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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절집 우도 금강사 주위 풀들을 제거하는 처사님의 보시는 행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절집 우도 금강사 주위 풀들을 제거하는 처사님의 보시는 행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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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지난 22일,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

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절집 같지 않은 절집 금강사는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절집 같지 않은 절집 금강사는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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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 '조사뿐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 '조사뿐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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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로 풀을 완전 '조사뿌네요'. 그렇지요?"

스님께선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아쉬움에 내뱉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사뿐다>는 단어가 왠지 처절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야생에만 존재했던 단어처럼 묘한 맛과 여운이 살아났습니다.

"저 처사님 얼굴이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스님 어찌 저런 덕행에서 한명회를 떠올린단 말입니까! 너무 의외네요."

반발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는 땀과 제초작업 중 튄 풀이 뒤엉켜 얼굴이 엉망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잘려나가 튄 풀의 파편과 땀을 피의 아우성으로 읽은 겁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조선 세조 때 처절했던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리게 한 거죠. 우리네 역사에 이 뿐이겠어요?

그렇더라도 스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초작업의 양면성을 같이 봤다는 겁니다. 칼날에 쓰러진 풀들의 아우성과 절집을 깨끗이 치우는 처사의 기쁨. 즉, 잡초들의 죽음에 가까운 고뇌(苦惱)와 부처님이 기거하는 절집에 행한 덕행(德行)이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둘째,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린 내공입니다. 근본은 아마 <세월호 참사>지 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눈 뻔히 뜨고서도 살리지 못한 중생들의 죄책감. 스님은 이를 '이 시대의 무능'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쨌거나 무능한 정부는 살생부를 움켜쥔 허황된 한명회가 된 꼴이지요.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관음보살상과 동자승 뒤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인상적입니다.
 관음보살상과 동자승 뒤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인상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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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에서 자비로 인해 살아 남은 씀바귀 쌈 밭입니다. 덕해 스님, 이걸 보며 어찌나 흐뭇해 하시던지...
 대학살에서 자비로 인해 살아 남은 씀바귀 쌈 밭입니다. 덕해 스님, 이걸 보며 어찌나 흐뭇해 하시던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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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알고 보니 스님께서 안절부절 하신 이유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 글쎄, 본인이 아끼는 야채 쌈 밭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야채 쌈은 부드럽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토끼가 좋아하며 잘 먹는 <씀바귀>였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씀바귀(Ixeris dentata)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입니다. 뿌리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잎의 상처에서 분비되는 흰 수액은 쓴맛이지만 기름 혹은 초간장에 무쳐 먹으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스님께선 쌈으로 드신다니 자연식에 놀라울 뿐입니다.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그러게요. 이게 다 부처님의 가피지요."

한담을 나누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을까. 그가 잠시 손을 멈추고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우릴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가 잡초들에겐 한명회였을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씀바귀 밭은 왜 치지 않고 두셨어요?"
"스님이 즐기는 야채 쌈 밭인 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쳐요. 스님 맛있게 드시라고 그냥 뒀어요."

씀바귀 밭을 남긴 건 그가 스님을 위해 베푼 최대한의 <자비>였습니다. 누가 스님이고, 누가 처사인지 경계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로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그는 목사와 신도의 경계를 넘어 신계에 존재했다지요? 유씨도 죽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시 한편 읊지요.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시 '쓴' <웃음>입니다.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뒷정리 하시는 덕해스님.
 뒷정리 하시는 덕해스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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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공양에 오른 씀바귀 쌈.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저녁 공양에 오른 씀바귀 쌈.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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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고 변재환

스님이 칼 갈고
목사가 약을 판다

목 좋은 자리에서
매일 굿판 펴

두 분 성인(聖人)
긴급 회동하시니

부처님 장발하고
예수님 삭발하셨더라

입장 바꿔 생각하며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발상이 도드라집니다. 또한 일어날 수 없는 두 분 성인의 긴급 회동(여와 야)에도 민생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구도자답게 활동해야 성인의 뜻처럼 현실 속에서 천당과 극락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지 싶네요. 하여간, 스님께서 씀바귀 밭을 지켜 준 그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제가 금강사에 오기 전까지 절에 한 번도 온 적 없답니다. 우연히 옛 것을 좋아한 제가 밖에서 돼지 여물통을 차에 실어왔다가 절에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갔다가, 뒤에 돼지 여물통을 갔다 주러왔던 인연으로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우도 금강사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들의 2세, 아이들일 것입니다. 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온 저녁 공양에 고추와 함께 씀바귀 쌈이 올랐습니다. 속가에서 쌈밥을 즐겼던지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쌈부터 맛보았습니다. 씀바귀를 손에 펼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올린 다음 도르르 말아 입에 넣었습니다. 신선한 야채의 향은 쌉스름 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엄청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왼쪽으로(사진은 반대) 사자 모형을 새긴 관을 쓴 문수보살, 오른쪽에 코끼리 모형을 새긴 관을 쓴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왼쪽으로(사진은 반대) 사자 모형을 새긴 관을 쓴 문수보살, 오른쪽에 코끼리 모형을 새긴 관을 쓴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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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우도 금강사, #덕해스님, #세월호 참사, #한명회와 살생부, #씀바귀 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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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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