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던 <군도:민란의 시대>가 마침내 개봉했다. 지난 23일 막을 올린 이 영화는 개봉 5일 만에 3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무서운 기세로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개봉 영화 중에서 최단기간 300만 돌파 기록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단연 배우와 제작진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에 <범죄와의 전쟁>으로 숱한 유행어와 명장면을 낳았던 윤종빈 감독 사단이 또 다시 뭉친 것. 지난 3편의 영화에서 함께 했던 배우 하정우도 이번에 어김없이 동참했다. 거기다 강동원까지 합세했으니 이미 이것만으로도 관객을 극장에 불러모을 요소는 충분해 보인다.

조선시대 배경의 액션활극, 흥미롭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다양하고도 독특한 캐릭터의 조합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다양하고도 독특한 캐릭터의 조합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활극이다. 가난과 역병이 심해지고 이에 지배층의 이기주의가 더해져서 백성의 삶은 고단해진다. 결국 힘든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산에 들어가서 도적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 그런 시기의 모습을 영화는 스크린에 옮겨담았다.

사극의 외피를 빌려온 이 영화는 그 안에 서부극의 액션을 한껏 선보인다. 끈에 매달린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는 천보(마동석 분), 저격수처럼 활을 자유자재로 쓰는 마향(윤지혜 분), 지팡이에 숨긴 검을 휘두르는 대호(이성민 분)까지. 각자 특유의 무기와 성격, 외모를 지닌 등장인물들의 조합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이에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는 이태기(조진웅 분)와 주인공 도치(하정우 분)로 움직이는 후반부 인물 구도의 중심축과 무게감은 자못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조윤(강동원 분)의 역할이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서자로 양반가문에 입성한 그는 아버지의 재산과 자신의 지략을 바탕으로 탐관오리를 수하에 거느리고 백성을 수탈하며 지역의 거부로 성장한다.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착취하고 살인교사까지 서슴지 않는 그의 잔인한 성격과 반대로 뛰어난 미모와 유일하게 여유를 지닌 풍모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그의 반전매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하며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어째서 구수한 외모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악역이 더 잘생겼단 말인가!

탄탄한 각본의 화려한 이름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뽐내는 출연진은 <군도:민란의 시대>의 핵심이다. 여기에 깔끔한 화면구성과 과하지 않으면서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려주는 의상도 칭찬받을 만 하다. 시대적인 배경이 조선인 만큼, 당시의 느낌을 충실히 살려주는 소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빛난다.

<군도:민란의 시대>에서 엿보이는 서부극의 향기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악덕 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졸부 조윤(강동원 분)은 그 악랄함과 대비되는 미모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악덕 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졸부 조윤(강동원 분)은 그 악랄함과 대비되는 미모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군도:민란의 시대>의 액션에서는 진한 서부극의 향기가 풍긴다. 카우보이들이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들릴 법한 음악들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고, 말을 타고 달리는 주인공의 모습도 '한국판 서부극'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가족을 희생당하고 복수에 나서는 주인공 도치의 모습은 마치 작년에 개봉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가 떠오를 법한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에 불만을 품은 도치가 전투 끝에 양반들의 상투를 자르는 장면은,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브래드 피트의 게릴라 부대가 나치를 소탕한 뒤 '두피'를 잘라서 전리품으로 간직하던 장면의 오마주로 보인다.

도치와 조윤의 대결에서 그런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긴 검을 든 강동원과 묵직한 단도를 양 손에 든 하정우의 칼부림 장면은, 총이 칼로 바뀐 채로 황야에서 자웅을 겨루는 총잡이들과 같다. 다만 이러한 설정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녹아들면서 한국 특유의 감성으로 거듭난다. 단순히 '동일한 구도의 반복'이나 '식상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표현으로 재탄생된다. 이런 부분은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이 지난 영화들을 거치면서 발전된 결과물이라 하겠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장면 하나하나는 재치있고 풍성하지만, 5장으로 나누어진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다소 헐겁다는 점이다. 길게 이어지는 줄거리 자체는 큰 문제없이 흘러가지만, 어느 장면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이전 작품에 비해 스케일이 커지면서 빈틈이 생긴 듯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유지되기에 감상에 무리는 없는 편이다. 작은 공간 안에서 메시지를 은유로 담는 쪽에 주력하던 윤 감독이 이번에 새로운 스타일로 실험적인 도전을 한 만큼 감수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 간극을 메꾸는 것은 시종일관 적재적소에서 터져나오는 유머감각이다.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분위기는, 자연스러운 개그 코드가 여러 배우의 매력과 함께 조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단 하정우가 연기한 '도치'가 18세의 청년 역할이라는 사실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공포스러운 외모로 적을 압도하는 도치가 사실 극 중에서 강동원이 맡은 조윤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영화를 보다보면 이러한 설정을 반박하기 힘들다고 느끼다가 이내 수긍하게 되기까지 한다. 깨알같은 대사와 상황에 웃고, 아슬아슬한 액션이 이어지는 와중에 영화는 순식간에 이야기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부조리 고발하는 윤종빈 감독의 시선, 이번에는 어디로

윤종빈 감독은 <군도:민란의 시대>가 나오기 전에 세 편의 굵직한 작품을 남겼다. 장편영화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와 흥행에 크게 성공한 <범죄와의 전쟁>(2012년), 그리고 그 사이에 탄생한 <비스티 보이즈>(2008년)까지. 과거 세 작품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만연해 있기에 일상처럼 여겨지는(혹은 과거에 그랬던) 폭력과 부조리를 고발한' 시선에 있다.

고발의 대상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권위주의로 모든 비상식과 탄압을 정당화하는 군대라는 이름의 '작은 사회'였고,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출세를 위해 온갖 비리가 용인되던 '무법의 시대'였으며,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화려하게 치장한 사회의 이면에 감춰진 욕망의 배출구 '호스트바'였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군도:민란의 시대>에서는, 그 시선이 부의 불평등이 가져오는 처참한 현실로 향한다.

극 중에서 '땅귀신' 조윤이 사채업으로 서민을 착취하며 얻은 부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매수하는 장면은, 21세기에도 '관피아'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우리의 공직사회 문제와 닮았다.

이런 방식으로 얻은 재물과 권력을 세습하는 부패한 사대부들의 모습도 한국의 재벌의 부끄러운 민낯과 겹친다. 이런 세상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들이 '의적'이 되겠다며 의기투합하는 것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법은 '가진 자'가 아닌 힘없는 개인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 현실은 어떤 감정을 자아낸다. 비뚤어진 사회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피끓는 분노 말이다. 그저 영화라고 하기엔 권력이 자신의 이익만 좇으며 민중을 짓밟는 이기적인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낯익은 것이다.

다만 속시원하게 극장을 나서기에는 '선과 악'의 구도가 마지막까지 선명하지도,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뚜렷하지도 않다. <군도:민란의 시대>는 관객을 잠깐의 대리만족으로 인도하는 대신, 두 눈을 뜨고 세상을 직시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개인적인 복수 이후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은 도치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 하정우 강동원 조선시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