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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과 대치중인 모습
▲ 난민을 위한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 경찰들과 대치중인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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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회 문제와 시위 속에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는 집단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찰.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칭하는 그들은 때로는 시위하는 어르신을 돕는 예의바른 경찰로, 때로는 어르신을 전투화로 짓밟는 반인륜적인 경찰로 다양한 얼굴을 지닌 채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고, 시민들을 지키는 동시에 탄압하기도 한다.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듯이, 지난 몇 주간 베를린 난민을 보호하려는 시민의 자발적 운동은 다양해지고 거세졌다. 또한 40년간 한 집에서 살아온 이가 경찰의 비겁한 강제퇴거 작전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났다.
(관련기사: 배드민턴 치며 "강제퇴거 반대"... 이런 시위도 있네 )

이 사건으로 본 독일 경찰의 모습은 한국 경찰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다. 독일 경찰의 폭력적 행동과 작전에 대한 것이다.

난민을 위한 시위대와의 대치중 경찰은 최루액을 사용하였다.
▲ 경찰이 뿌린 최루액에 맞은 시민 난민을 위한 시위대와의 대치중 경찰은 최루액을 사용하였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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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약 6500개의 코멘트가 달릴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영상에서는 신분증 검사에 불응한 한 남자를 수 명의 독일 경찰이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이를 지켜본 주변 시민이 경찰에게 항의하고 소리를 지른다.

다른 영상은 지난 1일에 있었던 난민들을 위한 베를린 중·고·대학생들의 시위와 경찰들의 충돌을 담은 영상이다. 경찰은 영상 중간 중간 보이는 폭력 행위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이 법적으로 옳고 그르냐의 문제로 평가해야하기보다는 경찰은 왜 시민들의 합법적인 시위에 폭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느냐는 의문을 가진다.

다수의 상식과 의무의 충돌

평화로운 상황을 바라는 시민들의 연주
▲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 평화로운 상황을 바라는 시민들의 연주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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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일이나 한국이나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경찰들은 시민의 편이 아닐까. 그 이유는 시민의 입장에서 경찰은 국가가 아닌 시민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의 입장에서는 공무원으로서 정해진 공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의무이자 상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 의무가 시민의 안전과는 반대가 되더라도 말이다.

일반 경찰들의 반시민적인 공무 집행은 결국 누군가의 지시로 이루어진다. 시민의 상식과 공무집행이 충돌할 때 경찰은 개인의 양심, 상식 그리고 합리적 판단 혹은 대중을 위한 선택을 하기 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상관이 지시한 일을 해야한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은 개인적인 판단과 양심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공권력 남용과 오용에 대해서 경찰은 개인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다수의 경찰력을 이끄는 상급자를 제외하고라도, 현장에서 무장한 채 최루액을 뿌려가며 방패를 들고 시민과 대치해야하는 권력 없는 일반 경찰과 전경에게 상급자의 부당한 지휘나 부당한 진압 방식 명령에 대한 최소한의 자유로운 의사 선택의 기회와 양심적 명령 거부의 권리가 주어져야할 것이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모습
▲ 난민을 위한 시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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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가 국민을 통치하던 시대에서 사기업이 새로운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이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하는 상황이 늘어나며 기존 체제와 수많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법을 개정하고, 규제를 철폐하는 등의 이야기가 언론과 사람들의 입을 오르고 내리는 이유도 기업 혹은 시민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기존의 체제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사회에 논란인 에어비앤비(Airbnb)라는 숙박공유플랫폼과 우버(Uber)라는 택시공유플랫폼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삶은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지만, 공권력은 변해가는 시민들의 삶을 반영하기는 커녕,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즉, 기술의 발전 그리고 삶의 방식의 변화로 인해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변해가며 기존 시스템과 충돌이 일어나지만, 공권력은 대중이 아닌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시스템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 경찰이건, 독일 경찰이건, 브라질 경찰이건 시위가 있는 곳에서 통제가 되지 않거나 통제할 수 없겠다고 느껴지는 수많은 군중과의 충돌 속에서 경찰은 다 똑같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최하위의 계급장을 지닌 채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경찰들이 정말로 시민들을 위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다.

베를린 경찰로는 부족한 시위 통제를 위해, 다른 지역의 경찰이 긴급 파견되었다
▲ 독일 경찰의 모습 베를린 경찰로는 부족한 시위 통제를 위해, 다른 지역의 경찰이 긴급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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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시민들 앞을 막고 서있는 것은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있는 전경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치에 맞서 유대인을 구한 독일군인, 팔레스타인인 축출 명령을 거부한 이스라엘 부대 등 단순히 선하고 용기 있는 소수의 양심적인 행동만을 바라며 영웅을 기대하기 보다는, 평범한 누군가의 친구와 누군가의 아들이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길 바라야한다. 누구나 걱정 없이 불의에 대응 할 수 있고, 누구나 걱정 없이 양심의 판단을 따를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우리 사회는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개인을 심판하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세상이다. 꼬리짜르기로 대변되는 정치권과 기업들의 책임전가 문제뿐만 아니라 개개인 간의 고소가 난무하고, SNS를 통해 한 개인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 모습은 청문회에서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후보자를 극도로 비난하지만, 정작 그런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관행적인 시스템을 비판하지는 않는 모습으로도 이어진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0일이 지나고, 해임되었던 총리는 다시 자리에 복귀하고, 여전히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외치지만,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시스템을 비판하고 개혁하기보다는 한, 두 명의 희생양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고, 언 발에 오줌 넣는 행동조차 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변화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을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스템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한다. 우리 사회를 바꾸는 것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에 기업과 정부를 시민이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양심적 기업 비리 고발권과 양심적 명령 거부권과 같이 정의로운 사회를 지킬 수 있는 권리와 보호장치가 우리 사회에는 절실히 필요하다.


태그:#독일, #베를린, #권리, #시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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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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