한 개정판 발행 시기에 대해서도 출판사측은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다문화를 연구하는 사회적 기업 (주)아시아허브 대표 최진희 원장은 "책이 발간된 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입 소문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는 캄보디아인들이 많다"라며 "캄보디아인들도 그동안 여러 차례 이 출판사에 항의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포기한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해당 출판사가 서둘러 제목을 수정하고, 이 문제에 대해 공식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프리랜서 캄보디아어·영어 강사 다라 지싼씨는 "한 달 전에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 깜짝 놀라서 한 한국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내용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면서 "그 당시 화는 났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갑자기 이 일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다시 서점에 갔더니 그 책은 없더라, 혹시 출판사에서 알고 회수한 거라면 알았으니, 정중한 사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언어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찬댓씨도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걸 많이 봐왔다"며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면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부 내용에까지 앙코르와트가 베트남 문화유산이라고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캄보디아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자기 나라 것은 지키려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자존심은 존중해 주지 않는 건 선진국가의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인 임 시논(Yim Sinorn)씨도 SNS에 "만약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쓰면,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성질로는 바로 집회하지 않나?"라고 올렸다.

캄보디아 빌드 브라이트 대학교 한국어과 석미자 교수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앙코르와트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강하다. 가령, 일본 안내책자에 이웃나라 한국의 불국사를 부록형식으로 특별히 소개하는 내용이 함께 있다고 한다면, 한국인 중 이런 책 제목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태그:#캄푸치아 크롬, #캄보디아, #KAMPUCHEA KROM, #베트남,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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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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