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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망해가는 명나라를 지지한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조선의 왕인 인조가 청군 앞에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알려진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하고 아들 둘을 청에 볼모로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 아들 중 첫째가 청이 유럽으로부터 전해받은 서양 문물과 과학 기술에 감탄한 나머지 이를 조선의 부국(富國)에 이용하고자 했던 소현세자다. 그러나 아버지 인조와 권력자들은 소현세자의 충심을 역심(逆心)으로 바꿔 그를 견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소현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명청 교체기에 있었던 일이다.

이로부터 200여 년 동안 청은 서양의 과학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동양에서 서양의 종교는 무리가 따른다. 사농공상이나 남존여비와 같은 계급과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엄연하던 시대에 신 앞에서의 평등은 낯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청나라 말, 세계 열강들은 노골적으로 중국을 유린한다. 특히, 천주교와 아편은 중국을 순식간에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의화단 운동이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을 기치로 내걸었던 의화단 운동은 서태후의 지지를 받기도 했는데 청나라 말기 부패한 정권의 지지는 사상누각이었다.

두 사람의 눈으로 본 의화단 운동

<의화단> '소년의 전쟁' '소녀의 전쟁' 표지
 <의화단> '소년의 전쟁' '소녀의 전쟁' 표지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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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 운동을 한 소년과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만화책이 출간됐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진한 소년과 소녀의 눈에 비친 의화단과 천주교는 어떤 것이었을까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탄성을 자아낸다. 책의 제목은 <의화단>.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한 권은 <의화단, 소년의 전쟁>이고 다른 한 권은 <의화단, 소녀의 전쟁>이다.

'소년의 전쟁' 편에서는 한 소년이 의화단을 만들게 되는 과정을, '소녀의 전쟁' 편에서는 소녀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야기의 고비마다 소녀와 소년이 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소년과 소녀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동지들, 들으시오! 대도회는 항상 이 나라 각 지역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소! 동시에 청나라 정부는 이 마을 저 마을로 추적하며 우리를 못살게 굴어왔소! 중국의 심장부가 더럽혀 있는 한은 계속 우리를 박해할 것이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칼과 창으로 이 해독을 제거하는 것뿐! 베이징으로 가서 양귀를 뿌리 뽑읍시다!"('소년의 전쟁' 본문 176쪽)

'소년의 전쟁'에서 주인공 바오가 의화단의 발기 이유를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 진시황, 관우, 장비 등 옛 위인들의 정기를 받아 총이나 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미신과 전우애로 똘똘 뭉쳐진 의화단원들은 중국의 민초들에게 만행을 저지른 서양 군인들과 서양의 천주교인들을 구분할 총기(聰氣)가 없었다. 아무리 의화단 무리를 진시황 귀신이 와서 돕는다 하더라도 서양의 신식 총에서 발사된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소녀의 전쟁'에서 천주교 신자가 된 주인공 넷째는 양귀로부터 세례를 받고 '비비아나'가 된다. 이 와중에 소녀 넷째는 '양귀로부터 중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애국자단체' 즉, 의화단에 가입해 베이징으로 진군하던 사촌오빠를 만나 전 같이 반가울 수만은 없는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은인, 원 선생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편 중독자가 됐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배신자의 너울을 씌우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의화단> '소년의 전쟁' 중 한 장면. 한 서양인 신부가 마을 사람들이 섬기는 '토지공'을 부수고 있다.
 <의화단> '소년의 전쟁' 중 한 장면. 한 서양인 신부가 마을 사람들이 섬기는 '토지공'을 부수고 있다.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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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소년과 소녀의 눈에 비친 의화단과 천주교는 모순투성이다. 의화단은 정의를 위해 계율을 정하고 실천하려 애쓰지만, 연약한 아녀자들과 아이들뿐인 천주교 신자들의 교회를 에워싸고 불을 지르는가 하면, 천주교 신부는 중국의 전통과 토속신앙에 무지해 일반 민중들의 삶을 왜곡하기 일쑤였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그래도 '만약에' 하면서 상상하는 일을 멈추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소현세자가 조금 더 요령있게 처신해 조선으로 돌아온 뒤 인조의 뒤를 이었다면 어찌 됐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소현세자가 청으로부터 들여왔으나 인조가 몰수해 어딘가에 처박아뒀던 과학서적을 정조가 정약용에게 건네 참고하게 해 축조한 게 수원화성이라고 한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과학 문명을 기반으로 한 부국강병이 족히 200년은 앞당겨졌을 것이다.

또한, 소현세자는 사라져 가는 명나라만을 사대할 것이 아니라 청나라와도 친선을 맺는 등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를 구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청과 조선의 운명이 식민지화에 열을 올리던 제국주의의 총탄에 멍들지 않았을 것이고, 의화단 운동도 갑오농민 운동도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

덧붙이는 글 | <의화단> 소년의 전쟁, 소녀의 전쟁(진루엔양 지음 / 윤성훈 옮김 / 2014년 7월 18일 / 소년의 전쟁 1만4000원, 소녀의 전쟁 1만1000원)



의화단 세트 - 전2권

진 루엔 양 지음, 윤성훈 옮김, 비아북(2014)


태그:#의화단, #소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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