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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부침과 메밀전병
 메밀부침과 메밀전병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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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토속음식

10년째 강원도에 살면서 이따금 이웃 경조사에 가면 빠지지 않는 음식은 메밀부침과 메밀전병이다. 무슨 잔치나 축제장에 가면 강원도 여인들이 아예 행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만들고 있다.

이즈음에는 가스불을 사용하기에 많이 편리해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숯불 풍로 위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메밀부침이나 전병을 부쳤다. 그것은 그래도 양반이요, 아주 생나무를 때가며 부칠 때는 여인들은 매운 연기로 눈자위가 벌겋도록 눈물을 흘렸다.

나는 1년이면 10여 차례 이상 오대산 월정사로 간다. 조상님 수목장을 찾기도 하지만 장편소설을 쓸 때는 아예 이삼일 월정사 선방에서 머물며 이미 쓴 원고를 퇴고한다. 월정사 원주실 보살님도, 적광전이나 수광전 보살님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나는 그때마다 시외버스로 가는데 진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갓 구운 메밀부침
 갓 구운 메밀부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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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서 오대산 상원사나 월정사 행은 하루에 14차례가 있는데, 대체로 배차 간격이 1시간 정도다.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오대산 행 시골버스를 바꿔 타자면 평균 30분 내외 시차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면서 진부장 구경을 하거나 겨울철에는 송어축제장을 한 바퀴 돌기도 한다. 그러다가 배가 출출하면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메밀부침 집에 가서 금방 부쳐낸 메밀부침이나 메밀전병, 또는 감자부침을 사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때는 나만 먹는 게 미안하여 일이만 원 정도의 부침개를 사서 가방에 넣어 온다. 채식주의자로 입맛이 까다로운 아내지만 이집 부침개만은 좋아한다. 언제 먹어도 맛이 담백하며 강원산골 토속음식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에게 이따금 보내드리면 매우 귀한 음식이라고, 내 주머니에서 나간 대금 몇 배의 인사를 받곤 했다.

10여 년 전에는 할머니 심순오(72)씨가 가게주인으로 메밀부침이나 전병, 감자부침을 만들어 파셨다. 그 얼마 뒤(2006년)에는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셋이 가게 운영을 하더니, 최근에는 우중충한 가게도 그 옆으로 옮겨 새 단장으로 손님을 맞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이 집을 찾아 부침개와 전병을 맛보았더니 역시 옛 맛 그대로였다. 마침 부침개를 부치고, 택배로 다른 지방으로 포장하여 보내느라 바쁜 주인 내외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다.

가업을 물려받다

메밀을 즉석에서 멧돌로 갈고 있다.
 메밀을 즉석에서 멧돌로 갈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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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게를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이유는?
바깥주인 박명우(51)씨 : "제가 대도시에서 직장에 다녔습니다. 일 년에 두어 차례 일본에 출장 가서 보니까 일본 고유의 먹을거리를 자식들이 수 대째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동경대학을 나온 아들도 공직에 있다가 나이가 들면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06년에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은 겁니다."

- 이 집 부침개가 맛이 담백하고 보기에도 좋은 그 비법은 무엇입니까?
안주인 이영숙(43)씨 : "옛 전통 방식을 현대화랄까 과학화했을 뿐입니다. 우선 메밀을 즉석에서 빻아 부침개 재료를 씁니다. 어머니께서는 부침개에 들어가는 배추를 소금을 뿌려가며 절였는데 저희 부부는 이를 과학화시켰어요. 물에다 소금을 녹여 항상 일정한 염도로 맞춘 뒤 배추를 절였어요. 부침개 반죽을 만들 때도 염도계로 염도를 항상 일정하게 맞춘 뒤 부칩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이들 부부가 요리방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을 느꼈다. 종업원들이 똑같은 제복을 입고 일하는 것도, 다른 부침 가게와는 달리 작업 환경도 현대화시킨 것도 마음에 들었다.

- 이 집 부침개는 기름을 적게 쓴 게 좋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영숙씨 : "저희 가게에서는 옛 방식 그대로 무를 잘라 기름을 철판에 바릅니다. 만드는 이가 다소 뜨겁고 손이 더 가더라도 우리 조상님의 방법 그대로 합니다."

내가 쟁반에 담긴 메밀무침과 전병을 맛있게 들자 다시 감자떡을 내왔다. 두어 개 맛을 보자 다른 집 감자떡과는 달리 맛이 달지 않고, 속에 들어간 팥고물 맛도 담백하고 깊이가 있었다. 박명우씨가 자기네 감자떡 맛의 비결을 알려주었다.

감자떡
 감자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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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미리 감자떡

"우선 저희 집 감자는 '두백'이라는 품종의 감자만 씁니다. 우리 고장에서 나는 감자를 가을에 아예 1년 쓸 것을 사서 땅속에 저장해 두고, 그때그때 꺼내 씁니다. 생감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 곱게 갈아 녹말을 가라앉힌 다음 건더기를 쩐 뒤 가라앉힌 녹말과 반죽하여 이 고장에서 난 통팥을 밤새 삶아 고물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일일이 손으로 만듭니다."

나는 가게 전경과 부침개를 부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는 일어서려는데 감자떡 한 접시를 비닐봉지에 담아주려고 했다.

종업원들이 메밀부침을 부치고 있다.
 종업원들이 메밀부침을 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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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에게 시식용으로 드리는 겁니다."
"됐습니다. 나는 오늘 이 길로 오색에 갑니다."

나는 이 무더위에 올 가을 나올 내 작품 <미군정기>를 편집하고 있는 출판사에 택배 주문을 한 뒤 그들 부부에게 당부했다.

"초심 잃지 마시고, 일하시는 분 대접 잘 하시고, 일확천금 노리지 마십시오."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내외는 이 가게를 제 자식 대까지 수백 년 잇게 하려는 게 꿈입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당신네 부부를 소개하는 게 내 보람입니다."

나는 그들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남설악 오색으로 가고자 강릉행 시외버스를 탔다.


태그:#메미리, #메일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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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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